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늑장 판결 도마에심리만 8개월… 해외에 있어 송달도 늦어져작년 기술유출 23건… 5년래 최대정쟁에 산업기술보호법 처리 하세월
  • 반도체 기술 유출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느긋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법원과 우리 정부의 실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기업들은 매년 수십조원의 비용을 투입하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기술유출에 대한 늑장 판결에 관련 법안 처리도 미뤄지고 심각성을 여전히 모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8일 관련업게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50부는 최근 SK하이닉스가 전직 연구원 A씨를 상대로 낸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고 “위반 시 하루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2001년 SK하이닉스에 입사한 A씨는 D램설계개발사업부 설계팀 선임연구원, HBM사업 수석, HBM 디자인부서 프로젝트 설계 총괄 등을 맡은 핵심 인재로 2022년 7월 퇴사했다.

    퇴사 당시 A씨는 마이크론을 비롯한 경쟁업체에 2년 간 취업을 금하고 용역, 자문 등의 계약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의 약정서를 작성했지만 이를 어기고 마이크론 임원으로 이직했다. 정확한 이직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상당한 양의 핵심기술이 유출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HBM 핵심 기술이 유출될 가능성을 법원이 인정해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문제는 법원의 판결이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지 한 참 후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SK하이닉스의 신청은 작년 8월 이뤄졌는데 약 7개월 만에 판결이 이뤄진 것이다. 

    A씨가 해외 거주 중이어서 서류 송달 등에 시간이 걸렸다고 하지만 기술을 마이크론에 넘기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특히 A씨가 SK하이닉스에서 4세대 HBM 개발에 관여한 만큼 관련 핵심 기술도 이미 넘어간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HBM 시장에서 존재감이 미미했던 마이크론은 지난달 말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보다 먼저 5세대 HBM인 HBM3E 양산 소식을 알리며 업계에 충격을 줬다. 법원의 늑장 판결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는 이유다. 

    정부도 정쟁에 휘말려 기술 유출 문제는 뒷전이 됐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산업기술보호 주요 이슈와 대응방향'에 따르면 지난해 기술유출 건수는 23건으로 전년(20건) 대비 15% 증가했다. 최근 5년 내 최대치다.

    산업부는 상반기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을 마치고 하반기부터 적용할 계획이었지만 지난해 9월 제출한 이 법안이 국회에 아직 계류 중이다. 

    산기법 주요 개정 내용으로는 처벌강화, 관리강화, 심사강화, 기업지원 등이 포함됐다. 구체적으로는 처벌구성요건을 목적범에서 고의범으로 확대하고 해외유출범죄 벌금을 현재 15억원 이하에서 65억원 이하(국가핵심기술), 30억원 이하(산업기술)로 상향된다.

    또한 기술유출 브로커도 처벌할 수 있도록 침해행위를 확대하고 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한도를 3배에서 5배로 확대한다. 판정신청 통지제, 보유기관 등록제 신설, 실태조사 강화 등 관리강화와 해외인수합병 승인 심사항목 추가, 대상기관과 함께 외국인에게도 공동신청 의무 부여 등 심사강화 방침도 세웠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기술 보호가 국가경쟁력과 안보를 지키는 핵심임을 인식하고 입법을 조속히 마무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