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기차 철저 외면… BYD·샤오미 열광배터리, 값싼 장비·원재료 의존… 乙 신세핵심 고객사 GM·포드, CATL에 빼앗겨석유화학, 중국 디플레이션 한 방에 휘청전선 3형제 "현지 가고 싶어도 못 가"… 역차별
  • ▲ 시진핑 주석ⓒ연합뉴스
    ▲ 시진핑 주석ⓒ연합뉴스
    <편집자 註>
    중국산 제품이 한국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과거에 싼 맛에 찾던 '싸구려'가 아니다. '대륙의 실수'로 웃어 넘길만한 일부의 문제도 아니다. 가전, 스마트폰 등 작은 물건에서 자동차, 선박 등 중후장대(重厚長大) 제품까지 중국산이 잠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관세라는 장벽을 세우기 어려운 우리나라는 중국의 자본·물량 공세에 극도로 취약하다고 입을 모은다. 무방비로 몰린 국내 산업이 살아남기 위한 길이 남아 있는지 찾아본다.

    한국이 철저한 을 신세가 됐다.

    일각에선 중국의 경제속국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는 평가까지 할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은 여전히 거대한 중국 시장이 필요하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산업에서 자급자족에 성공한 중국은 콧대만 높이 세우고 있다.

    중국시장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는 현대차는 현지 업체와 제휴를 통해 맞춤형 전기차 생산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1위 테슬라 조차도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현실에서 전망은 불투명하다.

    주행거리, 성능, 가격에서 모든 면에서 앞서고 있는 중국 차량에 애국소비 열풍까지 이어지면서 글로벌 자동차들의 무덤이 된 지 오래다.

    이달 개최된 베이징 모터쇼에세도 현대차가 끼어들 틈이 별로 없어 보였다. 없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 중국인들의 시선은 온통 BYD, 샤오미, 화웨이 전기차에 쏠렸다.

    베이징 모터쇼를 참관한 곽재선 KG모빌리티 회장은 “우리나라가 많이 반성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약 1200명의 직원을 베이징 모터쇼에 파견했다. 중국 전기차를 보고 배우겠다는 을의 입장이었다.

    테슬라와 세계 1위 전기차 기업 타이틀을 놓고 호각을 벌이는 중국 BYD의 연구개발 인력이 중국 외 자동차기업 연구개발 인력을 전부 합친 것보다 많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중국의 기술력 굴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배터리 상황은 더 심각하다. 세계 1위 배터리 기업 중국 CATL의 판짜기에 ‘K-배터리’ 3사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이 전부 고전하고 있다.

    CATL은 한국 배터리 3사가 무시했던 LFP 배터리의 단점을 모두 보완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번 베이징 모터쇼에서 CATL은 10분 충전에 600km, 완충 시 1000km 주행이 가능한 LFP 배터리를 선보였다.

    이는 LFP 배터리가 가격은 저렴해도 성능이 부족하다고 주장해온 국내 배터리 3사의 상식을 파괴하는 혁신이다. 

    허를 찔린 국내 배터리 3사는 LFP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으나 빨라야 2025년 하반기에나 양산을 계획하고 있다. 당장 팔 수 있는 제품이 없어 핵심 고객사마저 뺏기고 있다. GM과 포드는 CATL과 LFP 배터리 라이선스 계약을 협의 중이며, 심지어 미국이나 멕시코에 합작공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K-배터리는 전고체 배터리로 기술 ‘초격차’를 노리고 있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삼성SDI는 국내 배터리 3사 중 가장 이른 2027년에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를 양산할 계획이나, 중국 국영기업 광저우자동차그룹이 최근 1년 앞선 2026년에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출시하겠다고 찬물을 끼얹었다. 

    중국에 크게 의존하던 한국 석유화학산 산업은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다.

    중국은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최대 수출시장이다. 한국이 수출하는 석유화학 제품 36%가량을 중국이 사들인다.

    하지만 중국이 디플레이션을 겪으며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내수가 줄어들면서 석유화학 수출은 직격탄을 맞았다.

    또한 중국은 석유화학 산업을 국가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기간산업으로 인식하고 지난 수년간 설비 증설에 대규모 자본을 투입했다. 2~3년 내 중국은 석유화학 ‘자급자족’을 이룰 전망이다.

    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중국은 대부분의 석유화학 기초유분, 중간원료 자급률 100%를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석유화학 ‘빅4’의 맏형 LG화학은 최근 첨단소재사업부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작했고, 롯데그룹의 상징 롯데케미칼은 울산공장 인력을 재배치하는 등 필사적인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선 업계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 및 데이터센터 열풍으로 국내 전선 3형제 LS전선, 대한전선, 일진전기가 호황을 누리고 있으나, 저가 중국산 제품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세계 전선 시장 40%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에 한국 전선 기업 대부분은 진출하지 못하고 있지만, 반대로 중국 전선 기업들은 한국으로 넘어오고 있다.

    중국 전선 시장은 올해 전년 대비 2.8% 성장해 글로벌 전선 시장 성장률 2.5%를 앞질러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국내 전선 기업들이 중국 전선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뼈아프다.

    한편 국내에선 저가 중국산 제품 공습으로 가격 교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중국 초고압 해저케이블 생산 기업인 형통광전과 ZTT는 한국 민간 해상풍력 발전 사업에 꾸준히 견적서를 내고 있다. 형통광전의 경우 2021년 중국 전선 업계 최초로 한국에 지역 사무소를 차리는 등 수주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지난해 김형원 LS전선 부사장은 “중국 업체는 우리나라 시장에 많이 들어오는데 우리는 못 간다”며 “중국 정부에서 막는 것도 있지만 아예 입찰 기회를 주지 않는다든지, 발주 사실 자체를 알리지 않는다든지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많다”고 역차별을 호소했다.

    이어 “우리 정부도 보호를 두텁게 해주면 어떨까 하는 욕심이 있다”며 정부의 대응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