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위기發 고환율‧고유가…금리 인하 지연금융 불확실성 증폭, 자산가들 바벨전략 추구중간위험 제외하고 안정적이거나 고위험·고수익 전략 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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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고액 자산가들이 역대급 혼란기를 겪고 있다. 투자 및 자산관리를 위해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고 대부분 그 방향성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때 믿음직한 투자처였던 홍콩H지수 ELS(주가연계증권)의 배신에 이어 미국의 금리인하 지연 가능성과 '킹달러' 강화에 중동 사태마저 가세하면서 그야말로 '시계 제로'다. 이 같은 혼란기에 고액 자산가들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갈 곳을 잃은 투자금이 ‘모(위험한 투자) 아니면 도(안전한 투자)’로 양극화하는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 韓 경제 복합위기 먹구름… 천장 뚫린 환율, 물가 우려 가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6일 "이란의 이스라엘 보복 공습에 따른 중동 불안 고조로 거시경제・금융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모습"이라며 “범정부 비상대응체계를 갖춰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중동분쟁 격화 우려에 이날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00원선을 돌파했고 국제유가 역시 중동 지역 불안을 반영해 들썩이고 있다. 

    주식시장도 충격을 피해가지 못했다. 코스피와 코스닥지수는 전거래일보다 각각 2.28%, 2.3% 떨어졌다. 글로벌 위험 자산 투심 약화의 여파로 국내 증시에 대한 ‘외국인 엑소더스(대탈출)’가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최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6월물 브렌트유는 장중 배럴당 92.18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는 중동산 오일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나라 경제에 직격탄을 가할 수 있다. 

    고유가·고환율 추세는 국내 물가 관리를 어렵게 하고 가뜩이나 늦어지고 있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더 지연될 가능성을 키운다. 고환율은 수입 가격을 밀어 올리는 방식으로 국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타격이 더 크다. 

    시장에서는 당초 오는 6월로 예상했던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올해 첫 금리인하 시점을 9월로 늦추는 분위기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미국의 물가 지표 결과에 따른 연준의 기준금리 전망 변화까지 고려해 예상되는 연준의 첫 금리 인하 시기를 종전 6월에서 9월로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고려한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 전망도 오는 7월에서 10월로 전망치가 속속 뒤로 밀리고 있다.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대기자금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증시 대기성 자금 중 하나인 투자자예탁금은 지난 12일 기준 54조9353억원으로, 50조원대에 머물던 연초에 비해 올랐다.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고는 80조8118억원을 기록 중이다. 

    은행권 대기자금인 요구불예금은 한 달 새 33조원 넘게 늘었다.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은행의 지난달 말 수시입출식예금(MMDA)를 포함한 요구불예금 잔액은 647조8882억원으로 전월(614조2656억원)보다 33조원 넘게 불어났다. 지난 1월(590조7120억원)과 비교해서는 60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반면 홍콩 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관련 ELS 손실로 ELS 신규 발행시장은 위축되고 있다. 

    만기 상환 증가로 상환금액이 급증하면서 ELS 시장의 자금 이탈이 본격화하고 있는 추세다. 

    은행 관계자는 ”ELS 손실 사태와 은행권 불완전판매 논란으로 올 들어 신탁상품 판매가 위축되는 분위기“라며 ”고액자산가 등 투자자들은 다른 투자상품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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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액자산 트렌드, 바벨전략… 테크주 담고 안전자산도 굴리고

    금융‧외환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되자 고액 자산가들은 안전자산의 특성을 살려 중장기적으로 투자하되 주식 등과 함께 분산 투자하는 '바벨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투자 선택을 할 때 중간을 제외하고 양쪽 극단의 것을 취하는 양극화 전략이다. 

    특히 기대수익률을 3%~5%대까지 노려볼 수 있는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홍콩 H지수 ELS 손실사태로 ELS 시장이 위축된 점도 이같은 추세를 부추긴다. 주로 예금과 신종자본증권, DLB(기타파생결합사채), 국고채 ETF(상장지수펀드)가 안전자산으로 꼽히며 뭉칫돈 수요가 몰리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2일까지 DLB 발행액(원화+외화) 합산액은 4조8125억원으로 올해 발행된 파생결합증권 종류 중 발행액이 가장 많았다.

    올해 들어 현재까지 상장·비상장 기업들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은 총 5조720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발행 규모인 4조7648억원에 비해 1조원가량 늘었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없거나 통상 30년 이상으로 만기가 긴 채권과 주식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며, 발행 시점 5년 뒤 콜옵션(조기상환권) 조건이 보통 붙는다. 후순위 채권으로 다른 채권보다 금리가 높은 편이며 연내 기준금리가 하락하면 채권가격이 오르는 만큼 신종자본증권 매매로 시세차익도 노릴 수 있다. 매매차익에 비과세가 적용된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김지영 하나은행 서압구정골드클럽 PB부장은 “금리인하 속도가 둔화하면서 고액자산 고객들은 성향에 따라 현금 자산의 50~70%를 안전자산에 두고 있다”면서 “꾸준히 국고채를 분할 매입하고 달러와 엔화 등을 나눠 비중을 늘리는 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기채를 통해 이자수익을 추구하면서도 금리하락에 따른 매매차익을 누릴 수 있는 장기채도 함께 보유하는 바벨 전략방식을 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도아 우리은행 TCE시그니처 PB팀장은 “현재는 금리가 이미 높아져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기대수익률을 원하는지에 따라 투자 방식 달라진다”면서 “주식은 국내‧외 AI(인공지능), 빅테크주를 가져가면서도 조정이 올 것을 대비해 추가 자금을 항상 준비를 해놓는 것을 자산가들에게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채권투자 부문에서 고액 자산가들은 단기채와 장기채를 동시에 사들이고 있다“면서 ”단기채 이자 수익으로 일정한 현금 흐름을 확보하고, 장기채 일부를 포트폴리오에 포함해 미래 자본 차익을 노리는 식“이라고 덧붙였다. 

    고위험 자산투자 트랜드에 대해서는 “테크주 중심으로 미국 주식을 담고 있으며, 금과 달러는 고점에 이른 만큼 환전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PB는 “고액 자산가들의 자금은 만기 개념이 없고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신종자본증권이나 확정금리를 지급하는 하이브리드 방카슈랑스 또는 매월 배당수익금을 받을 수 있는 이표채 혹은 신용등급 AA이상의 우량 회사채, 단기 국‧공채로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