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들 "주파수 부담 가중" 호소 …"통신요금 인상" 비판여론도방통위 "승자의 저주 우려는 과장·요금인상 걱정없다"
  • 지난 17일부터 시작된 주파수 경매에서 1.8㎓ 대역 입찰가가 1조원 가까이 치솟으면서 '승자의 저주'에 우려와 함께 통신요금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판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주파수 할당도 시장 원리에 맡긴다"며 국내 최초로 주파수 경매를 도입한 방송통신위원회는 이같은 비판적 여론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1.8㎓대역을 놓고 1주일 넘게 대치하고 있는 KT와 SK텔레콤도 입찰가 1조원을 앞두고 긴장감이 극에 달한 상태다.

    브레이크 없이 질주해오던 두 회사의 '돈 싸움'은 지난 26일 입찰가 1조원을 눈앞에 두고 제동이 걸렸다. KT가 전격적으로 '입찰 유예'를 신청, 숨고르기를 시도한 것이다.

    두 회사는 당초 1차 심리적 안정선으로 예상했던 입찰가 8천억원도 가볍게 뛰어넘었지만 입찰가 1조원 앞에서는 심리적 안정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최근 여론처럼 주파수 경매, 특히 '오름입찰 방식'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주파수 가격을 부풀려 '승자의 저주'를 초래할 것인지, 또 이것이 궁극적으로 통신요금으로 이어질 것인지 좀 더 냉정하게 되짚어봐야 한다는 지적도 공감을 얻어가고 있다.

    ◇8일간의 질주 '멈칫' = 지난 17일부터 평일 8일간 거침없이 이어진 KT와 SK텔레콤간 주파수 경매는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 상태다.

    1.8㎓ 대역 20㎒ 폭의 입찰가가 시작가인 4천455억원에서 9천950억원으로 치솟은 가운데 KT가 누적 82라운드에서 '입찰유예'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즉, KT가 1라운드 제한 시간인 30분 안에 입찰에 한 번 더 참여할지, 포기할지를 결정 못 해 판단을 다음 라운드로 미루기로 한 것이다. 사업자는 이번 경매에서 총 2번의 입찰유예를 신청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KT가 심리적 안정선으로 여겨지는 입찰가 1조원을 먼저 넘어서는 데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KT가 29일 속개되는 83라운드에서 입찰을 포기할 수도 있지만, 4세대(4G) 롱텀에볼루션(LTE)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전열을 정비해 입찰에 계속 나선다면 입찰가는 1조원을 돌파하고 다시 경쟁이 이어지게 된다.

    현재까지 KT와 SK텔레콤은 주파수 입찰가 상승이 미래 투자 여력을 위축시켜 통신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호소하면서도 결코 1.8㎓대역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는 내비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미래 주파수 확보 가능성을 보여주는 '주파수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은 채 무한 경쟁을 촉발시킨 방통위를 원망하고 있다.

    ◇'승자의 저주' 공방 = 영국과 독일의 사례를 보면 지금까지 국내 주파수 경매는 그리 걱정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볼 수 있다.

    영국과 독일 사업자들이 과거 경매에서 시작가의 54배, 매출의 2∼10배에 이르는 가격에 주파수를 낙찰받고도 지금까지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요금도 내렸다.

    2000년 영국 주파수 경매에서 5개 사업자가 경매 대가로 연 매출액의 160∼230%를 지불했지만, 경매 이후 사업을 포기하거나 주파수를 반납한 사례는 없었다.

    같은 해 독일에서는 6개 사업자가 경매를 통해 연 매출액의 163∼1,082% 수준의 대가를 내고 주파수를 할당받았고 이후 2개 사업자가 사업을 포기했지만, 이들은 신규사업자들이었다.

    현재 1.8㎓ 대역 입찰가인 9천950억원은 SK텔레콤의 작년도 매출액 12조5천억원에 견주면 8%, KT의 작년도 매출액 6조9천억원에 비해서는 14.4% 수준이다.

    게다가 영국과 독일은 2000∼2010년 1분당 평균요금 인하율이 OECD 평균(8.2%)보다 높은 8.5%, 10.1%을 각각 기록했다.

    일각에서 SK텔레콤의 작년 영업이익이 2조원인데 만일 1조원에 주파수를 낙찰받는다면 연간 영업이익의 절반이 사라진다는 지적이 있지만 이는 사실관계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

    주파수를 낙찰받은 사업자는 3개월 안에 낙찰가의 25%를 지급하고, 나머지 75%는 10년에 걸쳐 균등 분할 납부하게 된다. 한꺼번에 1조원을 부담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KT와 SK텔레콤이 작년 이동통신 마케팅 비용으로 2조원, 3조원 이상을 투자했던 점을 상기하면 주파수 대가 1조원은 이들 통신사업자에게 큰 부담은 아니다는 지적이다.

    ◇주파수 대가 오르면 요금 오르나? = 방통위 관계자는 "요금인하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고, 1위 사업자(SK텔레콤)에 대해서는 요금 인가제가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사업자들이 쉽게 요금을 올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통위의 이같은 입장은 통신시장을 규제의 틀로 묶겠다는 낡은 사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많다. 더구나 요금 인가제 폐지에 대한 공감대도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다 온갖 이유를 들이대며 요금인상에 인색했던 통신사업자들의 그동안 행태에 비춰볼 때 방통위의 "요금인상 걱정없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지적이다.

    방통위는 또 막대한 주파수 경매비용을 치렀던 영국의 통신사업자들이 지난 10년간 연평균 8.5% 요금을 내렸고, 같은 기간 독일 사업자들도 연평균 10.1% 요금을 내렸던 점을 제시하며 요금인상 가능성을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방통위의 이같은 주장은 "영국, 독일의 사업자들이 주파수 확보에 막대한 비용을 치르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요금인하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논리에는 설득력을 잃는다.

    주파수 할당 대가가 높아질 수록 통신사업자들은 이를 요금에 전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사업자들은 요금인하 요인이 발생할 경우 주파수 할당 대가를 앞세워 가급적 요금을 덜 내리거나, 요금 인상 요인에는 더 많은 요금을 올리려 할 것은 물문가지라는 얘기다.

    ◇주파수 경매 대안론도 고개 = 주파수 경매가 1주일 넘게 계속되며 입찰가가 1조원 가까이 치솟자 현재의 주파수 경매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금의 '동시오름입찰방식'은 마지막 최고 입찰가가 낙찰될 때까지 라운드를 거듭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주파수 대역에 입찰 신청이 몰리면 한쪽이 포기할 때까지 입찰가가 계속 올라가기 때문에 주파수 대가가 비싸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동시오름입찰방식이 아니라 한 번에 원하는 가격을 제시해 최고가를 가리는 '밀봉입찰방식'을 적용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경매 방식을 바꾸려면 방통위 전체회의를 열어 상임위원 간 의결을 해야 하고, 사업자 간 합의도 필요하다.

    이에 대해 방통위 관계자는 "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하고, 지금까지 경매에 참여한 사업자 간 이해득실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중간에 법칙을 바꾸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동시오름입찰방식은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주파수 경매 방식"이라며 "밀봉입찰방식은 위험 부담이 너무 커 사업자에게 더욱 불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현재 과당경쟁 양상이 보이고 있으니 경매를 잠시 중단하고 냉각기를 갖자"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