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융·제조서비스 그룹제 도입… 3각편대 완성DB하이텍, 파운드리사업부 브랜드사업부 각자대표 체제로금산분리 완화 기대감도… 내년 업황 둔화 전망은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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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B그룹이 보험·금융·제조서비스 그룹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대대적 사업구조 개편에 나서면서 배경에 시선이 쏠린다. 재계 일각에서는 DB의 오랜 염원이었던 ‘제조업 재건’에 나서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DB그룹은 업의 특성과 전문성을 감안해 그룹 사업구조를 보험그룹, 금융그룹, 제조서비스그룹 등 3개 그룹으로 개편하고, 해당 사업의 그룹장과 주요 계열사 CEO를 선임하는 인사를 전날 단행했다. 

    보험그룹장에는 김정남 DB손해보험 부회장이, 금융그룹장에는 고원종 DB금융투자 부회장이, 제조서비스그룹장에는 이재형 전 동부대우전자 부회장이 선임됐다. 이들은 해당 사업그룹의 중장기 성장전략과 시너지 창출 등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DB는 인사 배경에 대해 “해당 사업분야의 풍부한 사업경험과 경영능력을 갖춘 전문경영인을 그룹장으로 선임하고, 주요 계열사 CEO에 대한 세대교체를 단행함으로써 사업전문성과 자율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이번 사업구조 개편으로 DB 내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미미했던 제조업이 과거의 위상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현재 DB그룹은 보험업 등 금융업과 반도체 등 제조업의 양대 축에서 매출을 내는 구조다. 매출 비중을 보면 DB손해보험와 DB금융투자 등 금융이 80%, 제조업은 20%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실 DB는 1969년 미륭건설(동부건설 전신)을 토대로 사세를 키우고 제조업으로 그룹을 키워왔다. 이후 IMF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으로 직격탄을 맞았고 2013년 주요 자산과 계열사를 매각하며 금융그룹으로 재탄생했다. 체질 개선에는 성공했지만 제조업은 DB하이텍과 일부에만 남으며 외형이 크게 줄었다. 제조업의 부활은 그룹 숙원으로 여겨져 왔다. 

    DB하이텍은 웨이퍼 수탁 생산 및 판매를 담당하는 파운드리 사업과 디스플레이 구동 IC 제품을 설계·판매하는 브랜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1997년 출범이래 17년간 적자만 거듭했지만 2014년부터 분위기는 반전됐다. 특히 코로나19에 따른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최근 7개 분기 연속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경신하며 약진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영업이익률도 꾸준히 늘어 올해 9월 말 기준 49.25%를 달성했다. 제조업 평균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제조업 재건의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실제 이번 사업구조 개편에 따라 기존 함께 운영되던 DB하이텍의 파운드리사업부(반도체위탁생산)와 브랜드사업부(팹리스)는 분리, 조기석 대표이사와 황규철 대표이사 각자 대표 체제로 전환됐다. 제조를 담당하는 파운드리 사업부와 설계를 담당하는 브랜드 사업부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아울러 제조서비스업그룹장으로 이재형 전 동부대우전자 부회장을 선임했다는 점도 상징적 의미로 볼 수 있다. 지난 2013년 DB는 국내 가전업계 3위인 대우일렉트로닉스를 인수했지만 5년 만에 대유그룹에 넘겼다. 동부대우전자는 DB하이텍 이전 그룹 제조업의 핵심으로 불렸던 회사다. DB하이텍을 제조업 재건의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신임 그룹장은 2013년 동부대우전자 대표에 취임, 1년 3개월 만에 건강상의 문제로 사임한 바 있다. 그는 삼성물산에서 정보통신부문장, 미주총괄 부사장 등을 역임한 삼성맨 출신이다. 당시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군 확장을 통한 틈새 시장에서의 성장, 해외시장 개척 등을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추진 중인 금산분리 완화가 현실화되는 경우 DB그룹의 제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현재 금융당국은 금융사의 비금융 진출을 제한한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추진 중이다. 만약 든든한 실탄을 보유한 금융계열사가 DB하이텍을 지원할 수 있게 되면 막대한 투자가 가능해진다. 

    다만 내년 둔화할 것으로 점쳐지는 반도체 업황은 고민거리다. 업계에 따르면 2020년부터 높은 성장세를 보였던 세계 반도체 시장은 글로벌 경기 침체로 내년에 악화될 것으로 점쳐진다. 실제 지난 2분기 1억2232만달러였던 DB하이텍의 웨이퍼 수주잔액은 3분기 1억522만달러로 13.9% 감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금산분리 규제가 완화되더라도 그 정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이재형 그룹장이 지난 네트워크를 살려 파운드리를 키울 수 있을지가 첫 번째 관건으로, 파운드리에서 수익이 계속 나와줘야 팹리스 사업에도 투자가 쉬워지고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