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수가인상으론 역부족… '내외산소' 선택할 환경 조성지역의료 활성화 이끌어내려면 병원 생태계 바꿔야 지역·필수의료 붕괴 막도록 견고한 후속 조치가 더 중요의료계 총파업 막을 교통정리 필수… 피해는 환자 몫으로
  • ▲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6일 오후 서울정부청사에서 의과대학 정원 확대안을 발표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6일 오후 서울정부청사에서 의과대학 정원 확대안을 발표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편집자주] 숱한 논란 끝에 2025학년도 입시부터 의과대학 정원 2000명 확대가 결정됐다. 지난 2006년부터 총 정원이 3058명으로 동결된 상황에서 5058명으로 급진적 규모의 증가가 이뤄지는 셈이다. 수도권과 지역의 의료격차가 커지고 소위 돈 안 되는 필수의료 분야 의사가 부족해지면서 초고령사회에 대응하기 역부족인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의료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6일 보건복지부는 정부 서울청사에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를 열고 2025학년도 입시 의대 입학정원 증원 규모를 2000명으로 발표했다. 작년 11월 대학들을 상대로 진행한 의대 증원 수요 조사 결과(2151∼2847명)보다는 다소 적지만 예상치를 웃도는 파격적 수치다. 

    2021년 우리나라 임상의사 수(한의사 포함)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체 회원국 중 멕시코(2.5명) 다음으로 적다. OECD 평균은 3.7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의사 확충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10년 뒤인 2035년 1만5000명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수급 전망을 토대로 의대 정원 증원 규모를 결정한 것"이라며 "2025학년도부터 2000명이 증원되면 2031년부터 배출돼 2035년까지 5년간 최대 1만 명의 의사 인력이 확충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의료계와의 협의 없이 강행 처리했다는 점은 논란으로 남겠지만 2000명의 의대증원은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초고령화 사회 진입에 앞서 의사 수 부족이 지역·필수의료의 붕괴를 가속화시킨다는 위기감을 극복해야 할 절체절명의 시기를 지나고 있어서다. 

    ◆ 내외산소 등 기피과·지역의료 활성화 선결과제 

    의료개혁의 신호탄으로 의대증원이 실효성을 얻으려면 철저한 후속 조치가 필요한데 우선 기피과 문제를 해결하는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

    현재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로 표현되는 필수의료 진료과는 전공의들이 선책하지 않는 기피과로 전락한 상태다. 미래세대의 의사들이 이 분야에 지원할 수 있는 현실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만약 의사 수 확충에만 집중해 기피과 유입이 이뤄지지 않으면 의료계가 지적하는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라는 부작용만 남게 된다. 파격적 증원 대책과 함께 늘어난 의사가 피부미용이나 성형 분야에 쏠리지 않게 하는 정책적 보완이 필수적이다. 

    경기도 소재 소아과 원장은 "단순히 수가 인상만으로 기피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기피과를 선택해도 충분히 보상이 가능하도록 비급여 또는 검진 분야에서 별도의 우회 통로를 열어줘야만 살아남게 된다"고 진단했다. 

    또 지역의료 활성화를 위한 유인기전이 필요하다. 정부는 비수도권 의대 지역인재전형 60% 이상 추진하고 지방 관내 의료기관에서 장기 근속할 인재를 유인하는 '지역필수의사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충분한 수입·거주 지원 등의 혜택을 제공받는 대신 해당 지역에 장기간 근무하기로 '계약'을 맺는다는 점이 앞서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지역의사제와의 차별점이다. 지역 복무를 법적 강제가 아닌 상호계약에 의한 선택으로 바꿨다. 

    그러나 이 제도는 자발적 지역의료 유입을 기대하는 것으로 실질적 효과가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실제 반나절 생활권인 국내의 상황에서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을 억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방 국립의대 한 교수는 "지역의대를 수도권 대형병원만큼 육성해 진료 생태계를 새로이 만드는 부분에 대해 심층적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며 "지역 완결형 의료전달체계를 형성해 지역환자가 굳이 서울로 향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 의료계 파업 막도록 교통정리 필수

    의료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 한다. 정부는 의료계와의 합의 없이 일방적 형태의 의대증원을 결정했고 이로 인해 전국 의사들 사이에서 공분이 일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이런 결정으로 설 연휴 이후 전면적 의사 총파업이 진행될 개연성이 있는데 이에 대한 방어막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개원 의사들의 경우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아 단체 행동에 따른 법적 요건이나 절차가 없다. 

    이날 이필수 의협회장은 "정부가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한 의료계와의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의대정원 확대 발표를 강행하면 집행부는 총사퇴 할 것이며 즉각적인 임시대의원총회 소집 및 비대위 구성에 들어가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했다. 

    전국 16개 광역시도의사회장 협의회 역시 "정부는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대정원 증원규모’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하지 않다가 공문을 통해 갑자기 의견을 요청하는 비상식적인 행태를 보였다"며 "의대증원을 강행하면 총파업도 불사할 것"이라고 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도 빅5병원을 포함해 86%가 의대증원 강행시 파업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의 의대증원 강행 드라이브에 의정갈등은 최악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총파업 등이 집중적으로 거론되며 가장 큰 피해는 환자 몫으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김성주 암환자권익협의회장은 "정부의 강행 드라이브와 의료계의 맞불 파업 대응은 환자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지난 2020년 당시에도 파업으로 인해 외래 대기는 물론 수술이 미뤄지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이번에 또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강대강 대치의 후폭풍이 환자에게 전가된다는 것이 심히 불편한 심정"이라며 "지금이라도 이를 방어할 대책을 마련하고 환자를 보호하는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