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日 공장 20개월만에 설립 용인클러스터 가동까지 6년 더반도체 생명 '속도전'… 주도권 상실 우려용수-인허가-민원-금융-세제 '답답'
  • ▲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용인 원삼면.ⓒ연합뉴스
    ▲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용인 원삼면.ⓒ연합뉴스
    한국 반도체를 초강대국 반열에 올려놓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소리만 요란한 허울뿐인 구호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반도체 규제를 비롯해 공장 건설에도 잡음이 잇따르며 정부 목표와 엇박자를 내고 있어서다. 

    반도체 패권전쟁을 선포한 미국을 비롯해 일본, 유럽 등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대비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자칫 골든타임을 놓쳐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월 2047년까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662조 원을 투자한다는 청사진을 내놨지만 급박하게 변하는 글로벌 상황과 맞지 않는 느슨한 조치에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반도체는 우리 핵심자산이자 안보자산이다"이라며 "반도체 산업은 그 어떤 산업보다도 민생을 풍요롭게 한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 혁명의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한 속도전을 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발언은 현장의 모습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2019년 2월 부지가 선정되고 2022년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역 민원·토지 보상·용수 공급 인허가 등이 여전히 발목을 잡으며 행정 절차 통과에만 2년이 소요됐다. 

    내년에 착공에 들어가도 2027년에나 가동이 가능할 것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공장을 짓기 위해 무려 6년이 걸리는 셈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는 부랴부랴 TF(테스크포스)를 구성해 대응하고 있지만 다른 경쟁국가와 비교하면 한참 뒤쳐져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일본은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 1위 대만의 TSMC는 지난달 24일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에 건설한 반도체 1공장을 완공하고 개소식을 열었다. 지난 2021년 10월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2022년 4월 착공한 지 1년 10개월 만이다. 통상 5년 이상 걸리는 반도체 공장 설립을 불과 20개월 만에 끝낸 것이다.

    이는 '반도체 부활'을 내걸고 있는 일본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 일본은 이번 구마모토 공장 설비 투자의 절반에 가까운 4억760억엔(약 4조2000억원)의 보조금을 제공한데 이어 공업용수나 전력 등 문제 해결에 과감히 나선 결과라는 분석이다. 

    일본 정부는 2021년 반도체산업을 살리기 위해 2030년까지 반도체 관련 매출을 2021년의 세 배인 15조엔(약 133조원)으로 늘린다는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반도체 시장에서 잃어버린 30년을 되찾겠다는 각오다.

    이와 함께 인텔은 지난 2021년 파운드리 사업 진출을 알린지 불과 3년 만에 2나노미터(㎚·1㎚=10억분의 1m)와 1.8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도입하고, 2027년 1.4나노 공정을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다. TSMC와 삼성전자 양산 예정일보다 앞선 계획이다.

    인텔이 자신감을 내비친 배경에는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우군 확보다. 미국은 반도체법에 따라 100억 달러(약 13조 2600억 원) 이상의 보조금을 지원하기 위해 인텔과 논의 중이며 마이크로소프트(MS)는 이날 자체 개발 중인 AI 칩 생산을 인텔 파운드리에 맡긴다고 발표했다. 물량은 인텔의 역대 최대 수주액인 50억달러로 추정된다.

    미국 정부 역시 노골적으로 밀어주고 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21일(현지시간) “대만과 한국에 넘어간 반도체 주도권을 미국이 가져와야 한다”며 “미국이 세계 반도체를 선도하기 위해 ‘제2의 반도체지원법’이든 뭐든 (미국에 공장을 짓는 기업을)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정부의 발빠른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도체 생태계에서 생명인 속도전에 뒤쳐지면 주도권을 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 홀로 분투' 중인 기업 입장에서도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우리나라 반도체 관련 예산은 1조 3000억원에 불과하고 지원금도 전무한 실정이다. 거액의 지원금을 제공하는 주요 국가와 비교하면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 수준이다. 올해 일몰 예정인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 연장방안도 야권의 비판적 기류 탓에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나마 산업부는 이달까지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종합 지원방안'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지원 방안에는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와 같은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내 기반시설 구축비에 대한 국비 지원을 확대하고, 추가 인센티브 등을 도입하는 안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인력 양성 등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됐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국가들이 나서 반도체 육성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 홀로 대응하기는 역부족"이라며 "속도에 밀리면 경쟁력을 담보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