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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안전하려면 중간층이 탄탄해야 한다.
고소득층은 돈이 많아서 자기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자기 나라를 지키려는 강한 열의를 갖지 않는다.
저소득층은 국가의 기존 상황에 대한 불만이 많으며 그 불만이 자기 나라를 지키려는 열의를 약화시킨다.
그에 반해 중간 소득층은 다른 나라에 가서도 잘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국가의 기존 상황에 대한 불만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자기 나라를 지키려는 열의가 가장 강하다.
모든 국가에서 애국운동은 중간층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가장 애국적인 계층인 중간층이 탄탄하면서 국정과 민심을 주도하면 국가가 안전하고, 중간층이 허약해지면 국가의 안전이 위태로워진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정권을 장악하게 된 것은 대한민국의 중간층이 그들의 집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중간층은 ‘경제 살리기’를 외치는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자기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자기들의 정치적 목소리가 국정에 보다 잘 반영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행정부가 출범하고 한나라당이 국회의 압도적 다수의석을 차지한 이후 3년 가까운 기간 대한민국의 중간층은 더욱 어려워진 살림살이와 정치적 소외를 겪고 있다. 중간층에서 저소득층으로 추락하는 인구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중산층이 고통 속에 허물어지고 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조정은 경쟁력 강한 기업을 살리고 경쟁력 약한 기업을 죽이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이때 경쟁력의 강약을 판단하는 우선적 기준은 기업의 부채 규모와 상환능력이었다.
동일 업종 내에서 사내 유보금이 많고 부채비율이 낮은 재벌 그룹에 속하는 대기업들은 경쟁력이 강한 기업으로 분류되어 살아남고, 부채가 많은 중소기업들은 경쟁력이 약한 기업으로 분류되어 은행의 자금지원이 단절되어 도산했다.
이렇게 해서 경제난이 극복되었지만, 그 경제난 극복의 결과는 도산된 중소기업들의 마켓 쉐어까지 차지한 살아남은 대기업의 영업이익 급증과 그로 인한 고소득층의 소득 증대 즐거움를 초래한 반면, 도산된 중소기업과 연관된 중간층의 소득 감소 고통을 초래했다.
자유경쟁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현 행정부의 정책노선은 중소상공업체들이 대기업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중소 하청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착취는 사실상 방치되고, 중소기업 노동자는 대기업 노동자와 동일한 노동을 그것도 더욱 강도 높게 하면서도 대기업 노동자보다 훨씬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
종래 중간층이 낮은 효율성으로 영업해온 부문에 재벌 그룹에 속하는 대기업이 진출하여 중소업체들을 몰아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유통업이다.
또한 현 행정부의 부적절한 정책으로 중간층은 보유 자산가치의 급격한 하락으로 인한 고통까지 당하고 있다. 도시거주 중간층 가구의 거의 유일한 자산은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이다. 아파트 가격의 폭락은 중간층의 자산가치 폭락이다. 같은 부동산 중에서도 고소득층 소유의 부동산인 토지와 오피스텔의 가격은 상승했지만 유독 중간층 소유의 부동산인 아파트 가격만 폭락했다. 현 행정부와 정치권은 아파트 가격의 하락을 위한 조치는 취하면서도 과도하게 하락한 아파트 가격을 반등시키기 위한 조치는 취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중간층은 취업난과 생활경기 불황으로 인한 고통을 집중적으로 겪고 있다.
오늘날 가장 심각한 취업난을 겪고 있는 대졸 청년들은 주로 중간층의 자녀들이다.
저소득층의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자녀들은 기능직이나 저임금 직장에 취업되기 쉽고, 고소득층의 자녀들은 자기 부모의 기업에 취업하거나 인맥을 통해 취업하기 쉽다.
그러나 중간층의 대졸 자녀들은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 그 결과 거의 모든 중간층 가정에는 실업청년이 한 명씩 있어서 가족 전체가 실업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
또한 생활경기 불황은 중간층의 자영 서비스업자들의 폐업을 속출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많은 자본을 투입한 기업형 식당은 호황을 누리지만 중간층이 소규모 자본으로 자영하는 식당은 손님이 없어서 폐업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 가장 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계층은 중간층이다.
고소득층은 경제난 극복에서 오는 호황의 덕을 집중적으로 누리고 있으니 그들에게 고통 같은 것은 없다. 최근 급증하는 유람성 해외여행객의 압도적 다수는 고소득층이다.
저소득층도 고통의 정도는 중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심각하다. 저소득층은 지출구조가 처음부터 저소득에 부합하게 짜여있는데다가 정부로부터 저소득층을 위한 각종 지원대책이 새로 마련되어 소득과 지출의 불균형으로 인한 고통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덜 하게 된다.
반면에 중간층은 소득과 자산가치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지출구조를 축소하기 어렵기 때문에 고통의 정도가 더 심각하다. 중간층은 소득감소와 지출구조 간의 갭을 메꾸기 위해 금융기관으로부터 주택담보 대출을 받고 있는데, 담보물인 주택 가격은 하락하고 금리는 올라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중간층은 이처럼 심한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소득층과는 달리 집회나 시위 등 사회적 떼쓰기를 하지 못한다. 조직력이 결여된 데다가 체면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고소득층처럼 행정부나 집권당을 상대로 로비도 하지 못한다. 그럴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이 나라 정당들은 중간층의 고통을 방치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도 1990년대 말까지는 여·야 정당들이 앞 다투어 중간(산)층을 위한 정책을 공약하고 실천했다. 그러던 것이 노무현 정권 때부터 중간층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급속하게 축소되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는 중간층을 진지하게 배려하는 정당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
한나라당은 그 당의 국회의원 대부분과 이명박 행정부의 각료들이 소속된 계층이 고소득층인데 더하여 정책지향도 기업 중심적이어서 말로만 중간층을 배려한다고 할 뿐 실제로는 중간층을 위한 정당과는 거리가 멀다.
한나라당 정권이 고소득층 다음으로 배려하는 것은 저소득층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고소득층만을 위한 정권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서민대책, 즉 저소득층 대책을 요란하게 홍보하며 실천한다.
한나라당 정권이 중간층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경제·사회대책을 입안·실천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민주당은 운동권 출신들이 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부터 중간층을 위한 정당과는 거리가 먼 정당이 되었다. 민노당은 처음부터 저소득층을 위한 운동권의 정당으로 출발했음으로 중간층과는 거리가 먼 정당이다. 그 당은 중간층이 허물어져서 그 구성원들의 다수가 저소득층으로 추락해야 정치적 자산이 커지는 정당이다.
정치적으로 방치되고 있는 대한민국 중간층의 고통이 장차 이 나라 정치와 국가의 장래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궁금하다. 고통 겪는 중간층의 분노는 이미 지난 6월 지방선거 결과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