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분들께, 특히 국민께 너무 많은 폐를 끼치고 또한 은혜를 입어서 어떻게 하면 갚을 방법이 있는지 모색해보려고 합니다."
    이번 8.15 특별사면복권 대상자로 발표된 변양균(61)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한편 홀가분하면서도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
    세간에 신정아 사건으로 더 깊이 기억에 새겨져 있는 일련의 사회적 파문과 우여곡절의 재판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숨은 모습들과 너무 가깝게 맞닥뜨렸던 탓일까.
    13일 만난 그는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의 희생자였다는 피해의식을 숨기지 못했다. 그간의 은둔생활 후 첫 언론인터뷰에서도 조심스러움이 물에 닿은 수채물감처럼 내내 몸에서 번져나왔다.
    지난해 1월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 야인으로 지내며 언론접촉을 피해온 그를 억지로 끌어내 심경을 들어봤다.
    다음은 변 전 실장과 일문일답.

    --요즘 무엇으로 소일하는지
    ▲정원 가꾸기와 책읽기로 하루를 보낸다. 요즘은 25년째 살아온 집 마당에 조그마한 연못을 만들고 있는데 생각보다 일이 힘들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소문인데 어떤 책들인가.
    ▲특별히 정해진 주제가 있는 건 아니다. 한 권을 읽고 나면 다음 책이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사면복권 소식을 전해듣고는 수감중 감명깊게 읽었던 황대권씨의 `야생초 편지'를 다시 읽어봤다.
    --이번에 사면복권된 것은 어느 부분인가.
    ▲작년 1월30일 대법원에서 쌍용 김석원 전회장측과 관련된 알선수재 및 제3자 뇌물수수죄, 신정아씨의 동국대 교수임명과정 및 두 사람 간의 관계와 관련해 적용됐던 뇌물수수죄, 광주 비엔날레 관련 업무방해죄는 모두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다만 개인사찰인 흥덕사 등에 대한 특별교부세 배정이 직권남용으로 인정돼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이 부분에 대해 형선고 실효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을 받은 것이다. 사면대상에 포함시켜준 이명박 대통령께 감사드린다.
    --특별교부세 배정에 실제 압력을 행사했었나
    ▲그 건은 나를 구속시키기 위한 검찰의 별건수사였다. 문제가 된 특별교부세는 일반적인 특별교부세가 아니라 청와대 몫으로 별도로 정해져있는 대통령지원금을 대통령 결재를 밟아 집행한 수백 건 중의 하나였다. 내가 개인적인 용도로 지원한 것이 아니다. 2007년 당시 당시 내가 불교계와 소통창구였던 청와대 불자회장(청불회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불교계 민원이 나에게 전달된 것뿐이었고, 문제가 되자 실제 집행되지도 않았다. 당시 정.관계에서도 나에 대한 혐의가 지나친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도 법원은 유죄로 판단하지 않았나.
    ▲당시 대통령지원금의 실체를 재판정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지원금의 실체는 청와대 내부의 이야기로, 청와대에 근무한 사람으로서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차마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그는 대통령 지원금에 대해 `통치자금’이라는 표현을 썼다)
    --김석원 전회장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부분도 완전히 소명된 것인가.
    ▲당시 김씨 부부가 주지도 않은 돈을 줬다고 누명을 씌우는 바람에 이미 죽은 목숨인 나는 다시 한번 부관참시를 당했다. 내가 2005년초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있을 때 김 전회장의 재판 판결을 잘 되도록 도와주고 3억 원을 받았다는 것인데,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자기들이 지은 죄를 조금이라도 적게 받아 보겠다고 공직자에게는 살인보다 더한 누명을 씌우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김 전회장이 당시 구속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허위)진술했다는 점을 현명하고 용기 있게 밝혀준 1심 재판부에 다시 감사드린다.
    당시 검찰 수사과정에서 내 주변의 일가친척은 수많은 계좌추적과 소환조사로 황폐화됐다. 어떻게 해야 죄를 조금이라도 씻을 수 있을지 지금도 걱정이 태산 같다. 후배공무원으로부터도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이 됐다. 당시 언론의 확인되지 않은 허위보도로 인해 공직생활 30년을 바친 직장의 선후배에게 얼굴을 들 수 없게 됐다. 이제는 달리 해명할 방법도 없다.
    --지금까지 신정아씨와 관계에 대해 직접 언급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 당시 신씨와의 관계에 대해 있는 그대로 공개적으로 밝히지 못한 것은 가족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남편이,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냥 가족들끼리만 알게 돼도 가정이 파괴되는데, 어떻게 공개적으로 신씨와의 관계를 말할 수가 있겠나. 그 관계가 공개되는 것은 나보다도 가족들한테 더 큰 상처를 입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개인 사생활은 보호해준다는 약속을 믿고, 즉시 사표를 내고 조사에 응했다.
    그러나 검찰에서 조사되는 내용들은 오히려 선정적인 내용으로 각색되고 조작돼 언론을 도배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엄청난 거짓말쟁이가 됐다.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던 그림에 대한 개인적 연을 잘 다스리지 못한 점, 고위공직자로서의 부족했던 몸가짐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언론의 무차별적이고 선정적인 보도로 나 개인은 물론 가족과 친지들이 입은 상처는 회복 불능이 됐다.
    --당시의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나와 관련된 보도를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다. 나는 거짓말쟁이뿐 아니라 부패한 공무원으로 낙인 찍혔다. 가령 내가 임차해있던 청와대 인근 호텔만 해도 그렇다. 당시 그 비용을 불교계에서 뇌물로 대주었다는 1면 기사도 났었다. 그러나 사실은 청와대에 근무하게 되면서, 매일 밤 야근을 하고 또 새벽출근을 하기에는 과천의 우리 집이 너무 멀어, 처의 권유로 청와대 인근에 작은 방 한 개를 빌려, 임대료 월 200만원을 우리 집 가계용 통장 카드로 지불해 온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내가 뇌물을 받아 호텔을 사용했다고 믿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황당할 뿐이다.
    당시 나는 언론의 집중포화로 원색적인 3류 소설 속 인물이 되어 재판은 물론, 검찰이 수사를 마치기도 전에 이미 사회적으로 생매장이 돼버렸다. 변호를 맡았던 김재호 변호사도 마녀사냥의 전형이라고 표현하더라. 중세 유럽에서 볼 수 있었던 비이성적인 행태가 21세기에 우리나라에서도 되풀이된 셈이다.
    --사회봉사 160시간은 어떻게 채웠나.
    ▲대법원 확정판결 직후인 작년 2월 안양 종합복지관에서 장애인들을 돌봤다. 처음에는 그 사람들보다는 나와 내 주변이 더 나은 것 같아 그나마 내 처지에 대한 일종의 안도감이랄까 하는 느낌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 차츰 왜 하느님이 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다 그 장애인들은 보통사람들보다 더 헌신과 돌봄을 받고, 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면서 더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게 됐다.
    --앞으로 무엇을 할 생각인가
    ▲일단 미국에 있는 둘째아들네 집에서 한동안 지낼 생각이다. 쉬면서 구상해둔 일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일이 추진되면 차차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