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으로 질기고 질긴 사람들이다. 그 끈덕짐에 질리다 못해 경외감이 든다. 헌재의 미디어법 무효청구 기각 판결을 두고 다시금 목청을 세우는 이들 말이다.

    애당초 깜이 되지 않는 코미디 같은 소송이었다. 최종 표결 당시의 상황으로만 국한해 보자. 대리투표, 이중투표, 일사부재의 원칙을 위배한 재투표의 문제가 있었으니 무효다? 틀리진 않지만 문제의 본질을 비켜간 지적이었다. 본회의장 출입부터 막아선 걸 비롯해 양당의 인사들이 서로 악다구니를 치며 그 누구도 정상적으로 제 자리에 차분히 앉아 정상적 표결을 할 수 없던 당시 회의장의 정황 속에서, 법안 통과에 찬성하는 이들이 묘기처럼 잽싸게 몸을 움직여 표결을 방해하는 야당의원들을 제치고 자기 자리로 가서 표를 찍고 다시 돌아와 의장석을 지키는 순발력과 용력이 충분치 못했기에 무효라는 것인가?

    어지간한 사람은 제정신으로 서 있기도 힘든 몸싸움의 한복판에서 얼이 반쯤은 빠졌을 의장대리가 진행을 돕는 이의 말을 잘못 옮기는 실수를 범했다 번복하였기에 모든 게 무효라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금번 소송감이 된 국회 표결의 문제는 헌재의 판결이 아니라 국회의원들의 순발력과 용력, 아수라장에서조차 한 치의 실수도 용납 않는 완벽한 진행능력을 키우는 특공훈련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했어야 할 것이다.

    그날 그 순간, 우리 국회가 끝까지 갔던 그 참담했던 순간, 상식적으로 모든 것이 무효였다는 걸 모르는 이가 어디 있는가? 다수결 원칙이 무효였고 의회주의가 무효였다. 국회가 무효였고 우리의 정치가 총체적으로 무효였다.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 장본인들이 스스로를 더럽히며 악쓰고 자해하는 것만으로 성에 안 찼는지 이 문제를 법정에까지 끌고 갔다. 참으로 지겹고 한심한 일이었지만 어쩌겠는가. 많은 이들이 갈등이 마무리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또 한 번의 기대를 갖고 마지막 판결을 지켜보았다. 미디어법을 반대했던 이들도 인정했듯 현 헌재의 구성은 마침 작금의 정치권력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바였다.

    무수한 절차 위반, 원칙의 위반을 꼼꼼히 지적하면서도 무효청구를 기각한 헌재의 판결은 법정의 지혜가 무엇인지를 깨우쳐준 뜻밖의 선물 같은 사건이었다. 절망스러운 우리 국회의 행태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의 입법행위가 지닌 본래적 의미의 신성함, 수천 수만의 고귀한 피로 쌓아올린 삼권분립이라는 근대 민주주의의 근본원칙, 국가권력기관 간에 절대 넘어선 안 될 최후의 금도가 재확인되었다. 그럼에도 그 안엔 참담한 우리 국회의 현실을 질타하며 개선을 주문하는 준엄한 꾸짖음이 없지 않았다.

    판결문을 가득 채운 생소하고 난해한 법률용어들에도 불구, 헌재 판결의 메시지는 애초 무심히 지켜보던 필자의 마음에 살아있는 의미로 흘러들었다. 하지만 정작 한마디 한마디를 새겼어야 할 이들의 귀엔 미디어법 기각 좌절이란 판결주문(主文)의 즉각적 함의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나 보다. "부끄럽고 참회하는 심정으로 헌재의 결정에 승복한다"고 했어야 마땅할 이들은 이를 삽질 판결로 매도하고, 유치한 패러디를 통해 판결 내용을 조롱하며 헌재를 폐기하라고 패악을 떤다.

    이들을 어찌할거나. 자신의 기대에 반한다고 최고 법정의 권위마저 바닥에 내치듯 욕보이는 이들을 어찌할거나. 일체의 합리적 절차, 정당한 권위도 배격한 채 다른 의견·이념·정책을 전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이들은 눈멀어 있음을 모르는 눈먼 자들이다. 이들이 맹목성을 벗어나 진정한 민주주의에 동참하려 한다면 금번 헌재 판결의 의미를 되새기는 게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다. 이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패러디 장난질이나 치는 이들에겐 정녕 희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