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물건, 2년 전 대비 88% 늘어…임대차법 시행 전 수준 회귀4년치 인상은커녕 임차인 못 구해 발 동동…"강남도 1억~2억원 낮춰야"고금리 여파 '반전세' 선호… 계약갱신청구권 소진 물건도 가격 낮춰 재계약
  • ▲ 서울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붙은 전·월세 시세표. 220731 ⓒ연합뉴스
    ▲ 서울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붙은 전·월세 시세표. 220731 ⓒ연합뉴스
    최근 서울 아파트값 하락이 본격화된 가운데 전·월세 시장까지 침체가 가속하고 있다.

    2년 전 8월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등 '임대차 2법' 시행 직후 당시 매물이 회수되고 전셋값이 폭등하던 상황과 전혀 다른 양상이다.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시장에 전·월세 물건은 넘치는데 신규 수요는 자취를 감췄다.

    이 때문에 서울 강남도 시세보다 전셋값을 1억~2억원 이상 낮춰야 계약이 이뤄지고 집주인은 전세 만기가 임박해도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만기 후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도 코앞에 닥쳤다.

    전문가들은 가을 이사철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당분간 이사 수요가 많이 늘어나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28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27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월세 물건은 총 5만5114건으로 한 달 전보다 8.0% 증가했다. 제주(16.0%), 광주(9.0%), 경기(8.6%)에 이어 전국에서 4번째로 증가 폭이 큰 것이다.

    부산(8.0%)과 인천·대구(5.8%) 등 수도권과 주요 지방 광역시의 물건도 한 달 전에 비해 전·월세 물건이 더 늘었다.

    이런 현상은 애초 임대차 2법 시행 직후 나타났던 물건 부족 현상과 전셋값 폭등이 2년 뒤인 올해 8월부터 다시 재현될 것이라는 애초 전문가의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아실 통계를 보면 현재 5만5000건이 넘는 서울 아파트 전·월세 물건 수는 2년 전인 2020년 8월27일 2만9295건과 비교해 88.1% 많다. 물건 수만 보면 임대차 2법 시행 전인 2020년 8월 이전 상황으로 사실상 회귀한 것이다.

    이 가운데 순수 전세물건은 2년 전 1만5828건에서 현재 2배가 넘는 3만4496건으로 11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월세 물건이 1만3467건에서 2만616건으로 53.0% 늘어난 것과 비교해 증가 폭이 2배 이상이다.

    최근 한 달 만 봐도 종로구는 전세물건이 411건으로 한 달 전보다 23.7% 증가했고, 마포구는 2010건으로 한 달 새 20.8% 늘었다.

    △구로구 19.4% △광진구 17.7% △관악구 16.8% △강서구 14.8% △성북구 13.5% 등도 두 자릿수 이상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 25개 구에서 최근 한달새 전·월세 물건이 감소한 곳은 강북구(480건, -1.3%)가 유일하다.

    이 때문에 전셋값도 약세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48% 올랐던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올 들어 7월까지 0.46% 떨어졌다. 2월부터 6개월 연속 하락세다.

    계약갱신권 소진 물건이 4년치 전세를 한꺼번에 올리면서 전셋값이 급등할 것이라는 일부 전문가들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전세 시장 약세에는 고금리와 대출 규제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금리 인상 여파로 전세자금 대출 금리가 현재 4%대로 치솟으면서 대출 금리가 월세전환이율(통상 3.5%)보다 높아지는 '역전현상'이 발생하자 보증금을 올려주는 대신 월세로 돌리는 반전세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마포구 A공인 대표는 "전세는 절대 금액이 커 세입자들이 이동하면서 대출을 많이 받는데 전세자금대출 금리가 높다 보니 대출을 받아 오른 보증금 차액을 감당해오던 사이클이 깨져버린 것"이라며 "아예 이사하지 않거나 차라리 보증금이 낮은 반전세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전·월세 계약 만기가 지났는데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현실화할 조짐이다.

    경기·인천 등 수도권에서 이미 곳곳에서 역전세난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데 서울도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강남권도 전셋값을 시세보다 최소 1억~2억원은 낮춰줘야 계약이 이뤄질 정도로 서울 곳곳에서 '세입자 모시기'가 벌어지고 있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엘스 등은 13억~14억원짜리 전용 84㎡ 전세를 11억~12억원 정도 낮춘 것만 계약이 이뤄진다.

    송파구 B공인 대표는 "과거에는 학군 따라 유입되는 수요가 많았는데 요즘은 방학 이사철도 실종된 상태"라며 "과거와 달리 이사 비용도 크다 보니 대부분 재계약으로 눌러앉고, 신규는 시세보다 현저히 싼 것만 나간다"고 말했다.

    강남구 C공인 사장도 "과거에는 학군이나 주거환경, 주택형을 늘리기 위해 대출을 받아 상급지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금리가 오르고 대출 조건도 까다로워지면서 재계약만 늘고 있다"며 "계약갱신청구권을 소진한 물건도 새 임차인을 구하기 어렵다 보니 아예 기존 세입자에게 전셋값을 시세보다는 낮춰주는 조건으로 재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강북도 싼 전세만 일부 거래가 이뤄질 뿐 찾는 사람이 없다.

    노원구 D공인 대표는 "지난달에 반짝 거래가 이뤄지고 8월 들어 다시 전세수요가 급감한 상태"라며 "시세보다 전셋값을 최소 1000만~2000만원은 깎아줘야 계약이 성사된다"고 말했다.

    마포구 E공인 대표도 "집주인으로선 계약갱신청구권 때문에 4년간 임대료 인상에 제약이 있다고 생각되니 가격을 쉽게 낮춰서 계약하기도 어려운데 높은 가격엔 안 나간다는 게 문제"라며 "계약 만기가 지났거나 임박한 집이 수두룩한데 집주인이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올해부터 시행하는 '상생 임대인' 제도도 신규보다는 재계약 수요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단 가을 이사철이 본격화하는 추석 연휴 이후에는 일부 전세수요가 움직일 수 있지만, 전셋값이 뛰는 등 불안할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오히려 전세물건이 계속해서 적체 될 경우 수도권은 물론 서울도 '역전세난'이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이달에 기준금리가 연 2.75%로 올랐고, 연말까지 3% 수준으로 올린다는 게 금융당국의 목표여서 금리는 매매나 전세 시장을 막론하고 주택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연말까지 전세도 현재의 약세가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