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인 명칭 바꾸고… 기업에 동일인 선택권 부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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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동일인 판단기준 및 확인절차 지침 제정안’을 발표한 가운데 대기업집단 총수가 누구인지를 정부가 지정하는 ‘동일인 지정제도’에 대해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기업 대부분이 전문경영인 체제를 갖추고 친족 관념도 바뀌었지만 여전히 낡은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19일 대한상공회의소는 ‘동일인 지정제도 개선과제 건의서’를 통해 “1986년 기업집단 규제와 함께 도입된 동일인 지정제도는 단지 기업의 규모를 이유로 제재하는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인데, 40년 가까이 묵은 규제 틀을 고수하면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밝혔다. 

    동일인은 기업집단 시책의 준거점이 되는 개념이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자산이 일정 규모 이상인 기업집단에 각종 규제를 적용하는데, 이때 기업집단의 범위를 판단하는 준거점이 동일인이다.

    하지만 동일인 지정과 관련해 경제계에서는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을 줄곧 제기해왔다. 이에 공정위는 관련 지침 제정안을 마련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20일까지 행정예고한 상태다.

    대한상의는 건의서를 통해 “동일인 지정제도가 현 시대에도 경제발전에 도움 되는지 살펴보고 변화된 환경에 따라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규제를 합리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관련 우선 동일인이란 명칭을 바꿔 줄 것을 요청했다. 동일인 명칭을 처음 사용하던 당시에는 그룹 총수가 여러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맡는 경우가 많았으나, 지금은 총수가 2개 이상 기업의 CEO를 맡는 경우가 드물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상속으로 오너의 지분율이 희석되고, 가족에 대한 관념도 변화했다. 

    동일인을 자연인으로 할 것인지 법인으로 할 것인지도 논란거리다.

    그간 공정위는 기업 의사와 상관없이 자연인을 우선 지정해왔고, 현재 행정예고된 지침안에도 자연인을 우선 지정하되 예외적 경우에만 법인을 지정하도록 하고 있다.

    대한상의 측은 “상속 등에 따른 오너 지분율 희석, 가족에 대한 관념 변화, 친족관계와 무관한 지배구조 등장 등으로 인해 동일인의 지배력에 대한 의미가 크게 달라졌다”면서 “동일인을 법인(최상단회사)으로 할 것인지 또는 자연인(총수)으로 할지 기업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대한상의는 사외이사와 비영리법인 임원은 동일인 관련자 범위에서 제외해달라고 건의했다. 공정거래법과 다른 법률 간의 정합성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다. 과도하게 넓은 동일인 관련자 범위 규정 때문에 국내 기업의 사외이사 선임 풀(pool)이 교수나 관료 출신에 편중돼 있다는 것이다.

    동일인이 소규모 공익재단에 기부하는 경우 누적 기부 금액이 재단 총출연금액의 30%를 넘어 최다출연자가 되면 기업집단에 자동 편입되는 규정도 개선 과제로 꼽았다. 이런 규제로 소규모 공익재단에 대한 민간 기부가 위축되고 있다고 상의는 설명했다.

    아울러 기업집단 지정자료 제출과 관련해 동일인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이를 제출하지 않는 경우 형벌을 부과하는 현행 방식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제 권한이 없는 동일인에게 친족의 자료까지 요구하고 친족이 거절하면 동일인을 처벌하는 것은 형벌의 책임주의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대한상의는 이 밖에도 ▲불명확한 ‘주요 경영사항’ 문구 구체화 ▲동일인 변경 시 기업집단 범위 변경절차 추가 등을 요청했다.

    이수원 대한상의 기업정책팀장은 “제도를 도입한 70~80년대는 창업 1세대가 급속성장하는 과정에서 국내시장의 경제력집중을 경계했던 시기라면 한 세대 이상이 지난 지금은 세계시장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다투는 시대”라며 “동일인 지정제도가 우리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가 되지 않도록 예측 가능성과 기업 수용성을 고려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