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G, 분양가 산정 기준 재정립… "셈법 복잡해져"낮은 분양가에 내놓느니 차라리… '후분양' 선택 5월 재건축 일반분양 400가구 밑돌아… 중장기 주택공급 차질 우려도
  • ▲ 자료사진. 서울 성북구 장위뉴타운 공사 현장. ⓒ성재용 기자
    ▲ 자료사진. 서울 성북구 장위뉴타운 공사 현장. ⓒ성재용 기자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고분양가 산정 기준을 새롭게 정립함에 따라 분양을 추진 중인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굳이 분양가를 낮춰 분양하겠다는 심리가 강하지 않은 만큼 후분양을 택하는 조합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시공사 입장에서는 수주 물량의 지연과 신규 물량에 대한 분양 보증 강화 등을 떠안아야하는 만큼 적잖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나아가 일각에서는 신규 주택 공급 방법이 정비사업 밖에 없는 서울의 경우 지속적인 재건축‧재개발 옥죄기로 중장기 주택 공급에 악영향을 미쳐 집값도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HUG는 오는 24일 분양보증을 받는 사업장부터 인근 아파트의 분양가 또는 매매가의 110% 이하로 분양가격을 산정하는 대신 비교단지 평균 분양가의 105%, 평균 매매가의 100% 이내에서 분양가를 정하도록 기준을 낮출 예정이다.

    올 들어 집값이 안정되자 '110% 룰'을 따라 분양가가 산정된 단지들을 대상으로 고분양가 논란이 일었고, 나아가 높은 분양가가 주변 시세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면서 분양가 기준을 재손질한 것이다.

    이 같은 분양가 규제로 재건축·재개발 조합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조합들은 분양가로 사업성을 강화하려는데, HUG와 분양가 줄다리기가 길어질 경우 비용 증가로 사업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업성이 좋은 강남권 요지에서는 HUG의 분양보증 승인이 필요하지 않은 후분양제를 고려하는 단지가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대형건설 A사 분양 관계자는 "3.3㎡당 분양가가 4000만원을 넘는 강남권은 1~2%p 차이로도 사업비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며 "분양가를 높이고 싶은 조합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삼성동 상아2차 아파트 재건축 단지 '래미안 라클래시'는 지난 5월 분양 예정이었으나, HUG와 조합이 분양가를 놓고 이견을 빚으면서 분양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상아2차 조합 측은 시세 등을 고려해 3.3㎡당 4700만원 이상을 주장한 데 반해 HUG는 지난 4월 분양한 강남구 일원동 '디에이치 포레센트'의 평균 분양가 4569만원을 기준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HUG의 변경된 기준을 적용할 경우 상아2차 재건축 일반분양은 더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는 8월 분양 예정이던 대치동 1지구(푸르지오) 조합 관계자도 "분양 연기를 포함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며 "시공사 및 금융권과 협의가 필요한 사항인 만큼 대의원 회의를 열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 역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업계는 일단 신규 분양가격 상승폭이 5% 이내로 제한됨에 따라 수익성 둔화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또 재건축·재개발 분양을 잡지 못한 정비사업에 악재로 작용해 분양 일정이 뒤로 이연되거나 건설사 보증이 강화되면서 부담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채상욱 하나금융투자 연구위원은 "분양을 추진 중인 재건축·재개발 단지에 부담으로 작용해 조합과 시행사의 수익성 둔화로 이어질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재건축·재개발 속도 둔화 가능성이 있고, 정비사업 중심의 건설사에도 부정적 이슈"라고 분석했다.

  • ▲ 자료사진. '래미안 장위 퍼스트하이' 시공 현장. ⓒ성재용 기자
    ▲ 자료사진. '래미안 장위 퍼스트하이' 시공 현장. ⓒ성재용 기자

    일부 단지는 아예 후분양으로 분양 방식을 바꾸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아파트를 80% 이상 지은 뒤 분양을 하는 후분양제도는 정부가 권장하는 방식이다. 지금 낮은 분양가에 아파트를 내놓느니 '후일'을 노려 분양가를 높이겠다는 심리가 강하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MBC 부지에 들어서는 '브라이튼 여의도'가 대표적이다. 이 곳은 시행사가 3.3㎡당 4000만원 이상 제시한 반면, HUG는 3000만원대로 보고 있어 분양가 대립이 크다.

    지금 분양한다면 '인근 시세의 100%'로 분양해야 하는 만큼 업계에서는 '브라이튼 여의도'가 후분양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14년간 새 아파트 분양이 없던 여의도의 경우 비교 대상도 마땅찮은데, HUG가 이번에 개정한 심사 기준을 무조건 '원칙' 적용한다면 선분양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HUG가 제한하는 분양가로는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분양지연에 따른 금융비용이 발생하더라도 분양가 규제가 없는 후분양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최근 조합원 이주가 끝난 신반포3차 경남아파트 재건축 단지 '래미안 원베일리'는 후분양 사업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강남권의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건축비와 마감재 등은 매년 가격이 오르는데 분양가를 최대 105%로 제한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정책"이라며 "불가피하게 후분양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중장기 주택 공급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서울의 경우 올 들어 지난달까지 재건축 사업을 통한 일반분양 물량이 400가구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가뭄에 시달리는 상황이다.

    실제로 부동산114가 2015년부터 올해 5월까지 서울 정비사업을 통한 주택 공급물량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를 기점으로 급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서 2017년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총 3만6418가구가 공급됐지만, 지난해에는 1만7435가구로 급감했다. 이는 2015년 3만7751가구, 2016년 3만3622가구와 비교해도 감소량이 두드러진다.

    일반분양 물량도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일반에 공급된 물량은 7104가구로, 2017년 1만4734가구의 절반 수준(51.8%)이다. 올 들어 5월까지 분양된 아파트 역시 6328가구에 일반분양은 3004가구에 그치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는 "서울에서는 각종 규제 등으로 신규 재건축 사업이 사실상 사라졌다"며 "가로주택정비사업 등 소규모 재건축은 이뤄지겠지만, 전반적으로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고 판단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재건축·재개발의 경우 사업 단계별로 분양가 통제에 대한 민감도가 다를 것"이라며 "분양가 통제로 단기간에 아파트 값이 떨어질 수 있으나, 공급 위축을 불러 장기적으로는 집값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