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 재난경보 '심각' 격상… 공공병원 가동 최대치 부족난 인력 상황서 대응… '전원 문제' 발생 PA(진료보조) 법제화 요구 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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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성진 기자
    전공의 사직 대란으로 정부는 '공공병원, 비대면진료, 수가인상'을 기반으로 비상 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했지만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일선 의료현장에서 버틸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비(非)의사 직역에 대한 과도한 업무로딩은 물론 인력이 부족한 지역, 필수의료 공간부터 붕괴가 시작된다. 이는 대통령 거부권으로 폐기된 간호법 재추진과 연결될 전망이다. 

    23일 정부는 보건의료재난 경보단계를 위기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했다. 이는 코로나19 당시 그랬듯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공공병원 인력을 갈아 넣어 대응한다는 의미다. 

    한덕수 총리는 "모든 공공 의료기관의 평일 진료 시간을 가능한 최대로 연장하고, 주말과 휴일 진료도 확대해 공공의료기관 가동 수준을 최대치로 올리겠다"고 했다. 

    가뜩이나 인력난에 허덕이는 공공의료원에서 의료공백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신종감염병 사태와는 다른 형태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과 비교해 고난이도 의료행위를 진행하기 어려운 탓에 중증 환자를 끝까지 치료하기 어려운 구조에 있다. 

    이날 경기도 소재 공공의료원 의료진은 "환자를 적시에 전원시켜 대응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이제 전원 오는 환자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며 "문제는 3차 기관에서 응급이나 중증환자를 보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사태 장기화 시 공공병원 의사들이 주변 대학병원에 동원될 수 있는데 이때 지역의료는 처참한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며 "수가인상과 별개로 과부화로 인한 의료진 '번아웃'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PA 법제화와 간호법 추진 근거될까…比의사 로딩 심각  

    결국 전공의 업무를 대체해 PA(진료보조) 간호사들을 중심으로 비(比)의사 업무로딩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현행법상 PA는 불법이나 현 상황을 버티려면 공교롭게도 이들의 역할이 없으면 사망자가 속출한다. 이는 정부도, 의료계도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다. 

    서울 소재 상급종합병원 PA간호사는 "법제화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유령 간호사의 역할만 수면 아래에서 강조되는 꼴"며 "사태 발생 이전에도 그랬지만 환자를 살리기 위해 불법의 경계에서 서 있는 이 순간이 괴롭다"고 고백했다.

    이날 간호협회 기자회견에 따르면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이후 간호사가 겪는 가장 큰 애로사항은 '불법진료 행위지시'였다. 

    이들 행위로는 채혈, 동맥혈 채취, 혈액 배양검사, 검체 채취 등 검사와 심전도 검사, 잔뇨 초음파(RU sono) 등 치료·처치 및 검사, 수술보조 및 봉합 등 수술 관련 업무, 비위관(L-tube) 삽입 등 튜브관리, 병동 내 교수 아이디를 이용한 대리처방이 있었다.

    특히 PA 간호사의 경우 16시간 2교대 근무 행태에서 24시간 3교대 근무로 변경된 이후 평일에 밤번근무(21:30∼8:00)로 인해 발생하는 나이트 오프(Night Off)는 개인 연차를 사용해 쉬도록 강요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교수가 당직일 경우 처방 넣는 법을 모른다며 쉬는 날임에도 강제 출근 시킨 경우도 있었다.

    탁영란 간호협회장은 "많은 간호사들은 지금도 전공의들이 떠난 빈자리에 법적 보호 장치 없이 불법진료에 내몰리면서 하루하루 불안 속에서 과중한 업무를 감당해 내고 있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또 "간호사들이 법에서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환자간호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의료현장에서 법의 모호성을 이용한 불법진료행위가 간호법 제정을 통해 근절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의대증원을 찬성하는 학자와 의사들이 공통적으로 'PA 법제화'를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구조적으로 대형병원 운영에 있어 전공의 의존도를 줄이지 못한채 파업에 들어가면 의료대란이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날 정부는 전공의 대란에 비대면진료 병원급 확대를 선언하며 경증환자의 병원이용을 자제하는 방법을 택했다. 여기에 각종 수가인상으로 의료공백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 환자들은 두려움… 개원가는 집단휴진 검토 중

    비상진료체계가 가동되지만 수술이 밀리고 입원도 못하는 환자들은 불안감에 휩싸인 상태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한국루게릭연맹회, 한국중증아토피연합회, 한국췌장암환우회, 한국폐섬유화환우회)는 "중증환자들은 끔찍이도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의료공백이 두렵다"고 밝혔다. 

    이들은 "중증환자들은 지금 당장 치료가 필요하다"며 "병원 밖으로 이탈한 전공의들은 조속히 의료 현장으로 복귀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의료계는 의대증원을 반대하는 전공의 이탈에 이어 개원가 집단휴진을 염두에 두고 대정부 투쟁 수위를 올릴 예정이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의협 비대위)는 "내달 3일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를 열고 전체 회원 대상 단체행동 찬반 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전공의들은 집단행동을 한 적이 없다"며 "포퓰리즘 정책에 실망해 자유 의지로 자신의 미래를 포기한 것이 어떻게 집단행동이 되고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