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증권이 한화그룹 비자금 의혹으로 작년 9월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한 이후 잇따른 악재에 신음하고 있다.
푸르덴셜투자증권을 인수한 지 1년 반이 지나도록 합병이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고 다음달 1일 예정이던 한화투신운용과 푸르덴셜자산운용의 합병도 난항을 겪고 있다.
증권업계 11위, 자산운용업계 5위로 도약하겠다던 야심 찬 계획이 장기간 표류하는 것이다.
올 초 중국고섬의 기업공개(IPO)를 공동 주관했다가 치명타를 맞은 탓에 IPO 사업은 사실상 접은 상태다.
IPO 시장이 최근 회복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중국고섬 이후 한화증권의 IPO 실적은 전혀 없다.
한화증권이 그룹 비자금 수사의 표적이 된 이후 악재와 풍파가 끊이지 않아 마치 삼재(三災)에 든 것과 같은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기업금융(IB)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해 돌파구를 마련해 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악재 연발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 푸르덴셜 인수 1년 반…합병은 요원
한화증권이 푸르덴셜증권과 푸르덴셜운용을 인수한 것은 작년 2월이다. 당시 한화증권은 합병을 통해 증권업계에서 자본금 기준 11위, 고객자산 기준 9위, 지점수 3위의 대형 증권사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한화투신은 푸르덴셜운용과 합병함으로써 자산운용업계 5위로 점프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한화증권의 합병계획은 인수 후 10개월 만에 파행을 겪었다. 올해 1월1일을 목표로 지난해 9월 금융당국에 푸르덴셜증권과의 합병승인을 신청했다가 돌연 일정을 변경했다.
작년 12월 말 이사회를 열고 합병을 연기하기로 한 것이다. 느닷없는 결정에 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전산시스템 등의 완벽한 통합을 위해 시간이 걸린다는 게 연기의 이유였으나 시장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증권업계에서는 한화그룹의 비자금수사가 진행되는 것을 의식해 일정을 미룬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올해도 한화증권은 합병과 관련해 아무런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검찰이 한화그룹 비자금수사를 마무리하면서 김승연 회장 등 11명을 불구속 기소한 것과 연관짓는 시각도 있다.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합병승인 신청을 미룰 것이란 얘기다.
다음달 1일 합병이 예정된 한화투신과 푸르덴셜운용의 합병도 삐걱거리고 있다. 금융당국의 추가 자료 요청 때문에 당초 목표로 삼은 내달 1일 합병이 사실상 물 건너 간 꼴이 됐다.
금융당국은 양사에 합병 후 시너지, 전산통합계획 등을 다시 내라고 요구한 상태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24일 열릴 정례회의에 양사간 합병 안건을 올릴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2일 "합병 안건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만 되뇌고 있다. 이 때문에 9월 중 합병 승인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인수한 지 1년 반이 넘도록 언제 한 살림을 차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계속돼 비용과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 중국고섬 상장 주관 충격 치명타
한화증권은 중국 시장 진출에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증권사로 꼽힌다.
해외펀드 열풍이 불던 2007년 벨기에 포르티스와 제휴해 한화투신이 설정한 차이나펀드 판매로 한화증권은 쏠쏠한 재미를 봤다. 중국시장과 관련한 투자 보고서도 열심히 냈다.
이를 기반으로 중국 기업의 국내 상장 유치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올 초 대우증권과 공동으로 주관해 상장시킨 중국고섬이 회계 문제로 거래가 중지된 여파로 기업공개(IPO) 분야에서 휘청거리고 있다.
올해 성사된 56건의 IPO 가운데 한화증권이 주관한 것은 중국고섬 단 한건에 그쳤다.
한화증권은 중국고섬의 일반 공모에서 대규모 실권주가 발생해 잔액인수 계약에 따라 543만주를 떠안았다.
중국고섬을 공동 주관해 챙긴 수수료는 30억원 정도다. 상장 이후 주가 폭락으로 떠안은 손실은 이 액수의 수배에 달했다. 숟가락으로 퍼먹고 사발로 토해낸 꼴이 됐다.
1998년 말 한국가스공사의 상장 주관에서 55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이후 최대 규모다.
설상가상으로 소송도 당하게 생겼다. 중국고섬 거래가 장기화하자 소액주주들이 한화증권 등 주관사를 상대로 법정 싸움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초에는 중국고섬 분석 보고서를 냈다가 투자자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국내 증권사 중 유일하게 중국고섬의 목표가를 제시한 것이 화근이 됐다.
당시 한화증권이 내놓은 목표가는 6천700원. 공모가보다 300원 낮았다. 그러면서도 투자의견을 매수로 제시하고 이른 시일 내에 주가가 오를 것이란 전망까지 했다.
공모가를 7천원으로 결정한 주관사가 상장한 지 채 한 달 반도 안돼 공모가 보다 낮은 목표가를 제시한 탓에 투자자들의 분노를 촉발했다.
한 증권사 IPO 담당자는 "주관사가 상장 직후 공모가보다 낮은 1년 목표가를 제시한 것은 빈축을 살 만하다"고 말했다.
당시 중국고섬 투자보고서를 냈던 애널리스트는 한화증권을 떠났다. 애꿎은 애널리스트만 문책함으로써 꼬리 자르기 식으로 사태를 무마하려 했다는 소문이 업계에 돌았다.
◇ 반전 도모하고 있으나 성과는 미지수
한화증권은 온갖 악재가 연발하자 IB 영업 활성화를 통해 반전을 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RM·PM 제도를 도입하고 IB 1ㆍ2본부는 영업 위주의 커버리지본부와 상품제조 위주의 프로덕트 본부로 개편한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중국고섬 파동 이후 위축됐던 IB사업을 회복시키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업계의 시선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중국고섬 문제가 발생한 이후 한화증권의 신뢰는 크게 떨어졌다. 이런 마당에 IB 조직을 개편한다고 해서 영업 실적이 획기적으로 개선될지는 의문이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개정안 발표를 계기로 금융당국이 덩치 키우기를 주문하는 상황에서 푸르덴셜과의 합병과 자본 확충에 주력해야 하는 게 우선순위임에도 조직 개편에 매달리는 것은 선후가 바뀐 것 같다"고 꼬집었다.
지난 2월에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러 한국거래소에서 주의조치를 받기도 했다.
2월23일 이사회에서 4월8일 임시주주총회 개최를 결의했다. 그러나 당일 공시 대상인 주총 소집 결의를 다음날 공시했다.
한국거래소는 즉시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할 것을 예고하고 다음달 8일 주의조치를 내렸다.
최근 3년간 국내 증권사 중 공시 지연으로 주의조치를 받은 사례는 한화증권이 처음이다. 당시 임시주총 안건은 임일수 대표 선임 문제였다. 증권사답지 않다는 지적이 업계에서 쏟아졌다.
이런 부주의와 기강 해이 현상이 누적돼 각종 문제를 일으킨 게 아니냐는 시각이 많아 한화증권이 환골탈태를 위해 대대적인 인적 쇄신 등의 노력을 얼마나 기울일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