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도, 경제도, 학계도 '리더' 부재'실익' 기반 경제채널 다각화 시급전문가들 새로운 대중관계 '리셋'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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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註>중국산 제품이 한국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과거에 싼 맛에 찾던 '싸구려'가 아니다. '대륙의 실수'로 웃어 넘길만한 일부의 문제도 아니다. 가전, 스마트폰 등 작은 물건에서 자동차, 선박 등 중후장대(重厚長大) 제품까지 중국산이 잠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관세라는 장벽을 세우기 어려운 우리나라는 중국의 자본·물량 공세에 극도로 취약하다고 입을 모은다. 무방비로 몰린 국내 산업이 살아남기 위한 길이 남아 있는지 찾아본다."이대로라면 10년 뒤면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의 첨단산업 조차 중국에 뒤처질 수 있다"익명을 요구한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발 복합 리스크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다. 그는 "미국이 중국을 산업적으로 고립시켰더니 오히려 중국은 국산화 작업에 나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면서 "중국에서 매해 배출되는 공학도의 수부터 한국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고 이미 연구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올랐다"고 했다.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따르면 중국은 2011년부터 미국을 추월해 1위로 올라섰다. 중국은 2010년부터 2021년까지 전체의 30.2%에 이르는 53만 3811건의 반도체 관련 논문을 출판했다. 발표 논문의 영향력을 의미하는 피인용 횟수에서도 최근 5년(2016~2021년)간 1위를 차지하며 양적·질적 성장을 이어갔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중국은 주요 첨단산업 분야에서 이미 2022년부터 한국을 추월했다. 한국은 ▲반도체 ▲2차전지 ▲디스플레이 등 소수 분야에서 기술적 우위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양평섭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팀 초청연구위원은 "중국은 단순한 저가 제품 단계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첨단 기술이 필요한 제품을 높은 기술력으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중국이 빠르게 성장하는 사이 사실상 손 놓고 있었던 정부와 재계의 안일한 태도도 꼬집었다. 정영록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한 기업이 업계 정상에 오르는데 30년이 필요한데 1980년대 정부의 막대한 지원으로 삼성전자의 반도체가 성공했다"면서 "반도체 다음의 국가 전략 산업을 정하고 이끌고 나갈 정부의 리더도, 학계의 리더도, 산업계의 리더도 없었기 때문에 중국에 밀리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이에 전문가들은 중국 기술과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는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미국의 대중 제재 덕분에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된 셈이다"면서 "올해 11월 예정된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대중 제재 기조는 한동안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은 반박자 빠른 기술을 확보하거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그러면서 미·중 갈등 속에서 미국을 선택하고 중국을 포기하는 선택은 지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중국은 여전히 경제적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미·중 무역 분쟁은 단기간에 끝날 무역·통상 분쟁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패권 경쟁이다"면서 "중국에 대해서는 '제한적 손실'을 외교적 목표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했다.강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도 "한국과 중국의 경제교류가 정치·외교적 국면에 따라 영향을 받지만, 재계와 민간 중심으로 경제 교류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 교수는 "실익 차원에서 정부와 기업을 분리하고 경제 채널의 다각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부연했다.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우방국과 손잡고 중국을 압박하는 것과 별개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 등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 리더들은 연이어 중국을 방문하면서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면서 "한국 기업도 정치적 거리두기와 무관하게 새로운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