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적대적 M&A 시도에 사업 안정성 우려 목소리 커져사모펀드 경영권 장악 시 기존 사업 불확실성·기술 해외 유출 우려"국가 핵심 기술 보호 장치 필요"…정부·정치권 '예의주시'캐스팅 보트 국민연금 결정 주목…"고려아연 산업계 의미 감안해야"
  • ▲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참전한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한창인 가운데 글로벌 비철금속 시장에서 20년 넘게 시장 지배자적 위상을 누려온 고려아연 사업 안정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MBK가 고려아연 경영권을 장악하면 기존 사업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동시에 조직 자체도 흔들릴 수 있어서다. 다수의 비철 제련 핵심기술을 보유한 고려아연 기술의 해외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18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고려아연의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39.2%(3조1926억원), 65.3%(2652억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려아연은 지난 2분기에도 매출은 23.8%, 영업이익은 72.6% 각각 증가한 실적을 내놓은 바 있다. 4분기 전망도 청신호다. 4분기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33.6%(3조2249억원), 34%(2653억원)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전세계 아연 생산량 1200만톤 중 10%를 책임지는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기업이다. 아연·연·동·은 등 기초 원자재를 반도체, 자동차, 조선, 전자·전기, 철강 등 주요 산업에 공급한다. 개별로 보면 고려아연이 64만톤, 영풍 36만톤, 썬메탈 20만톤 등이다.

    재계 28위 영풍그룹의 시작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년 후인 1949년부터 시작된다. 황해도 사리원 태생인 장병희 창업주와 최기호 창업주가 공동으로 '영풍기업사'를 세운다.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철강과 비철의 '소재 자립'을 지시했는데, 이때 영풍은 제련소를 짓기로 한다. 이때 만들어진 제련소가 1970년 국내 최초 아연 생산시설인 석포제련소다.

    1974년 탄생한 고려아연은 국익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회사다. 1973년 박정희 정부가 중화학공업과 기초소재산업을 육성하고자 울산광역시 온산읍에 대규모 비철금속 공업단지를 조성하고 기업들에 적극적인 투자를 주문했다. 이 단지에 제2제련소를 지어 생산능력을 높이고자 했던 영풍의 사업계획을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지금의 고려아연 온산제련소가 탄생했다.

    고려아연과 영풍은 박정희 정부 시절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의 한 축을 담당했던 회사로 현재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사모펀드의 고려아연 인수, 국가 기간산업 흔들 수 있다

    업계에선 사모펀드인 MBK의 고려아연 인수 자체가 문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MBK가 "고려아연의 해외 기술 유출은 없다"고 수차례 강조하고 있지만 단기 수익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신속한 자본회수를 중시하는 사모펀드 운용사 특성을 고려할 때 우려가 잇따른다.

    뉴데일리가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고려아연 사태 관련 국민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고려아연의 생산 소재가 국가기간산업 또는 대한민국 경제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기반산업이라고 생각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인 72.4%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그렇지 않다' 답변은 17.7%에 그쳤다.

    특히 고려아연이 사모펀드에 매각되면 해외로 국가 전략기술과 인력이 유출될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지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62.6%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반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은 25.2%에 그쳤다.

    이미 지방자치단체나 정치권은 MBK의 고려아연 인수를 국가 차원에서 보호해야 하는 미래 핵심기술을 보유한 우량기업의 경영권 장악 시도라는 차원으로 보고, 이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MBK가 "고려아연의 해외 기술 유출은 없다"고 수차례 강조하고 있지만 사모펀드 운용사 특성을 고려할 때 이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우려가 잇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은 다수의 비철 제련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해야 할 전략 자산이라는 관점이다. 기술 해외 유출은 기간산업 경쟁력을 약화하고 국가 경제에도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정성이 커지는 최근 상황을 고려하면 국가적 기술 보호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또한 MBK가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 시 사실상 국내 아연 공급망은 독점 체제가 된다는 것도 우려의 지점이다. 경영권을 넘겨받은 MBK가 갑작스레 생산 물량을 줄이거나 가격을 인상하더라도 견제할 수단이 사라진다. 향후 MBK가 엑시트(투자 회수)할 때 국외 자본이 경영권을 인수할 경우에는 국내 아연 공급망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특히 MBK에 일부 중국 자본이 참여하고 있어 핵심 기술산업의 해외매각 우려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영풍과 고려아연의 경쟁 구도가 깨지면 공급물량을 줄이거나 가격 인상을 견제할 수단이 사라진다"면서 "아연 공급 문제는 자동차 등 철강 관련 기업들이 줄줄이 영향을 준다. 연간 42만톤에 달하는 국내 아연 수요를 사실상 사모펀드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익을 염두에 두고 탄생한 고려아연은 글로벌 비철금속 시장에서 절대적 지위를 갖고 있는 기간산업을 담당하는 기업"이라면서 "단기간에 수익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하는 사모펀드의 특성상 아연 가격을 인상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공급망 자체의 가격 인상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사모펀드의 기업 인수 합병은 법적으로 막을 순 없지만 모든 곳에 사모펀드가 자본주의만을 외치며 수익만을 좇는 일이 발생할 경우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가 핵심 기술 보호 장치 필요"…캐스팅 보트 국민연금 결정 주목

    때문에 국가 핵심 산업과 기술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금이라도 금융당국이 나서 사모펀드의 국가 기간산업 경영권 인수에 따른 다양한 문제에 대해 엄격한 심사를 진행하고, 장기적으로는 투기자본의 핵심 기업 인수를 제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이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고려아연은 국가기간산업이고, 고려아연이 가진 제련 기술은 매우 중요한 기술"이라며 "산업부 입장에서 상당히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기업과 협의해 향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은 사모펀드의 적대적 인수합병(M&A)에 강한 우려를 표하며 이른바 'MBK 방지법'을 발의했다. 반(反) ESG(환경·사회·지배구조)적 운용사들이 국민연금 출자를 받을 수 없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고려아연이 국내 산업계에서 지니는 의미를 감안할 때 캐스팅 보트 역할을 맡을 국민연금이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 표결에 참여할지 이목이 쏠린다. 국민연금은 고려아연 지분 7.83%를 들고 있다. 정치권이나 정부의 관심이 집중된 만큼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시 사모펀드 편에 서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국민연금 입장이 조만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예정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관련 사안에 대해 집중 질의가 예상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