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에서 '앱'시대로...포털 편집권력이 모든 개인에게 분산스마트폰·태블릿PC 등 통해 일반인도 자신만의 '지식 편집'
  • '창조는 편집이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매번 새롭게 편집될 따름이다.
    재미가 창조의 존재론이라면, 편집은 창조의 방법론이다. 편집과 유사한 개념들은 이제까지 많이 이야기되어 왔다. 융합, 복합, 통섭, 크로스오버, 혼성모방, 콜라주, 브리콜라주, 몽타주 등등. 그러나 '편집(editing)'처럼 창조적 행위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은 없다.

    일단 '편집'에는 주체적 행위가 개념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앞서 열거한 개념들은 어깨에 힘만 잔뜩 주었을 뿐,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에 비해 '편집'은 주체가 어떤 행위를 할 수 있는지 아주 구체적이고도 선명하게 이야기해 준다. 동영상 편집, 음악 편집 등등. 아이들이 수학여행 사진들을 모아 동영상으로 편집하는 것처럼 이제 세상의 모든 지식은 아주 쉽게 편집되고 재구성된다.

    21세기 지식이란 많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널려 있는 정보를 새롭게 편집할 수 있는 능력이 지식이다. 지금까지 지식 편집의 권위는 극히 제한된 일부에게 부여되어 있었다. 지식인지 아닌지의 기준은 대학이 결정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대학의 교수들이 결정했다. 학술지에 실리면 지식이고, 탈락되면 지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학술지에 실렸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지식으로 인정받는 세상이 아니다. 몇 년 전,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황우석 사태'는 바로 이 지식 권력의 주체가 바뀌고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전문가들이 엄격하게 심사해 세계적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이 인터넷상에서 샅샅이 분해되어 '사기'로 판명된 것이다. 전문대 출신의 '미네르바'의 글에 대학의 경제학 교수들이 제대로 된 반론조차 제기하지 못했던 일도 지식 권력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문제는 아직도 많은 대학교수들이 자신들만이 지식 편집의 유일한 주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학에서 비싼 등록금을 내고 전달되던 지식이 인터넷의 지식 검색을 통해 아주 쉽게 얻어진다. 교과서로 전달되는 지식보다 훨씬 앞선 최신 지식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무너지는 지식 편집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교수들이 기껏 고안해낸 방식이라곤 '리포트 손으로 쓰기', '표절 검색 프로그램 개발' 따위다.

    지식의 전달 방식도 바뀌었다.
    이제까지 텍스트로 문서화된 것이 지식의 유일한 존재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젠 다르다.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현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고,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유튜브의 각종 UCC를 검색해보면 웬만한 학술자료는 다 찾아낼 수 있다. 제한된 지식 권력 수단이었던 사진, 동영상 기기들을 초등학생도 들고 다니는 세상이 됐다.

    대학 중심의 아날로그적 지식 편집의 시대에 대항해 새롭게 회자되는 개념이 '폭소노미(folksonomies·대중 분류법)'다. 'folk'와 'order', 'nomous'의 합성어로 '사람들에 의한 분류법'이란 뜻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자신의 글이 쉽게 검색되기 위해 '태그(tag)'를 붙이게 되어 있다. 이런 태그와 같은 키워드 중심의 분류 체계를 폭소노미라고 한다.

    고전적 지식 분류 체계는 디렉토리와 같은 구조다. 인문사회과학이 있고, 그 안에 심리학이 있고, 심리학 개념 중에 '콤플렉스', '아이덴티티'와 같은 개념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트리(tree) 구조의 지식 편집은 권위적일 뿐만 아니라 변화에 너무 느리다. 디지털 세상에 적합한, 이리 튀고 저리 튀는 하이퍼 텍스트 식의 탈(脫) 중심화된 상호 텍스트 편집 구조가 폭소노미다.

    최근까지 지식 편집의 권력은 포털사이트에 있었다. 신문, 방송 콘텐츠의 가치는 물론 과학적 지식의 가치는 포털사이트의 편집자가 결정했다는 이야기다. 열 받은 대학, 신문, 방송 편집자들이 지식재산권을 들이대며 저항해 보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포털의 편집자들에게는 '메타 태그'라는 절대적인 권력 수단도 있었다. 온갖 쓰레기 같은 정보들조차 이들의 손에서 편집되고 구조화되었다. 그러나 이 포털의 절대 권력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듯하다.

    '웹(web)'에서 '앱(app)'으로의 진화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PC 중심의 '웹'에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의 '앱'으로의 진화는 포털의 편집자에게 집중됐던 권력이 분산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검색'에서 '편집'으로의 변화다. 사람들은 더이상 지식 검색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의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자신만의 지식을 편집한다. 이제 메타태그적 권력을 누구나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이패드나 갤럭시탭과 같은 태블릿PC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데스크톱에서 태블릿PC로의 진화는 스티브 잡스가 비유하듯 트럭에서 승용차로 갈아타는 수준의 기술적 변화가 아니다. 지식 편집, 즉 창조적 행위의 도구가 모든 이들의 손에 주어짐을 뜻한다.

    시장이 새롭게 편집되고, 해체되고 있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변화이다. 이 엄청난 변화의 과정에선 지식 편집의 주체만 살아남는다. 시장에서의 새로운 지식 편집의 방향과 전망을 읽어낼 수 있는 메타적 시각을 나는 '에디톨로지', 즉 '편집학'이라고 정의한다.(조선일보)

    <김정운 /명지대교수, 여러가지문제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