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석화사업부 인수…글로벌 디벨로퍼 '도약'업계 최상위 재무구조…M&A 자금부담도 '거뜬'이사진도 '건설통' 제로… 유화부문 중심 재편
  • ▲ 서울 종로구 소재 대림산업 본사. ⓒ성재용 기자
    ▲ 서울 종로구 소재 대림산업 본사. ⓒ성재용 기자

    대림산업이 글로벌 M&A를 통해 고부가가치 석유화학사업에 힘을 싣는다. 사업다각화를 넘어 실적변동성을 최소화시키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현재 이사회에 건설전문가가 없는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석화사업에 힘을 실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5일 대림산업에 따르면 최근 이사회에서 미국 크레이튼(Kraton)사의 카리플렉스(Cariflex) TM사업부 인수를 의결했다. 올해 80주년을 맞이한 대림산업의 첫 해외 경영권 인수 사례다.

    총 인수금액은 5억3000만달러다. 이르면 내년 1분기께 인수 작업이 최종 확정될 경우 대림산업은 크레이튼의 브라질 공장과 원천기술, 판매 인력 및 영업권을 확보하게 된다.

    크레이튼은 1950년대 쉘(Shell)사의 화학사업 부문을 모태로 하는 회사다. 2001년 분리돼 사모펀드를 주인으로 맞은 이후 2009년 상장됐다. 고부가가치 기능성 제품을 제조하는 글로벌 석유화학 기업이다.

    폴리머 사업부를 통해 접착제, 코팅제, 실란트, 윤활유, 의료용 제품, 자동차 부품 등 다양한 용도의 석화제품을 제조하고 있다. 또 송진 기반 화합물의 세계 최대 공급사로 접착제, 아스팔트, 건설 및 타이어, 연료첨가제, 방청제, 윤활유, 잉크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되는 기능성 화학제품을 생산, 판매중이다.

    카리플렉스 사업부는 고부가가치 합성고무와 라텍스를 생산한다. 이 제품은 수술용 장갑과 주사용기의 고무마개 등 의료용 소재로 사용된다. 그동안 주로 천연고무로 만들어지던 수술용 장갑은 천연고무의 알레르기 유발 위험성으로 인해 합성고무로 대체되고 있는 추세다.

    특히 미국 수술용 장갑시장에서는 천연고무의 알레르기 관련 위험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최근 3년새 합성고무로의 전환이 급속히 이뤄지고 있다.

    카리플렉스가 생산하는 라텍스는 글로벌 합성고무 수술용 장갑시장 1위 제품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및 아시아에서도 합성고무 수술용 장갑 사용 비중이 점차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따라 합성고무 수술용 장갑시장은 매년 8% 수준의 높은 성장이 기대된다.

    무엇보다 의료용 제품의 경우 차별화된 기술력을 필요로 할뿐더러 다른 석화제품에 비해 경기 변동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에 안정적인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김상우 대림산업 부회장(유화부문 대표)은 "글로벌 수요 증가가 예상됨에 따라 한국에 고부가가치 합성고무와 라텍스 생산공장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며 "대림이 자체개발한 메탈로센 촉매 및 폴리부텐(PB) 생산기술과 크레이든이 개발한 세계 유일의 음이온 촉매 기반의 합성고무 제조기술, 라텍스 제조기술이 더해져 상당한 시너지가 발생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이어 "이를 바탕으로 의료용 소재는 물론 고기능 라텍스, 접착제 원료, 코팅 등 고부가가치 석화 제품 개발 투자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 ▲ 크레이튼의 브라질 라텍스 공장. ⓒ대림산업
    ▲ 크레이튼의 브라질 라텍스 공장. ⓒ대림산업

    신용평가사들도 이번 인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대림산업의 주력 사업인 건설업의 업황 침체로 영업실적 변동성이 확대된 가운데 사업다각화 강화 및 석화 스페셜티 제품 확보를 통한 유화 부문의 중장기 업황 변동성 완화를 동시에 도모했다는 것이다.

    권기혁 한국신용평가 실장은 "카리플렉스의 매출액은 대림산업 매출액의 1.8% 수준으로, 단기적인 영업실적 개선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이번 인수가 완료될 경우 화학 부문의 사업다각화와 사업역량 강화를 통해 건설 부문의 실적변동성에 대한 대응력 제고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수 작업에 수반하는 자금 부담 역시 대림산업의 보유 유동성, 현금창출력 등을 감안할 때 충분히 대응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시공능력평가 상위 5개 대형건설사의 잠정실적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대림산업의 3분기 기준 부채비율은 97.5%로, 5개사 평균 108%를 하회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차입금(2조3939억원) 역시 평균 2조7462억원을 밑도는 것으로 조사됐다.

    권기혁 실장은 "이번 인수 외에도 미국 석화단지 개발 등 또 다른 신규 투자가 실현될 경우 대규모 자금 지출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번 인수 과정 및 최종 결과, 인수 이후 중장기적인 영업성과 및 시너지 창출 가능성 등과 함께 화학 부문의 적극적인 사업 확장에 따른 영업 및 재무적 변화 요인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림산업의 이번 인수는 꾸준한 사업 확장에 힘써온 결과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10년간 대림산업의 주요 투자내역을 살펴보면 유화사업 비중이 압도적이다. △2009년 PB사업의 C4 유도품 건설 864억원 △2011년 필름부문 BOPP설비 증설 295억원 △2012년 필름부문 BOPP설비 증설 495억원 △2014년 PB2 7만5000톤 증설사업 311억원 △2019년 여수공장 폴리에틸렌(PE)2 증설 2111억원 등이 있다.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2010년 독일,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고반응성 PB제조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지난해부터는 고부가가치 석화사업 확대 및 석화 디벨로퍼로의 도약을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기존 EPC에서 나아가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평가받는 해외개발사업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이다.

    올해초에도 사업 확장 의지를 공표한 바 있다. 김상우 부회장(당시 사장) 명의로 임직원에게 전달된 신년사에는 유화사업 강화에 대한 의지가 담겼다. 김 부회장은 올해가 유화사업 확대를 위한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면서 "그룹의 명운을 걸고 모두의 역량을 총동원해 성공으로 이끌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 대림산업이 여수산업단지에서 운영 중인 연산 20만톤 규모의 폴리부텐 공장. ⓒ대림산업
    ▲ 대림산업이 여수산업단지에서 운영 중인 연산 20만톤 규모의 폴리부텐 공장. ⓒ대림산업

    실제로 지난 9월 태국 최대 석화회사 PTT글로벌 케미칼과 손잡고 미국 오하이오주에 석화단지 개발을 추진하는 투자약정을 체결했다.

    양사는 에탄을 분해해 에틸렌을 생산하는 에탄분해공장과 이를 활용해 PE를 생산하는 공장을 지어 공동운영할 계획이다. 4~5년간 총 투자액이 1조5000억~2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사실상 대림산업의 사활이 걸린 프로젝트로 보인다.

    이밖에 사우디아라비아 PB 증설, 2020년 하반기 최종 투자 여부가 결정될 미국 ECC 등 화학부문 투자 계획은 지속되고 있다.

    증권가에서도 유화부문 매출 비중이 매년 10% 이상씩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A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이번 인수는 대림산업의 미래전략이 해외플랜트가 아닌 화학쪽에 있음을 다시한번 보여주고 있다"며 "중장기 성장성은 화학부문이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규모 자금 투입을 필요로 하는 사상 첫 해외 M&A가 추진되면서 사업 무게 중심이 건설에서 유화로 넘어가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최근의 이사진 변화 역시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림산업 이사회는 4명의 사내이사와 5명의 사외이사로 구성됐다. 사내이사에는 이해욱 회장과 유화부문 대표인 김 부회장, 건설부문 대표인 박상신 부사장, 남용 고문 등으로 구성됐으나 최근 임시주주총회와 이사회를 통해 배원복 경영지원본부장을 신임 사내이사 겸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배원복 신임 대표이사의 선임으로 박 부사장은 주택사업본부장 역할만 하는 동시에 이사회 구성원 지위를 내려놨다. 배 대표이사는 LG전자 출신으로 핸드폰사업을 하는 MC사업본부의 산증인으로 통한다. 특히 상품 기획과 디자인, 전략사업개발 등 '기획통'으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이번 인사로 대림산업의 이사회에는 건설전문가가 단 한명도 없게 됐다. 대림산업 사내이사에 주택사업본부장, 토목사업본부장, 플랜트사업본부장 등 건설전문가가 한 명도 없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건설사업 부문의 입지가 축소되는 것이 아니냐는 후문도 있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영관리에 강점을 지닌 인사를 건설부문 대표에 앉혔다는 것은 무리한 사업 확장보다 리스크 관리에 주력하겠다는 의미"라며 "건설부문은 당분간 현 경영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