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공식 오피니언 리더, 네티즌 수사대 

    대한민국 국민의 절대다수가 이용하는 포털 네이버와 다음.
    이곳의 메뉴 중에는 ‘인기 검색어’라는 게 있다. 그날 네티즌들이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의 순위를 정해 게시하는 것. 하지만 서비스가 시작된 지 몇 년이 흐른 지금, 네티즌들은 더 이상 인기검색어를 믿지 않는다. 사회적-정치적 이슈와 인기검색어 간의 불일치가 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티즌들은 연예인의 성매매 루머, 유명인의 비리 등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 포털에 의지하기 보다는 스스로 정보를 찾는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그 유명한 ‘네티즌 수사대(NCSI)’다. 언론이 보도하지 않은 정보를 잘 찾아내는 일부 네티즌(Netizen)들에게 美유명 범죄수사 드라마 ‘CSI’에 등장하는 과학수사대와 맞먹는 정보력을 지니고 있다는 비유로 붙인 별명이다. 

    이들은 그동안 다양한 사건을 ‘해결’하거나 사회적 공분을 살만한 일이지만 물증이 없을 경우 ‘결정적 증거’를 찾아 사이버 수사대 등 사법당국에 제보해 ‘사회정의’를 실현하기도 했다. 활동 방식도 치밀하다. 검색 능통자는 키워드와 데이터베이스 검색을, 디자인 종사자는 이미지 보정을, 인터넷 서핑 능통자는 특정 지점에서의 여론 환기를 담당하는 등 자신의 특기를 살려 역할을 분담한다. 이런 역할분담으로 네티즌 수사대는 불과 서너 시간이면 특정 인물의 신상정보와 취향 등을 모두 캐낼 수 있다. 

    네티즌 수사대 등장한 ‘개똥녀’ 사건, 그 후 

    이 같은 네티즌 수사대가 처음으로 부각된 사건은 일명 ‘개똥녀’ 사건이다.
    2005년 6월 5일 인터넷에는 두 장의 사진과 글이 올랐다. 서울 지하철 2호선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성이 애완견을 데리고 탔는데, 지하철에 싼 애완견의 배설물은 치우지 않고, 애완견의 뒤처리만 한 뒤 하차했다. 주변 사람들이 치우라고 해도 무시했다고 한다. 결국 개 배설물은 이 장면을 지켜보던 한 노부부가 치웠다고 한다. 이 글과 사진은 몇 시간도 흐르기 전에 유명 커뮤니티와 포털 게시판을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인터넷 뉴스들도 이를 보도했다. 

    네티즌들의 정보수집이 시작됐다. 얼마 뒤 그녀의 신상정보가 모두 인터넷 상에 공개됐다. 사는 곳, 현재 다니는 학교, 이름, 연락처, 부모의 신상정보와 취향 등 그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가 노출됐다. 사회적 논란은 갈수록 커졌다. 같은 해 7월 7일 美<워싱턴 포스트>까지도 이 소식을 다룰 만큼 그 파급효과는 대단했다. 결국 그는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만한 대인관계를 할 수 없을 정도의 후유증에 시달리게 됐다.

    하지만 이 일에 대한 문제가 강하게 거론되지 않았던 탓에 네티즌 수사대의 ‘활약’은 계속됐다.
    2007년 3월 한 여성이 군 생활에 관한 방송국과의 길거리 인터뷰에서 “(군 생활)2년은 너무 짧고요. 3년이면 좋을 것 같아요. 나라 지키려고 가는 군대인데 18개월 해서 뭘 배우겠어요.”라는 말을 웃으며 한 것이 알려지면서 ‘네티즌 수사대’는 다시 등장했다. 네티즌 수사대는 그에게 ‘군삼녀’라는 별명을 붙인 뒤 다시 한 번 그의 신상정보를 모두 찾아내 공개했다. 

    2008년 9월에는 탤런트 故최진실 씨의 사망과 관련, 증권가 메신저 상으로 ‘최 씨가 사실은 사채업자였다, 故안재환 씨에게 25억을 빌려줬다’는 루머를 퍼뜨린 게 모 증권사 여직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는 故최진실 씨가 자살하기 전 두 차례에 걸쳐 선처를 호소하는 통화를 했는데 그 내용이 진심으로 사과하는 게 아니었다는 소식도 나왔고, 이후 조사를 받다 경찰서를 빠져나간 뒤 담당 형사에게 ‘무사탈출^^’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게 알려졌다. 이 사실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자 네티즌 수사대는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그의 사진과 직장, 학력, 경력 등이 모두 공개됐다. 사법당국도 이 문제에 개입, 결국 그는 2009년 12월 10일 벌금 4천만 원을 선고받았다. 

    2009년 11월 9일에는 H대에 재학 중인 학생이 KBS의 연예프로그램에 출연해 ‘키 180cm 이하의 남자는 루저(Looser, 사회적 패배자, 쓸모없는 X 등으로 통용되는 욕설)’라는 발언을 해 많은 남성들이 흥분하자, 다시 네티즌 수사대가 등장했다. 네티즌 수사대는 이번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그의 신상정보 공개뿐만 아니라 그가 재학 중인 학교 게시판을 초토화시켰다. 결국 H대 당국과 해당 프로그램 관계자들이 교체되는 등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이 같은 일은 2010년에도 계속됐다. 지난 3월 28일에는 인천에서 간호사가 되려 공부 중인 한 20대 여성이 환경미화원의 목을 조르고 폭행하는 사건이 알려졌을 때 네티즌 수사대가 나섰다. 지난 5월 17일에는 학교 청소부에게 폭언을 한 경희대 여학생에 대한 글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면서 다시 네티즌 수사대가 등장했다. 결국 경희대 총학생회가 나서 공식 사과했다. 

    5월 22일에는 지하철 승강장에서 임신 8개월째인 임산부의 배를 발로 찬 20대 여성 사건이 알려져 네티즌 수사대가 나섰고, 6월 4일에는 만취한 채 여자 화장실을 앞을 기웃거리다 ‘왜 남자화장실 문이 잠겨있냐’며 환경미화원을 폭행한, 일명 ‘연세대 패륜남’ 사건이 알려지면서 다시 네티즌 수사대가 나타났다. 6월 15일에는 서울 서초구의 한 오피스텔에 사는 20대 여성 채 모(28) 씨가 자신의 동거남과 싸운 뒤 이웃이 키우는 고양이를 데려다 발길질하고 10층 밖으로 내던져 죽인, 일명 ‘고양이 은비 학대’ 사건이 일어나 네티즌 수사대가 다시 나섰다. 결국 고양이를 학대한 여성은 불구속 입건됐다. 

    네티즌 수사대와 같은 듯 다른, 다음 아고라 

    네티즌 수사대가 화제가 된, 사회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식으로 나선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세상에 알리기 위해 활동하는 집단도 있다. 바로 포털 사이트 다음의 토론 게시판인 ‘아고라’에 모이는 이들이다. 고대 그리스의 직접 민주주의를 위한 장(場)의 이름인 ‘아고라’처럼 일종의 ‘참여 민주주의’를 목표로 한 가상공간이다. 2008년 촛불 난동 이후에는 그 의미와 영향력이 상당 부분 줄어들었으나 지금도 수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글을 올리고 있다. 

    이 중에는 정당인과 정부 관계자, 군 관계자 등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다. 특히 아고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다수는 이제는 정치 분야보다는 소비자 권리, 강자의 횡포,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관례에 분노하는 이들이 많다(물론 지금도 현 정부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이들이 더 많은 건 사실이다). 

    아고라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네티즌 수사대와는 달리,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커뮤니티 사이트나 게시판 등에 관심을 끌 수 있는 글들을 적극적으로 올려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지난 2008년 촛불난동 때에도 이런 방식으로 ‘미국산 쇠고기’ 관련 글들을 주요 커뮤니티 사이트로 퍼 날랐다. 

    하지만 2008년 촛불 난동의 문제점이 부각된 이후에는 아고라에도 변화가 생겼다. 정치적 이슈들은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고, 관련 사용자들도 많이 사라졌다. 정치적인 주장을 하는 이들을 위해 ‘국민과의 대화’ 등과 같은 섹션을 새로 마련했다. 

    특정 의견만이 헤드라인에 뜨는 게 아니라 반대 의견과 나란히 게재, 아고라 사용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단순히 자신의 주장을 쓴 글 보다는 우리 주변의 불우한 이웃을 돕자거나 은폐된 범죄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하자는, 일종의 ‘온라인 청원’에 관한 글들이 자주 올라오고 있다. 

    물론 지금도 문제점은 있다. 아고라에 오르는 글의 작자들이 늘 말하는, ‘현직 의사입니다’ ‘현직 변호사입니다’ ‘현직 공무원입니다’ 등의 말들이 사실과 다른 경우가 너무 많아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래도 많은 이들은 글쓴이의 사회적 지위나 배경보다는 글의 내용에 집중하며, 공감하기도 하고 공분하기도 한다. 

    네티즌 수사대, 다음 아고라에 사람이 몰리는 까닭  

    이런 다음 아고라와 네티즌 수사대는 기성세대나 기성 언론, 현실 사회에서는 그 문제점이 많이 부각되고 비판받는다. 이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중국 공산당의 선전활동으로 생각마저 획일화된 중국 네티즌의 ‘인육수색’과 동일시하거나 ‘인터넷 마녀사냥’이라며 이런 활동을 비판한다. 

    그래도 많은 이들은 네티즌 수사대의 활동과 다음 아고라에 오른 글에 관심을 갖는다. 사람들이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지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실 사회가 사회정의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2005년 이후 네티즌 수사대들의 활동, 2008년 촛불 난동 이후 다음 아고라에 대한 언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이들이 그들의 ‘활약’을 기대하고, 그곳에 올라 있는 글을 보는 이유는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일들에 대한 사법당국의 조치가 평범한 국민들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약했기 때문이다. 

    일명 ‘인천 패륜녀’ 사건으로 불린 환경미화원 폭행사건은 가해여성의 주장을 받아들여 쌍방폭행으로 처리되었다는 후속보도, 다른 이의 반려동물을 학대하고 10층에서 내던져 죽인 여성은 소액 벌금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보도, 근거 없는 루머를 퍼뜨려 사람을 죽게 한 자에게도 벌금형이 내려질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면, 다수의 국민들은 그런 법 제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사회경험이 적은 젊은 세대들은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가 억울한 사람, 약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선입견을 갖게 된다. 실제 2030세대를 취재하면서 만난 젊은이들은 우리 사회를 이렇게 보고 있었다. 

    “요즘 세상에서는 솔직히 돈이나 권력이 최고인 거 같습니다.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은 아무리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혀도, 결국에는 다 풀려나 떵떵거리고 살잖아요. 네티즌 수사대에 당했다는 피해자들 중 돈 있고 힘 있는 집 자식은 멀쩡하잖아요.” (금융회사 근무 권 모 씨, 33세) 

    “누가 뭐래도 돈이 있어야 돼요. 사회정의? 그런 게 진짜 있다고 생각하세요? 기자님, 제가 지금 이런 곳에서 일하는 이유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는 돈이 곧 권력이기 때문에, 더 나이 들기 전에 최소한의 종자돈을 모으고 싶어서예요.” (강 모 씨, 유흥업 종사자, 33세) 

    “제가 유학을 다녀왔고 학벌 좋고, 잠재력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보는 건 결국 자기에게 돈과 권력을 얼마나 줄 수 있는가 입니다. 그들에게 사회정의나 도덕과 같은 최소한의 사회적 룰(Rule)은 중요하지 않은 거 같아요. 저도 그래서 지금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사업을 준비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겁니다. 사회에 필요한 일을 꼭 하려면 시드머니(Seed Money, 종자돈)가 필요하거든요.” (황 모 씨, 설계회사 근무, 32세) 

    이들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젊은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30대 후반 이상 중에서도 성별을 막론하고 이와 유사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다. 다만 이들 모두는 ‘돈이 최고’라고 외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사회정의가 지켜지는 세상’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현재의 법 제도와 사법당국에 대해서는 불신을 나타낸다. 

    하지만 정치권이나 정부, 언론에서는 이 같은 다수 사람들의 생각과 정서가 다음 아고라와 네티즌 수사대의 기반이 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③좌파와 우파, 그들이 쇠퇴하는 이유'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