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경제위기에 印 '대체시장' 급부상… 애플·테슬라등 생산기지 구축 박차한은 2020년부터 탈중국 필요성 언급… 政, 무역구조 대전환 연말에나 윤곽전문가 "시장개척·지원내용 구체화 필요… 기업 애로 해결에 적극 나서야"
  • ▲ 지난 16일(현지 시각) 현대자동차는 인도 하리야나주 구루그람에 위치한 현대차인도법인에서 GM인도법인과 탈레가온 공장 자산 인수 본계약을 체결했다. 사진은 계약서에 서명 후 악수를 나누는 김언수 현대차 인도아중동대권역장 부사장(왼쪽)과 아시프 카트리 GMI 생산담당 부사장 모습.ⓒ연합뉴스
    ▲ 지난 16일(현지 시각) 현대자동차는 인도 하리야나주 구루그람에 위치한 현대차인도법인에서 GM인도법인과 탈레가온 공장 자산 인수 본계약을 체결했다. 사진은 계약서에 서명 후 악수를 나누는 김언수 현대차 인도아중동대권역장 부사장(왼쪽)과 아시프 카트리 GMI 생산담당 부사장 모습.ⓒ연합뉴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경기 전망이 갈수록 어두워지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대체 생산기지로 '인도'에 눈독을 들이는 가운데 우리 정부가 이런 기조에 발맞추지 못하고 늑장 행보를 펼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다. 정부 안팎에선 예전부터 '탈중국'을 연신 강조해왔지만, 정부는 사실상 지난해 가입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대응 방안이 없는 실정이다.

    최근 블룸버그 등 해외통신에 따르면 주요 글로벌 기업은 공통적으로 인도를 향한 투자에 주력하는 추세다. 애플은 다음 달 출시하는 아이폰15를 인도 남동부 타밀나두주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애플은 지난 2017년부터 인도 등지에서 제품을 생산해 왔으나 대부분 구형·저가모델 등으로 그다지 중요도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아이폰15 생산은 중국 공장의 출하 시점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기존에 중국 공장에서 먼저 생산한 뒤 6~9개월 차이를 두고 인도 공장에서 같은 모델을 생산하던 것과 비교하면 시차를 크게 좁혔다.

    테슬라·도요타 등은 인도의 자동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지난 6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만나 인도에 연간 생산 50만 대 규모의 전기차 공장을 설립하겠단 계획을 밝혔다. 도요타는 인도에 7710억여 원을 투자해 전기차 생산설비를 확충할 계획이다. 폴크스바겐그룹 역시 전기차 현지 생산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전기차 판매 비중을 전체의 30%까지 끌어 올리겠단 목표를 잡는 등 해외 기업들의 투자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대(對)인도 투자 활동도 진행 중이다. 최근 현대자동차는 연간 13만여 대의 완성차 생산능력을 가진 인도의 탈레가온 공장을 인수했다. 앞서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취임 후 처음으로 인도 현지 공장을 찾아 시장의 중요성을 어필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인도에 체험형 매장 2곳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연말까지 9개 도시에 체험형 매장을 13곳 더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에 더해 인도 시장에 중저가 핸드폰 기종을 크게 늘리는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이런 숨가쁜 인도 현지 네트워크 구축 행보에 비해 우리 정부는 상대적으로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장 원정에 나선 민간 기업들은 투자를 추진하고 있지만, 원활한 유치를 위해 디딤돌 역할을 해야 할 정부는 아직 구체적인 지원책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인도와 관련해 미국 주도의 IPEF 가입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총 14개국의 '경제 협력체'로서의 기능일 뿐, 우리 정부가 인도를 향한 투자에 직접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18일 산업통상자원부 주재로 열린 '제35차 통상추진위원회'에서는 IPEF의 연내 성과 도출을 위한 논의가 이뤄졌지만, 인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날 논의한 내용은 한-유럽연합(EU) 간 통상협정 추진과 한-중미 FTA(자유무역협정) 가입협상 타결 추진 등 아시아권 다른 국가와의 교류에 대한 것들이었다.

    인도라는 신시장의 부상과 탈중국의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예견돼 왔던 내용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2020년 '해외경제 포커스' 보고서를 통해 인도가 중국을 대신하는 생산기지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미·중 무역갈등을 우려해 공급망의 안정성을 확보하려고 생산기지를 다변화할 것이란 예상이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인도는 인구 증가와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따른 반사이익을 바탕으로 견조한 성장세를 지속하며 세계경제 성장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같은 해 대외경제정책연구원도 '한국의 FTA 15년 성과와 정책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우리 무역의 높은 중국 의존도를 지적했다. 연구원은 "미·중 통상분쟁과 일본의 수출규제 등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이 확대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미·중·일 등 주요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별로 수출 다변화를 추진해야 하며, 분쟁에 대한 안전장치 마련에도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0일 서울 강남구 무역협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무역구조 대전환 포럼 출범회의'에 참석해 인사말하고 있다.ⓒ연합뉴스
    ▲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0일 서울 강남구 무역협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무역구조 대전환 포럼 출범회의'에 참석해 인사말하고 있다.ⓒ연합뉴스
    다만 정부가 아예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대외여건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무역구조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지난 7월 '무역구조 대전환 포럼'을 출범했다. 포럼은 △수출 품목·시장 다변화 △무역의 고부가가치화 △무역 외연 확대 △무역지원체계 혁신 등 4개 분과로 구성했다. 정부는 포럼을 통해 오는 11월까지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뒤 올 연말 '무역구조 대전환 전략'을 수립한다는 방안을 밝혔다. 

    출범식에서 정부는 우리 수출이 특정 시장에 편중된 구조적 문제를 갖고 있고, 글로벌 경기변동에 따라 등락을 반복하는 등 대외여건에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탈중국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이미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다만 중국 리스크가 이미 불거진 올 하반기 들어서야 '의견 수렴' 수준의 절차를 밟고, 연말쯤에야 전략을 내놓겠다고 하는 등 인도 시장 선점을 위한 대응에는 '뒷북'을 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최근 중국은 디플레이션(수요 부진으로 인한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부동산 개발기업들의 연쇄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로 경제위기 상황이 들불처럼 번지는 처지다.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신시장 개척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산업연구원 소속 한 연구원은 "꾸준히 상승 중인 인도 시장의 가치에 비해 정부가 여기에 얼마나 중점을 두고 있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며 "정부가 예상하는 시장 개척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이를 위해 어느 정도의 지원을 할 것인지 등을 기업들에 설명하고 투자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일각에선 뒷북이더라도 정부가 민간 기업의 애로사항을 적극 해결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한 연구원은 "기업들이 먼저 인도 시장에 한한 애로사항 등을 발굴해 제시하면 정부가 외교적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