건물주, 세 부담 임대료 전가에 폐업 속출 우려임대수익률 하락세 속 상가 시장 침체 가속화될 수도
  • ▲ 지방의 한 폐업상가에 '상가임대' 안내문이 내걸려있다. ⓒ연합뉴스
    ▲ 지방의 한 폐업상가에 '상가임대' 안내문이 내걸려있다. ⓒ연합뉴스

    11년 만에 최대 폭으로 오른 공시지가 인상이 상인들의 임대료 증가로 이어져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심화와 상권 붕괴라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나 경기 침체로 수익률이 하락하고 있는 상업용 부동산시장의 경우 냉기마저 감돌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올해 전국 50만 필지의 표준지 공시지가가 지난해 6.02%에서 3.4%p 상승한 9.42%로 올랐다고 전날 밝혔다. 지난해 상승률 6.02%보다 3.40%p 높은 수준으로, 2008년 9.63% 이후 최대다.

    정부가 발표한 올해 공시지가의 특징은 '공시가격 현실화'와 '핀셋 인상'으로 요약된다. 정부는 특히 시세에 비해 저평가된 곳, 비싼 땅을 골라 집중적으로 가격을 올렸다. ㎡당 추정 시세가 2000만원 이상인 '고가 토지(전체의 0.4%, 2000필지)'를 중심으로 현실화율을 높여 형평성을 맞췄다는 것이 국토부 설명이다.

    실제 고가 토지의 평균 가격 상승률은 20.05%에 달했지만, 나머지 99.6%에 달하는 일반 토지 가격 상승률은 7.29%에 머물렀다. 고가 토지가 전반적인 시세 반영률을 끌어올리면서 시세 대비 공시가격의 비율인 현실화율은 지난해 62.6%에서 64.8%로 상승했다.

    공시지가 상위 10개 토지는 모두 명동 상권이 형성된 서울 중구 명동, 퇴계로에 들어선 상업·업무용 필지다.

    16년째 전국에서 가장 비싼 땅으로 이름을 올린 명동 '네이처리퍼블릭' 부지(169㎡)의 공시지가는 지난해 ㎡당 9130만원에서 올해 1억8300만원으로 배 이상 올랐다. 두 번째로 비싼 땅인 인근 우리은행 명동지점의 공시지가도 지난해 ㎡당 8860만원에서 1억7750만원으로 100.3% 뛰었다.

    전국 땅값 3위인 중구 유니클로 명동점 공시지가도 올해 ㎡당 1억7450만원으로, 지난해보다 100.1% 증가했다. 4위인 토니모리 명동점은 100.2% 오른 1억7100만원으로 확정됐다.

    화장품 매장인 '더샘' 명동3호점은 공시지가가 지난해 7410만원에서 올해 1억4850만원으로 오르며 10위권에 처음 진입했다. 지난해 공시지가가 8220만원으로 전국 표준지 순위 6위였던 신발 전문점 '레스모아' 명동점은 올해 35.0% 오른 1억1100만원으로 10위에 자리했다.

    표준지 공시지가는 전국 약 3309만 필지의 개별공시지가 산정에 활용될 뿐만 아니라 각종 조세·부담금 부과 및 건강보험료 산정기준 등으로도 활용된다. 전국 공시지가가 11년 만에 최대 폭으로 오르면서 고가의 토지나 상가건물 보유자의 세 부담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제로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시뮬레이션 결과 전국 표준지 공시지가 상위 10개 필지 모두 지난해보다 보유세가 50%씩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적게는 900만원에서 많게는 8800만원까지 보유세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다.

    명동 네이처리퍼블릭 부지의 보유세는 지난해 6625만원에서 올해 9937만원으로 50.0%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다만 이는 해당 토지만 보유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종합부동산세를 계산한 데다 도시지역 재산세는 별도로 부과되는 만큼 실제 보유세는 달라질 수 있다.

    우리은행 명동지점도 1억7191만원에서 2억5786만원으로 8595만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니클로 명동점, 토니모리 명동점 등도 모두 세 부담 증가 상한인 50%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 ▲ 연도별 표준지 공시지가 변동률 추이. ⓒ국토교통부
    ▲ 연도별 표준지 공시지가 변동률 추이. ⓒ국토교통부

    문제는 토지 주인이나 건물주가 늘어난 세 부담을 세입자에게 임대료 인상 등의 방식으로 전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까지는 부동산 보유세가 증가하면 월세를 올려 건물주가 세입자에게 세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임대료 인상으로 상가 경기가 위축되고 자영업자들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잦아지고 있는데, 공시지가 인상이 이 같은 현상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세입자들이 조기 폐업해 공실이 발생할 경우 주요 상권 붕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부장도 "지금은 공실이 많은데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단기적으로 임대료를 올리기 어렵겠지만, 기회를 엿보다가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면 곧바로 임대료를 인상하려 할 것"이라며 "특히 새로 임대차계약을 맺는 상가를 중심으로 상승폭이 클 것"이라도 분석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강남, 명동, 성수 등과 같이 상권이 번화한 곳에서 보유세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하면서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임대료 감당이 어려운 상인이나 업종은 퇴출될 수밖에 없는 만큼 장기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 전날 서울 영등포구는 국토부에 '공시지가 인상이 점진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주민들의 세 부담과 임대료 상승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앞서 성동구와 강남구도 지난달 의견청취 기간에 공시지가 인상률이 과도하다며 낮춰달라고 국토부에 요청했다. 성동구의 경우 젠트리피케이션 발생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수익성이 하락하던 상업용 부동산시장에는 냉기가 돌고 있다.

    이상혁 상가정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내수 경기 침체로 상가 임대수익률이 꾸준히 하락하고 있는데, 세 부담까지 늘어나면서 투자 심리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상업용 부동산은 주택에 비해 공시가격이 낮은 편이라 증여 및 절세를 위해 투자하는 수요가 상당했는데, 이제는 그런 메리트가 대폭 줄어든 만큼 분양시장 및 거래시장이 위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상가 임대수익률은 지난해부터 약세를 보이고 있다. 상가정보연구소가 한국감정원 통계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연면적 330㎡ 초과 소규모 상가의 연 수익률은 3.73%로, 전년 3.91%보다 0.18%p 떨어졌다.

    상가 거래시장도 냉각될 전망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근린생활 건물이나 오피스 빌딩 등 수익형 부동산은 보유세를 감안하면 실질 수익률이 하락하게 되고 최근 경기 침체까지 겹쳐 전반적으로 수요 둔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센터장은 "이번 공시지가 인상으로 특히 꼬마빌딩의 수익성에 나쁜 영향을 많이 미칠 것"이라며 "최근 공실도 늘어나는 추세여서 상가 거래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 ▲ 서울 종로구 삼청동 상가에 점포정리 현수막에 붙어있다. ⓒ연합뉴스
    ▲ 서울 종로구 삼청동 상가에 점포정리 현수막에 붙어있다. ⓒ연합뉴스

    한편, 국토부는 임차인에 대한 보호 장치가 존재해 임대료 전가 영향도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국토부는 영세상인 및 자영업자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전통시장 내 표준지 등은 공시가격을 상대적으로 소폭 인상했기 때문에 일각에서 우려하는 젠트리피케이션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문기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재산세와 종부세 부담 증가는 전년대비 50% 이내로 제한되며 임대료 전가가 우려되는 상가·사무실 부속토지 등 별도합산 토지는 1인 기준 보유한 공시지가 합계가 80억원을 초과할 경우에만 종부세를 납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최근 상가임대차법 개정으로 계약갱신요구권 행사기간이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돼 매년 임대료 인상률 상한은 5%로 제한된다"고 덧붙였다.

    또한 국토부는 상가건물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해 상인들이 안정적으로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분쟁 해결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국토부 측은 "현재 감정원을 통해 분기별 계약임대료, 임대가격지수, 투자수익률, 공실률 조사 중"이라며 "상가임대료 동향 및 공실률 모니터링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