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회장에게 직접 사의 표명사원에서 사령탑까지… '고졸 신화' 마침표 부회장 승진 후 '최대 실적' 이끌어와전장·로봇 등 新사업 확장 발판 마련도
  • ▲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LG전자
    ▲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LG전자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이 43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난다. 사령탑에 오른 후 회사의 최대 실적을 갱신하면서 순항을 이끌었지만,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는 차원에서 구광모 LG 회장에게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28일 LG전자는 이사회를 열고 정기 임원 인사 명단을 확정, 발표했다. 거취에 관심이 모아졌던 조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후임으로 권봉석 LG전자 사장이 지휘봉을 잡게 됐다.

    이로써 조 부회장은 43년 만에 회사를 떠나게 됐다.

    조 부회장은 "한 회사에서 이렇게 오랜 기간을 다닌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며 "은퇴조차도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소회를 밝히면서 "젊음을 포함해 모든 것을 LG전자와 함께 했기에 후회나 부끄러움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기술속국이 되지 않아야 된다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연구개발에 몰두했던 때가 이젠 마음 속 추억으로 아련히 남는다"고 회상했다. 그는 "안정된 수익구조와 사업 포트폴리오를 넘길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더 튼튼하고 안정된 회사, 미래가 좀 더 담보된 회사로 만들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고 덧붙였다.

    조 부회장은 끝으로 "LG전자가 영속되기 위해서는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1등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갖고 있어야 한다"며 "새 CEO인 권봉석 사장이 회사를 잘 이끌 수 있도록 기도하고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1956년생인 조 부회장은 용산공고 기계과를 졸업하고 1976년 LG전자 전신인 금성사에 입사했다. 세탁기를 설계하던 전기설계실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경력을 쌓은 후 1995년 세탁기설계실 부장으로, 2001년 세탁기연구실장 연구위원 상무로 승진하는 등 '고졸 신화'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조 부회장이 입사할 당시만 해도 세탁기 보급률은 0.1%도 안 된 시절이었지만, 그는 세탁기가 반드시 대중화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2012년까지 36년간 세탁기에 매진하며 확신을 현실로 이끌었다.

    '미스터 세탁기'로 통하는 조 부회장은 2007년 세탁기사업부장 부사장, 2013년 HA사업본부장 사장에 올랐다. 세탁기 관련 기술에서 한 우물을 파 LG전자 생활가전사업의 성공을 이끈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조 부회장은 2015년 인사를 통해 LG전자 대표이사에 올라 당시 조준호 전 LG전자 사장, 정도현 LG전자 최고재무책임자 사장 등과 함께 본격적으로 회사를 이끌었다.

    사장으로 승진한 후에는 세탁기 사업을 통해 쌓은 1등 DNA를 다른 생활가전으로 확대하며 H&A사업본부의 체질을 바꿔놓았다. 지속적인 R&D 투자, 고도화된 사업 포트폴리오, 안정적 수익구조 등을 기반으로 LG전자 생활가전의 위상을 높였다.

    이듬해에는 부회장으로 승진, LG전자 '원톱'으로 올라섰다. 조 부회장이 단독으로 사령탑을 맡은 첫 해인 2017년 LG전자는 매출 61조3962억원을 기록, 사상 최초로 60조원을 돌파하면서 최대 실적을 달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영업이익도 84.5% 증가한 2조4685억원을 기록했다. 이 역시 역대 최고치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소폭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2조7032억원으로 기록을 갱신하면서 승승장구했다.

    LG전자의 실적 개선은 조 부회장이 수익과 성장, 시장지배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 구축에 집중한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는 가전 부문에 '프리미엄' 전략을 접목한 것이 최대 실적 달성의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LG전자의 초(超)프리미엄 가전 브랜드 'LG 시그니처'는 조 부회장의 대표 성공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생활가전과 OLED를 앞세운 TV 부문의 프리미엄 제품 판매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스마트폰사업과 성장통을 겪고 있는 전장사업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상쇄, 부회장 승진 후 2년 연속 실적 증가를 이룬 것이다.

    LG전자 측은 "H&A는 한국을 중심으로 트윈워시와 건조기, 스타일러 등 신성장 제품의 지속적인 매출 증가를 이루고 있다"며 "TV사업은 프리미엄 판매 확대와 지속적인 원가개선 활동으로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 부회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도 "주력사업은 수익 극대화에 집중하면서 수익 창출을 위한 효율적 방법들을 철저하게 고민하고 실행하자"고 언급하며 '성장'과 '변화'의 강력한 추진을 강조했다. LG전자는 올 들어 3분기까지 매출 46조244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 성장하면서 견조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1.2% 감소했지만 여전히 2조원대를 유지하면서 양호한 흐름을 이어갔다.

    LG전자는 조 부회장 체제에서 실적 성장과 함께 탄탄한 재무상태도 유지하고 있다. 2016년 말 LG전자의 부채비율은 183.4%에 육박했지만 지난해 말 171.8%로, 2년새 11.6%p 감소했다. 이 기간 보유 현금도 41.6% 증가한 4조2703억원에 달했다. 올 3분기 기준 4조7988억원의 현금을 보유, 미래사업 투자에 대한 실탄을 차곡히 쌓고 있다.

    조 부회장은 지난해 말 실시된 조직개편에서 직속으로 '로봇사업센터'와 '자율주행사업Task'를 신설했다. LG전자가 힘을 쏟아오던 신사업 전장사업과 로봇사업을 직접 지휘하기 위함이다.

    그는 미래사업을 조기에 육성하기 위해 로봇사업센터와 같은 전담조직을 구성하고 해외에 인공지능연구소를 개소하는 등 미래사업을 위한 역량 강화에 힘썼다. 국내외에서 4차 산업혁명 분야의 인재들과 직접 만나며 인재 영입을 직접 챙겼다.

    실제 LG전자는 로봇과 전장사업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1월 국내 로봇개발기업 로보티스 지분 10.12%를 90억원에 인수했고, 같은해 5월 국내 인공지능 스타트업 아크릴 지분 10%를 10억원에 매입했다. 6월에는 미국 로봇개발전문기업 보사노바 로보틱스에 33억2700만원의 자금을 지원했다.

    또 조 부회장은 지난해 인수한 ZKW의 공장과 생산라인을 점검하기 위해 본사가 위치한 오스트리아를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다만 올해 불거진 '건조기 결함' 이슈로 LG 가전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에 금이 간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앞서 LG전자 건조기는 일부 제품 콘덴서에 먼지가 끼는 현상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제기된 바 있다. LG전자는 결함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10년 무상보증' 카드를 꺼내들고 지난 9월2일 무상서비스를 모두 반영한 개선 모델을 내놓았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최근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위원회는 소비자 247명의 의견을 수렴해 LG전자에게 위자료 10만원씩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조 부회장이 건조기 이슈를 말끔히 해결하지 못한 채 임기 1년을 남기고 회사를 떠나게 되면서 후임으로 선정된 권봉석 사장의 부담도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권 사장은 현재 MC사업본부장과 HE사업본부장을 겸하고 있는데 두 사업부 모두 최근 흐름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사업은 올 들어 경기 평택시 생산라인을 베트남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하고, 제조자개발생산(ODM)을 저가 제품에서 중가 라인업까지 확대하는 등 원가 개선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전사 수익 개선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올 3분기 MC 부문 영업적자는 161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소폭 확대됐다.

    HE 부문 역시 올레드 TV 등 프리미엄 제품 중심의 매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쟁 심화에 따른 마케팅 비용 영향으로 3분기 영업이익 3180억원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소폭 하락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경쟁사 삼성전자의 QLED TV를 겨냥한 비방 광고를 만들면서 양사 간 '진흙탕' 싸움이 확산되고 있어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