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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 MBC TV 드라마 '온달왕자들'은 방송위원회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았다. 출연자가 "개 같은 놈 때문에 그냥"이라는 발언을 내보냈다는 이유였다. '경고'는 법정 제재에 포함되는 중징계. 당시 방송위는 "국민의 바른 언어생활을 저해하고 있기 때문에 제재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그리고 2008년. KBS 2TV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출연자들이 격하게 싸우는 장면과 함께 "이 새끼야" 등 욕설이 전파를 탔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권고' 조치를 내리는 데 그쳤다.
방송법에 따르면, 권고는 심의규정 위반 정도가 경미해 제재 조치를 취할 정도가 아닐 때 내려진다. 두 사례는 7년 새 심의 기준이 부쩍 완화됐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패륜·범죄·폭력·욕설이 쏟아지는 TV를 견제하기 위한 심의 시스템이 사실상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증거다. 전문가들은 "대사와 자막, 표정과 행동이 하나가 돼 이뤄지는 마구잡이 방송이 우리 사회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고, 심의 제도는 이를 방치하고 있다"며 우려한다.
◆징계 두렵지 않은 제작진
한 방송사 드라마국 PD는 "방통심의위 제재를 일일이 신경 쓰면서 어떻게 프로그램을 제작하느냐"고 했다. 방통심의위 제재는 중징계라고 해도 '경고', '시청자에 대한 사과'가 대부분. '해당 프로그램 방영 중지' 조치도 간혹 내려지지만, 이미 문제 프로그램이 나간 상태에서 재방송을 금지하는 의미밖에 없어 방송사나 제작진에게 별 부담이 되지 않는다. 2006년 말부터 동일한 심의 규정을 3번 이상 어긴 방송사들에게 과징금 부과도 이뤄지고 있지만 여태까지 이뤄진 징계는 5차례에 불과했다. 그것도 모두 tvN, m.net, XTM 등 케이블 방송사들에만 적용됐다. 요즘 케이블 못잖은 선정·폭력성을 드러내는 지상파 방송사들에는 묘하게도 해당 사항이 없었던 것.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김현주 교수는 "시청률에 대한 집착 때문에 방송사와 제작진의 심의 규정 위반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영상 콘텐츠가 미치는 사회적 파급력을 감안해 심의 제도를 전반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뉴데일리 ◆외국선 프로그램 사전 저지도
독일 방송평의회는 공영방송들의 최고 의결·통제기구다. 이 기구의 프로그램 심의는 사후 통제에 그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 사전에 프로그램 제작을 저지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 또 정기 회의에서 프로그램 편성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토론한다. 프로그램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거나 폭력적인 내용을 묘사해 법을 위반한 경우, 제작진이 아니라 편성을 책임지는 사장에게 직접 책임을 묻는다. 독일 방송국가협약에 따르면, 방송 프로그램이 법령을 위반했을 경우 최고 50만유로(약 8억 400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프랑스 방송법은 구체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 프로그램들을 제재한다. 과징금 부과는 물론이고 1개월 이상의 방송 업무 또는 프로그램 일부의 방송 정지, 방송 허가기간 최고 1년 단축, 허가 철회 등이 대표적 유형. 뉴스 프로의 보도 과정에서 폭력 묘사가 생생했다는 이유로 금전적 제재를 가할 정도로 심의가 정밀하다.
지난 2006년 ADO FM 방송사는 호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도하면서 고문 상황을 노골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1만유로(당시 환율 기준으로 약 12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점점 너그러워지는 한국 방송심의
그런데 한국의 심의는 갈수록 관대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2001년 iTV 시트콤 '립스틱'은 방송 중 '쌔끈하다', '짱난다' 등의 표현을 내보냈다는 이유로 경고 조치를 받았지만 지난 3월 KBS 2TV '해피투게더 3'은 "우리는 그런 쇼당은 안 해요"라는 말을 방송하고도 권고 조치를 받는 데 그쳤다.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한진만 교수는 "시청자는 TV 속 언어나 사회적 행동을 보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며 "좀더 구체적인 기준을 갖고 우리나라 심의 제재를 다듬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