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2기 경제팀이 지난 100일간 달려온 길은 경기하강 차단과 시장 안정을 위한 전방위 정책의 양산에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 집행과 보완, 구조조정에 최우선을 둘 전망이다.

    잇따르던 후속대책이 4월 임시국회를 끝으로 사실상 '멈춤' 상태로 접어든 가운데 일단 기존 대책이 시장에 뿌리를 내려 효과를 내도록 유도하면서 부작용이 있다면 미세조정을 가하겠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통화.재정 측면의 확장과 규제 완화 일변도였던 정책의 물줄기가 하반기에 경기 상승기조가 분명해지면 분야에 따라 조정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미 3월을 기점으로 경제지표에서 진정 내지 호전을 알리는 시그널이 잇따르고, 풀어놓은 유동성 일부가 엉뚱한 데로 흘러들면서 자산 거품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데다 지출 확대의 후유증인 재정 건전성을 걱정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 "유동성 흡수 시기상조"..3분기말이 분수령?

    17일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작년 9월 금융위기가 터지고 돈이 돌지 않자 통화당국은 5.25%이던 기준금리를 작년 10월부터 매달 내려 지난 2월 2.00%까지 낮춰 유동성을 공급해왔다.

    여기에 중소기업 대출의 만기연장, 신용보증 공급의 확충이 2기 경제팀이 주력한 통화.금융정책의 근간이었다. 하지만 유동성 공급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돈이 돌지 않고 있다는 하소연이 적지 않다.

    정부도 자금이 곳곳에 스며들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고 확장적 정책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출구전략'에 시동을 거는 타이밍은 "민간부문의 자생적인 경기회복력이 나타날 때"이지만 그런 시기는 아직 멀었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최근 경기 바닥론이 확산되면서 불어난 단기 부동자금이 주식과 부동산시장으로 흘러가면서 자산시장에 거품이 형성되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도 시장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부작용이 확대 재생산될 경우 민간 자생력의 회복 전이라도 통화정책 기조를 뒤흔들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통화정책이 가장 빨리 '확장'에서 '긴축'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산시장이 실물시장과 괴리된 채 너무 앞서가고 있다"면서 "단기유동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만큼 금융.통화정책 부분에서 정책기조 변환이 빠르게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4분기보다 조금 이른 시점에 비전통적 방식의 유동성 공급을 줄이고 4분기쯤에는 금리 인상도 고려해야 한다고 최근 권고했다. 3분기말이 분수령이 될 가능성을 제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외환시장은 확 달라졌다. 외국환평형기금채권 30억 달러 발행 등으로 달러사정이 좋아지자 풀었던 달러를 거둬들이는 모습도 목격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14일 만기가 도래하는 외환스와프 자금 20억 달러에 대해 재입찰을 하지 않으면서 경쟁입찰 방식의 외환스와프 잔액이 46억 달러에서 26억 달러로 줄었다.

    ◇ 내년 긴축재정 불가피..세제.부동산 주목

    통화.금융정책 못지 않게 부동산 정책에도 변화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월 대비 전국 주택가격이 지난 4월에 7개월 만에 상승하고 특히 투기의 진원지인 강남3구를 비롯한 일부 '버블 세븐' 지역 아파트값이 들썩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미분양 해소 등 주택시장 활성화를 위한 각종 해법이 아직 시장에 착근되지 않은 점을 감안해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투기 조짐이 나타날 경우 투기지역 지정 등 정책의 미세조정을 통해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2월과 4월 잇따라 세제개편을 통해 감세 기조를 이어갔던 세제정책도 8월 정기 세제개편을 앞둔 상황에서 후속조치는 스톱한 상태다. 8월 개편에서는 불합리한 감면이나 비과세 제도에 대해 메스를 들이대겠다는 입장이다. 수술대 위에는 올해 말에 일몰이 도래하는 76개 감면제도가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재정 건전성 확보와 연결된다. 작년말 수정예산에 이어 지난 달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경기부양 및 민생안정용 지출을 대폭 늘리면서 재정에 큰 구멍이 생긴 만큼 전례없는 세입 및 세출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있다.

    오는 24일 재정전략회의를 거쳐 모습을 드러내겠지만 내년에는 올해보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긴축 재정 운용이 기정사실처럼 여겨지고 있다.

    실물 분야에서는 이렇다할 후속대책 준비가 없는 상황에서 추경예산 등을 통해 입안한 일자리, 중소기업, 경기부양 대책을 누수 없이 신속하게 집행하면서 정책효과를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 기업 구조조정 정부 개입 강화

    2기 경제팀의 최대 역점 분야는 구조조정이다. 실물경제 곳곳에 자금이 제대로 돌지 않고 있는 주된 이유가 구조조정의 지연에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는 통화 및 실물정책의 변화에도 직접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
    환부를 빨리 도려내야 금융-실물 선순환이 가능하고 불확실성도 적어진다.

    이 때문에 2기 경제팀은 채권단 중심의 기업 구조조정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감독당국을 통해 신용위험평가 일정을 조율하는 한편 산업정책적 관점에서 개입을 강화하고 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민간 감독기구인 금융감독원을 통해 채권은행에 건설과 조선, 해운 등 업종별 구조조정과 45개 주채무계열에 대한 엄정한 재무구조평가를 요구하면서 후속작업이 한창이다.

    금융위는 지식경제부 등 산업정책을 담당하는 부처들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구조조정 및 금융지원이 필요한 업종을 선별하고 있다. 아울러 한국자산관리공사법을 개정해 금융기관이 보유한 부실채권과 구조조정 기업의 부실자산을 인수하는 구조조정기금을 40조 원 한도로 설치하도록 했다.

    올해 3월 말에는 자본확충펀드를 통해 은행권에 4조 원 규모의 자본수혈을 단행해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손실발생 부담을 덜어줬다.

    이 밖에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기업에 은행이 신규자금을 지원할 때 충당금 적립금을 기존의 절반만 쌓아도 되도록 감독기준을 개정하는 등 정부는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에 지원사격을 강화하고 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기업 구조조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야한다"며 "시장에서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도록 채권단을 독려할 것이며 미흡한 은행은 기관장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