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 "대형마트 족쇄 풀어야" … 野 "규제 완화하면 골목상권 피해"중국 직구 플랫폼, 국내 유통시장 빠르게 침투 … 대형마트 위협정부·업계, '유통미래포럼' 꾸려 … 연내 '유통산업혁신·발전 전략' 마련
  • ▲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방문객이 '1+1'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방문객이 '1+1'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알테쉬(알리·테무·쉬인)로 대표되는 중국 이커머스업체의 국내 공습이 거센 가운데 대항마로 꼽히는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허용 등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개정안이 야당의 반대 속에 자동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경제 발목 잡기 형태가 여전하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3일 정부와 국회에 따르면 정부는 유통법 개정을 통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공휴일 원칙 폐지, 새벽배송 허용 등을 추진했지만, 21대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못하고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유통법 개정안은 지난 2021년 6월 발의됐으나 현재 3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업위) 소위원회에서 지난해 8월과 12월 단 2차례 논의된 후 소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현재 오프라인 매장 중심의 대형마트는 새벽배송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전통시장 등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2012년 개정된 유통법에 따른 것이다. 이 법의 핵심은 대형마트 월 2회 의무휴업과 함께 영업시간 제한(자정~오전 10시)이다.

    정부는 유통시장 무게추가 온라인으로 옮겨진 만큼 대형마트에 묶인 족쇄를 풀어야 한다는 태도다. 지난해 정부는 대형마트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대신 대형마트와 정부가 전통시장에 대해 판로와 디지털 전환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중소 유통업계와 합의한 바 있다.

    유통업계는 대형마트를 옥죄던 규제가 풀리면 새벽 배송 수요가 많은 맞벌이 부부와 1인 가구의 만족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대형마트 규제 완화가 전통시장 매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의견도 있다. 대구시가 지난해 2월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하고 6개월간 효과를 분석해보니 둘째·넷째주 일·월요일 전통시장 매출이 34.7% 신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야당은 대형마트 규제 완화는 곧 골목상권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문제는 유통시장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유통시장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이런 가운데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 등 대형 자본으로 무장한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이 빠른 속도로 국내 유통시장에 침투하면서 국내 유통업계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해외 직구 규모는 6조7600억원으로 2014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6조원을 넘겼다. 이 중 중국 해외 직구 금액은 3조2873억원으로 전체의 절반쯤을 차지한다.

    이른바 '알테쉬'를 위시한 중국 직구 플랫폼 업체들이 저가 물량공세로 국내 유통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지만, 국내 대형 유통업체들은 각종 규제에 손발이 묶인 채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지난 21일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개최한 '중국 이커머스 공습, 소비자 및 소상공인 보호 방안' 세미나에서 중국 직구 플랫폼의 국내 침투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 교수는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 성장이 이미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중국 이커머스의 공습으로 국내 기업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며 "미국은 이미 정부 차원에서 중국 이커머스의 공습을 경제·안보적 관점으로 접근·대응하고 있다. 반면 우리 기업들은 도와주는 우군 없이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그러면서 "한국은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인 만큼 초저가 제품들에 대해 관세, 부가세를 매기는 등 규제로 대응하는 것은 어렵다"며 "해외 플랫폼의 침투를 막기 어렵다면 국내 사업자들에 대한 역차별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정부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 산업부 장관.ⓒ연합뉴스
    ▲ 산업부 장관.ⓒ연합뉴스
    한편 정부는 법 개정이 녹록잖은 상황에서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의 공습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짜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유통업계 관계자와 전문가가 참석한 가운데 '유통산업 혁신 간담회'를 열고 급변하는 유통산업 현황을 진단하고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간담회에는 제경희 산업부 중견기업정책관과 대한상의 장근무 유통물류진흥원장, 한국유통학회 이동일 회장, 한국상품학회 서용구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이달 안으로 산·학·관이 함께하는 '(가칭)유통미래포럼'을 발족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자율로봇 등 첨단기술이 국내 유통산업 전반에 융합·확산할 수 있도록 기술 개발, 창업 촉진 등의 내용을 담은 유통산업발전 전략을 연내 수립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정부는 해외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국내 시장 잠식에 대해 위기감을 갖고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관세청, 산업부 등 관계 부처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응방안을 찾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달 25일 전담조직을 만들어 이커머스 시장 구조와 경쟁현황 등을 심층 분석하기 위한 시장 실태조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산업부도 신규 전담팀 운영을 통해 국내 전자상거래 생태계 강화 지원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관세청,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도 소비자 보호 강화, 가품 유입 차단, 개인정보 보호법 준수 감시 등 규제 강화에 초점을 맞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