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失期에 시장 신뢰 흔들글로벌 반도체 전쟁에 샌드위치 신세'고군분투' 한계… 골든타임 놓칠 우려삼성 반도체 대대적인 혁신 필요
  •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와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니 마음이 무겁다."

    지난 2021년 11월 오전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 5년 만에 미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9일 같은 김포공항. 오랜동안 발목을 잡던 경영권 승계 관련 무죄 판결을 받은 직후 중동과 말레이시아로 떠나는 이 회장의 얼굴엔 여전히 그늘이 드리웠다.

    빠르게 재편되는 반도체 시장과 삼성이 처한 상황, 끝모를 사법리스크에 대한 답답함이 3년 전 처럼 그를 옥죄고 있기 때문으로 보였다.

    저멀리 미국에선 엔비디아 광풍이 일고 국내에선 하이닉스가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며 환호하는 23일, 삼성전자의 주가는 바닥을 쳤다.

    녹록치 않은 현실에 미래에 대한 불안이 겹치면서 시장의 평가는 냉혹했다.

    자칫 삼성 반도체가 글로벌 패권다툼에서 뒤로 밀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급기야 한수 아래쯤으로 여겨지던 인텔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진출을 선언한지 불과 3년 만에 삼성전자를 제치겠다고 선전포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일본도 반도체 굴기를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 지원에 나서고 있고 중국도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는 상황이다. 대만 TSMC를 따라잡는기 버거운 형편에 인텔 등 후발주자들의 견제까지 받아야 하는 '샌드위치' 신세다.

    사법리스크에 발목이 잡혀있는 동안에 빚어진 HBM 실기가 이재용 회장은 물론 삼성전자에도 버거운 현실로 닥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경쟁이 기업을 넘어 국가 간 대결로 확전되고 있다는 점이다. 천문학적인 자금 지원은 물론 규제 완화 등 걸림돌 해소부터 발빠르게 움직이며 공격적으로 나서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칩스법이다. 이후 대만, 일본, 유럽 등 세계 각국도 반도체 지원법을 내걸고 자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을 위해 소리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떠오른 AI(인공지능) 시장까지 커지면서 속도는 더욱 빨라지는 모습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만 '게걸음'이다. 여야 정치권 싸움에 대대적인 지원책과 규제 개선은 어느새 뒷전이 됐다. 반도체 공장 하나 짓는 데만 해도 하세월이다. 반도체 관련 예산은 1조 3000억원에 불과하고 지원금도 전무하다. 거액의 지원금을 제공하는 주요 국가와 비교하면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 수준이다. 올해 일몰 예정인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 연장방안도 '대기업 특혜'라는 야권의 비판에 불투명하다.

    정부는 지난 1월 2047년까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662조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기업의 반도체 공장 설립과 투자의 발목을 잡는 각종 규제 해제와 대대적인 세제·금융 지원 없이는 반쪽짜리 지원에 그칠 공산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이 회장은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 회장은 국내외 현장을 돌며 삼성의 미래 경쟁력 확보는 물론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다. 삼성 입장에서는 앞으로의 10년 이상의 미래를 결정지을 골든타임을 맞은 상태다. 그러나 기술 경쟁력으로 무장한 삼성이라도 홀로 돌파구를 찾기란 쉽지 않다. 

    반도체는 삼성의 주력 사업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산업의 버팀목이다. 정부의 이런 속도와 실행력으로는 반도체 산업의 30년 공든 탑을 무너뜨릴 수 있다. 1980년대 일본의 반도체 몰락을 반면교사 삼아 정부의 전방위적인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