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국민 1인당 25만원, 가구당 100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주자"13兆 재원 마련 방법은 함구 … 올해 국가채무는 1200兆 육박비기축통화국이어서 빚 늘면 국채금리 오르고 신인도 하락 위험
  • ▲ 국가채무.ⓒ연합뉴스
    ▲ 국가채무.ⓒ연합뉴스
    선거가 임박하니 유세판에 선심성 퍼주기 망령이 되살아나는 모습이다. 그 선봉엔 '한국의 차베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4일 험지로 분류되는 서울 송파와 강남 일대를 돌며 지원유세에 나섰다. 이날 이 대표는 현 정부의 경제실정론을 띄우는 데 공을 들였다. 잠실 새마을전통시장을 찾은 자리에서는 "경제는 폭망하고 물가는 천정부지"라며 "경제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때"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 대표가 제시한 한국 경제의 심폐소생술은 바로 그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현금 살포'다. 이 대표는 모든 국민에게 1인당 25만 원씩, 가구당 평균 100만 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을 주자고 주장했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 차상위 취약계층에는 1인당 10만 원을 추가로 주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재원은 13조 원쯤이 든다"며 "윤석열 정권의 부자 감세와 민생토론회에서 밝힌 선심공약 이행에 드는 900조~1000조 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민생회복지원금을 소위 '이재명표 사업'으로 불리는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로 주겠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문재인 정부에서 살포했던 전 국민 재난지원금 시즌 2를 하겠다는 얘기다.

    이 대표의 민생회복지원금 발언은 우리 정치의 퇴행적 후진성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함을 남긴다. 인공지능(AI)을 얘기하고 달 착륙선을 쏘아 보낼 계획을 세우는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선거는 여전히 60~70년대 금품·물품을 풀던 막걸리·고무신 선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경제 정책과 비전은 한결같다. 미래 먹을거리 첨단산업 육성이나 수출 활성화, 경제 활성화를 가로막는 규제 혁파 등이 아니라 오로지 현금을 살포해서 문제를 풀자는 식이다. 역세권에 장기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지어 무주택자에게 나눠주자는 기본주택, 모든 성인에게 1000만 원의 대출을 의무화하자는 기본대출제도 등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기본 시리즈'가 모두 퍼주기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불과하다. 여당에서 이 대표 정책을 두고 "돈을 벌 방법은 생각하지 않고 쓸 궁리만 하는 무책임 정책"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거대 야당을 이끄는 대표라고는 믿기 어려운 가벼움과 즉흥성도 문제다. 당장 감언이설로 표만 얻으면 된다는 생각이 앞서다 보니 중장기적인 안목과 시야는 좁아지는 모습이다. 지난 2022년 5월 인천계양을 보궐선거에 나섰던 이 대표가 지역 공약으로 김포공항 국내선 폐지와 수직이착륙기 도입을 언급했다가 여권으로부터 '공상과학 만화냐'며 십자 포화를 받았던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4일 서울 송파구 잠실 새마을전통시장을 방문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연합뉴스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4일 서울 송파구 잠실 새마을전통시장을 방문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연합뉴스
    이 대표는 전 국민 지원금을 주기 위해 13조 원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했으나, 정작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할 지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지난해 글로벌 경기침체와 고금리 등의 여파로 세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전 국민 지원금을 주려면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 불가피한 처지다. 문재인 정부의 근본 없는 소득주도성장(소주성) 등 설익은 정책들로 말미암아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마저 바닥난 상황이어서 재원 마련의 상당 부분은 적자국채 발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나랏빚이 올 연말이면 이미 1200조 원에 육박한다는 데 있다. 정부는 '2024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서 올해 국가채무 규모를 1195조8000억 원으로 추산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51.0%까지 오른다. 나랏빚이 경제 규모의 절반을 넘는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나랏빚은 약 20년 후 나라경제 규모를 추월하는 지경이 된다. 국회 예산정책처 계산으로는 2040년 국가채무는 2939조1000억 원으로, GDP 대비 비율은 100.7%다.

    '숨은 빚'으로 불리는 공공부문 부채를 포함하면 지난 2022년 기준 나랏빚 규모는 1588조7000억 원에 이른다.

    민주당을 비롯해 야권에선 선진국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국가부채가 작다고 주장한다. 2022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비율은 53.5%다. 미국(144.2%), 일본(254.5%), 영국(104.0%), 프랑스(117.3%)보다 낮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달러, 유로, 엔, 파운드 등 기축통화국(基軸通貨國)이다. 기축통화는 국제 결제의 기본이 된다. 달러화는 국제 결제의 50%쯤을 차지한다. 달러의 쓸모가 많은 만큼 미국 국채 수요도 많다. 따라서 미국은 금리 상승 부담 없이 빚을 늘릴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비기축통화국이다. 비기축통화국은 빚이 늘면 국채 금리가 오르고 신인도가 떨어질 위험이 커진다.

    이를 고려하면 한국의 국가부채 비율은 낮다고 볼 수 없다. 한국의 올해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비율 전망치는 55.6%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선진국으로 분류한 13개 비기축통화국 중 싱가포르(168.3%)와 이스라엘(56.8%) 다음으로 높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지난 2022년 내놓은 2020~2026년 비기축통화국의 재정건전성 전망 분석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은 2020년 47.9%에서 오는 2026년 66.7%로 18.8%포인트(p)나 오를 전망이다. 같은 기간 국가부채비율 순위는 17개 비기축통화국 중 9위에서 3위까지 가파르게 오를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지난 문 정부에서 나랏빚이 급격히 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며 돈을 풀었던 다른 비기축통화국은 재정건전성 관리를 위해 정부 지출을 줄였지만, 문 정부는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했다. 박근혜 정부 말미인 2016년 말 국가채무가 626조9000억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문 정부가 집권한 5년(2017~2021년)간 늘어난 나랏빚은 340조3000억 원에 달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부담해야 하는 이자지출 비용만 5년간 115조 원을 웃돌 거로 추산된다.
  • ▲ 재정.ⓒ연합뉴스
    ▲ 재정.ⓒ연합뉴스
    이런데도 이 대표가 다시 전 국민 지원금 카드를 꺼낸 것은 문 정부 때인 2020년 21대 총선 전야에 발표한 재난지원금이 민주당에 총선 압승을 안겼다는 자체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나라를 망치는 망국병이다. 틈만 나면 빚을 늘려 선심성 정책을 펴자는 이 대표의 전 국민 지원금 타령은 미래 세대에게 빚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미래를 담보로 현금성 지원이라는 마약을 국민에게 상습 복용시키는 셈이다.

    설상가상 한국은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장래 빚을 갚을 사람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2022년 기준 총인구의 70%를 웃도는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50년 뒤인 2072년에는 45.8%로, 절반 밑으로 추락하게 된다. 반면 고령화는 빨라져 2072년에는 청장년 1명이 노인 1.04명을 부양해야 하는 처지다.

    게다가 현금 살포성 정책은 지금 같은 고물가 상황에선 물가를 더 자극할 위험이 크다. 이 대표가 주장하는 지역화폐도 단점이 많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이재명식 국정운영을 두고 홍준표 대구시장은 과거 의원시절에 베네수엘라 급행열차라고 비판했었다. 다음 달 10일 우리는 베네수엘라 급행열차에 오를지, 말지를 선택해야 한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답은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