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민의 '피터 팬 化'

     아침(5/9) 신문 어젠다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조선일보의 "21세기에도 선비가 필요한가?“가 그 하나. 그리고 중앙일보의 서남표 인터뷰 기사에서 그가 말한 "대학원생 엄마가 아들 기숙사 춥다고 편지를 보내온다”는 대목이 또 하나.
     이 두 이야기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정신적으로 유아(幼兒) 라는 암시다. “선비가 필요한가?”라는 화두는 지금의 우리에겐 선비다움이 없다는 전제를 은연중 깔고 있다. 선비정신을 “자신과 세상을 올곧게 성찰할 윤리적-지적(知的) 성숙성”이라 할 때, 우리의 경우 그게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서남표 총장이 지적한 대학원 아기와 그 엄마 이야기도 말 그대로 전국민의 아기화(化)를 시사(示唆)하는 것이다. 둘 다 같은 ‘유치함’의 이야기다. 
     사람은 이승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공자님은 ‘군자(君子)’라는 모델을 제시 했다. 그게 선비다. 어렵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얍삽하고 천하고 야비하고 너절하게 놀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자신에게 엄격하라는 것이다. 바로, 수양(修養)이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의 말씀도 거기서 다를 바가 뭐 있나? 

     문제는 이렇듯, 세상 이전에 자기 자신이다. 자신 속에 있는 흉악함, 예의염치(禮義廉恥) 없음, 비천함, 추함, 얌체, 교활, 뺀질뺀질함을 억제하라는 이야기다. 그게 군자요 선비의 자질이다. 이 자질은 고대에도 필요하고 현재에도 필요하고 미래에도 필요하다. 괜스레 ‘선비’ 니 ‘군자’니 하는 옛날 말을 갖다 붙여서 “그게 지금도 필요한가?” 운운의 소리가 나오는 것뿐이다.

      이런 자질을 못 자라게 하는 게 전국민의 아기화(化) 육아법이다. 아들이 대학원생이 돼도 그냥 아기 상태로 꼭부뜰어 매놓는 요즘 엄마들의 육아법. 미국에서 훈련받은 서남표 총장이 기절할(?) 정도로 희한하게 본 게 한국 엄마들의 그런 ‘피터 팬’ 육아법이었던 모양이다.

      도무지 뼈(骨)라는 게 없는 세상이다. 넘쳐흐르는 건 3류 연예(演藝)와 광고와 사교육 시장 뿐이다. 사람다운 사람은 어떤 것인가? 성인(成人)이란 어떤 것인가? 품격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을 위한 단련과 수련은 어떤 것인가? 이런 건 박물관에선 물론, 고물상에서도 사라지고 있다.

      이건 나이 많은 사람으로서 발하는 안간힘이 아니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살 만큼 살았다. 잘 된대도 관심 없고 잘못 된대도 관심 없다. 관심은 오로지, 오늘도 운동 열심히 해서 죽을 때 과히 아프지 않으면서 죽자는 것뿐이다. 다만 그런 유치한 풍조가, 예컨대 서남표 총장 같은 ‘곧은 소리’를 오히려 ‘옛날 같은 소리’인양 치부하는, 그 골 비다 못해 넋 나간 세태가 조금은 우스워서 나오는 1그램(gr) 정도의 미약한 조건반사일 뿐이다.

     류근일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