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안 제출 앞두고 재정당국-당청 힘겨루기기재부 재정준칙 꺼내자 與 "국가채무율 국가부도와 무관"4차추경 목소리 점점 커져…무분별 재정확대 장기경기침체 야기
  • ▲ 남대문시장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서울 중구 숭례문 앞에 설치된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뉴데일리 DB
    ▲ 남대문시장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서울 중구 숭례문 앞에 설치된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뉴데일리 DB
    2021년도 예산안 제출을 앞두고 정부와 거대여당의 힘겨루기가 가열되고 있다.

    나라살림을 책임진 기획재정부는 재정준칙 도입을 내세우며 무분별한 확장재정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경제위기 속에서 재정의 역할이 더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전국민 재난지원금부터 시작된 재정당국과 정치권의 기싸움이 이어지는 것이다.

    예산증가율 이제는 낮춰야 Vs. 경제위기 국면, 더 늘려야

    정부는 내달 3일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예산규모는 550조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올해 본예산 512조원에 비해 7%가량 증가한 규모이며 3차추경까지 더한 올해 총지출 546조9000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는 올해 예산 증가율(본예산 기준) 9.1%나 지난해 9.5%에 비해 감소한 수준이다. 기재부는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2019~2023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집권 전반기 확장재정을 위해 예산 증가율을 8~9%를 유지하다가 후반기인 2021년 6.4%, 2022년 5%대로 낮출 것을 약속했다.

    지난정부까지 연평균 예산 증가율이 2~3%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재정관리를 하겠다며 5%대로 하향하는 것도 상당한 재정지출 증가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같은 낮은 수준의 재정관리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당청이 내년에도 예산을 더 늘릴 것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정부가 밝힌 국가재정운용계획을 근거로 내년 예산안을 550조원 안팎으로 예상하는 보도가 나오자 "총지출 증가율 등 구체적인 내용은 결정된 바 없다"며 "보도에 신중을 기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2년 연속 이어온 9%대 예산증가율이 올해도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올해 실업급여 수급자가 급증하고 내년부터는 전국민고용보험을 추진하는 등 노동·복지 분야에 많은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며 "당청이 밀어붙이는 사업들의 조기정착을 위해 예산편성을 더 늘릴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재정당국에 쏟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재정준칙안 제정 Vs. 전통적 재정학 무너져… 4차 추경 필요

    당청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자 기재부는 재정준칙안 제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국가채무비율과 재정수지 적자 상한선을 법으로 정해버리자는 것이다. OECD 국가 대부분은 국가채무비율을 60%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한해 재정적자가 3%를 넘지 않도록 하는 재정준칙을 정해 예산을 운용한다.

    기재부가 재정준칙을 내세우자 여당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케케묵은 국가채무비율 기준이나 재정적자 수지를 앞세우는 것은 경제위기 속에서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국회 기재위 예결소위 간사를 맡은 기동민 의원은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더 과감한 재정의 역할이 필요한 시대적 상황에서 기재부의 재정준칙 법제화는 상당한 정치적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 의원은 "현재 한국 정치·경제적 상황에서 재정준칙도입은 적절하지 않다"며 "가파른 국가채무비율 증가속도가 국가부도로 향할 수 있다는 기재부의 의견은 추론에 기초한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눈을 감고 있다.ⓒ뉴데일리 DB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눈을 감고 있다.ⓒ뉴데일리 DB
    그는 IMF 등의 국가채무와 국가부도 간 관계를 분석한 결과, "국가부도를 경험한 나라들의 경우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의 중앙값은 약 60% 정도의 높지 않은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기재부가 제시하는 국가채무비율 40%라는 수치는 국가부도 발생가능성과 큰 연관이 없다는 얘기다.

    재정준칙의 주요 쟁점인 채무준칙과 재정수지준칙의 적정비율 산정에 대해서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기 의원은 주장했다. 그는 기재부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한 보고서를 근거로 들며 "EU 국가들이 제시하는 채무준칙에 따른 국가채무 상한 비율은 객관적 근거가 없다"며 "신뢰할만한 국가채무 목표 수준에 대한 설정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례"라고 했다.

    기 의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다수 국가들이 재정준칙이 작동하지 못했고 적용을 포기하거나 보류하는 상황이 발생했었다"며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경제위기에 대처하고 있는 세계 주요 국가들의 적극적인 재정운용 앞에 전통적인 재정학은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당장은 선을 그은 4차 추경 목소리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법사위 소속 신동근 민주당 의원은 "홍수 피해에 더해 3단계 거리두기가 실행된다면 또다시 경제에 많은 타격을 줄 것"이라며 "4차 추경 등 경제위기 대책 문제가 심도있게 다뤄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실제로 수도권 2단계 거리두기가 이미 실시된 이후에도 거세지는 코로나19 확산세 속에서 2학기 초중고 학사 일정이 차질을 빚고 어린이집은 휴원 권고조치가 내려지는 등 국면은 심상치않게 흘러가고 있다. 이럴경우 상반기 1차 추경에서 편성됐던 긴급돌봄서비스나 돌봄지원쿠폰 등 추가 예산편성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 ▲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청와대
    올해 국가채무비율 45% 육박… 기축통화국 따라하다 큰코 다쳐

    올해 3차 추경까지 모두 더한 국가채무비율은 45%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채무도 크게 늘어난데다, 경제성장률도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국가채무비율은 지난해 39.8%에 비해 5%p 이상 오르고, 국가채무 금액도 98조6000억원 증가한다. 이는 이전 최고기록인 1998년 IMF 위기 당시 3.8%p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의 '국가채무 국제비교와 적정수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00년부터 2018년까지 연평균 4.4%씩 증가했다. OECD 34개국중 4번째로 빠르다. 재정위기 국가로 꼽히는 그리스(3.1%), 이탈리아(1.2%), 포르투갈 (4.0%), 일본(2.9%)보다 급격히 오르고 있다.

    특히 기축통화국인 주요 선진국과 국가채무비율을 대등한 수치로 비교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미국, 일본, 영국 등 기축통화국은 아무리 빚이 많아도 발권력을 동원할 특권을 갖고 있어 국가부도 위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비기축통화국이 이들 국가를 따라할 경우 심각한 정책적 오류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비기축통화국이 만성적 재정적자에 빠지면 국가신용도가 떨어지고 환율이 불안해지면서 자국화폐와 국채는 외국투자자로부터 기피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기축통화국의 적정수준은 97.8%~114%에 달하는 반면 비기축통화국의 적정수준은 37.9%~38.7%에 그친다고 분석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소국개방경제 14개국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에서는 적정 국가채무비율이 41.4%~45%로 추정됐다.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면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에 속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암묵적으로 지켜왔던 40%가 적정 국가채무비율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유독 많은 공기업 부채와 연금충당부채를 떠안고 있어 정부가 제시하는 40%대 국가채무비율은 조정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2018년 기준으로 일반정부채무(D2) 759조7000억원에 공공부문 부채 1078조원과 연금충당부채 939조9000억원을 합하면 총 국가부채는 2017조9000억원에 달한다. GDP대비 국가부채비율 106.5%다.

    조경엽 한경연 경제연구실장은 "현 정부 출범 4년만에 국가채무가 213조원이 증가했다"며 "정부 스스로 재정규율을 지키지 못한다면 강제성을 수반한 재정준칙을 법제화하고, 재정준칙 준수 여부를 감시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구 설립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