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구제역 매뉴얼’ 개편⋯ “축산업 체질 바꿔나갈 것”
  • [구제역 해법 ①]

    구제역은 소, 돼지처럼 굽이 갈라진 동물들의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증으로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감기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전염되면서 진화하기 때문에 영구한 박멸이나 예방이 불가능하다. 구제역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는 없지만 그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바로 신속한 ‘초동 대응’이 그 해결책이다.

    급속도로 퍼진 구제역, 그 배경은?

    지난해 구제역 공포가 전국을 뒤덮었다. 정부가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밤낮없이 방역 작업을 실시했지만 강력한 바이러스는 쉽게 막을 수 없었다. 이번 구제역은 지난해 11월 28일 경북 안동에서 신고 된 의심축이 양성판정을 받은 이후 급속도로 퍼져 호남과 제주도 지역을 제외하고 총 150 여건이 발생했다.

    검역원은 경북 안동지역에서 구제역이 최초로 확인되기 전에 경기 파주지역 등으로 이미 구제역 바이러스가 전파된 점을 구제역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안동에서 구제역이 처음으로 신고 된 지난해 11월 28일보다 10여일 전에 안동 발생농장의 돼지분뇨 1.5t이 경기도 파주로 유입됐다.

    당시 해당 농장주는 구제역 여부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타 업체와 분뇨를 거래하면서 구제역 바이러스가 전파됐다고 검역원은 분석하고 있다. 농장주의 부주의로 손쓸 틈도 없이 퍼져나간 구제역 바이러스는 347만 마리 이상의 가축을 도살처분 및 매몰한 뒤 종식됐다.

    최악의 구제역 겪은 영국, ‘축산 선진국’ 되기까지

    이 같은 구제역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축산 선진국으로 불리는 영국도 지난 2000년 구제역 홍역을 톡톡히 치뤘다. 영국은 2000년 구제역으로 646만 마리의 살처분, 4조원이 넘는 정부 재정지출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 ▲ 구제역 방역 현장 ⓒ 농림수산식품부
    ▲ 구제역 방역 현장 ⓒ 농림수산식품부

    이처럼 심각한 피해를 가져온 이유는 바로 초동 대응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은 구제역 의심증상이 발견된 하루 뒤에야 실제 검사가 시작됐다. 또한 확진 판정 사흘 후 가축의 이동을 통제했다. 그 사이 구제역은 영국 전역을 강타했고 가축 646만 마리를 살처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상 최대의 구제역 사태를 겪고 난 뒤 영국은 지난 2001년 6월 구제역에 대한 새로운 법안을 마련했다. 이 법안은 초동 대응과 사후관리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영국이 가장 초점을 맞춘 부분은 초동 대응 체계를 강화한 것. 구제역 검사 후 확진이 아닌 의심 증상만 나와도 통제구역을 설정해 이동을 제한하는 등 처음부터 강하게 대응하도록 규정했다. 또한 확진 판정을 받으면 바로 최고수준인 적색단계로 경보를 알리고 적극적인 방역체계에 돌입하게 된다.

    따라서 구제역 의심증상이 발생하면 반경 10Km를 임시 통제구역으로 설정하고 지역 내 수의사에게 연락해 이들의 해당지역 농가를 관리한다. 간이 키트 검사로 음성이 나와도 중앙정부의 공식 표준 테스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이동할 수 없다.
     
    또한 구제역 사후 관리를 강화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지하수나 상수원 오염 우려가 있는 지역의 동물 사체는 수거하고 매몰 작업에 동원했던 사람들의 건강 검진까지 책임진다. 추후 구제역 발생 시 감염 가축의 처분 방식도 다양화됐다. 사체를 매몰하면 환경오염우려가 있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각 지역에 마련된 전문 소각시설에서 처리하다. 이어 렌더링(고온고압의 멸균처리방식)을 거쳐 매립을 가장 마지막 수단으로 변경했다.

    정부, 확 바뀐 ‘구제역 개선 법안’ 발표

    영국의 사례처럼 우리정부도 이번 구제역을 통해 매뉴얼을 완전히 개편할 계획이다. 정부는 구제역의 원인으로 꼽힌 ‘초동 대응’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가축질병 방역체계 개선과 축산업 선진화 방안’을 지난달 24일 발표했다.

    가장 눈에 띄게 바뀌는 것은 발생초기 대응체계의 획기적 개편이다. 개편 전에는 구제역 발생 시 주의, 경계, 심각 3단계로 나누어 대응했지만 앞으로는 확증 판정 시 바로 최고수준인 심각(적색)단계를 적용해 초동 대응을 확실히 하게 된다.

    또한 발생초기에 Standstill(일시정지) 제도를 도입한다. 이는 가축질병이 발생했을 때 해당 농장뿐 아니라 전국의 분뇨∙사료 차량 등에 대해서도 일정기간 이동통제가 이루어지게 된다. 신속한 초기진단을 위해 시∙도 방역기관에 항원진단키트를 보급하고 중부, 영남, 호남 권역별로 거점 정밀분석실을 설치할 예정이다. 또한 중앙정부와 지자체, 군(軍)간 공조체계를 강화하여 민·관 합동 ‘가축전염병기동방역기구’를 새로 설치해 신속한 초동 대응에 나서게 된다.

    초동 대응뿐만 아니라 구제역 사후관리 방안도 친환경적으로 바뀐다. 매몰지를 3년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환경영향 분석 강화를 통해 지하수 오염을 방지하게 된다. 추후 구제역 발생 시 감염 가축의 처리 방안 역시 다양화돼 매몰 이외에 소각이나 렌더링 화학처리 등의 방식도 적극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내용을 토대로 정부는 구제역 방역 시스템을 개편하고 축산업의 체질을 본질적으로 바꿔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민∙관이 강화된 매뉴얼을 철저하게 따라 초기에 구제역을 막고 피해를 최소화 하는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