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대형마트 창고형 매장 바꿨어도 면적 같으면 영업규제 안 돼상생협력 취지 무색...중소상인 및 지자체 반발 예상 유통산업발전법 곳곳 허점, 유일한 무기 '사업조정제도' 힘 빠져
  • ▲ 대형마트(자료사진).ⓒ 연합뉴스
    ▲ 대형마트(자료사진).ⓒ 연합뉴스


    기존 매장을 창고형 매장으로 변경한 대형마트 점포는 상생협력법상의 사업조정 대상이 아니라 영업을 제한할 수 없다는 법원판결이 나왔다.

    최근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을 강제한 서울시 강동구와 송파구의 조례를 ‘절차상’ 위법을 이유로 무효 판결한 법원이 이번에도 대형마트의 손을 들어주면서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판사 이인형)는 20일 이마트가 중소기업청장을 상대로 낸 사업조정개시 결정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대형마트가 기존 매장을 창고형 매장으로 바꾸고 상호를 변경했어도 ‘판매면적이 같다면’ 새로운 사업의 개시나 확장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지난해 8월 이마트는 부산 서면점을 창고형 매장인 ‘이마트 트레이더스’로 변경해 영업을 재개했다. 이에 대해 지역 전통시장과 중소상인들은 이마트의 매장 변경은 상생협력법에 어긋난다며 중소기업청에 사업조정신청을 냈다.

    신청을 접수한 중기청은 중소상인들의 이의를 받아들여 같은 해 12월 해당 매장을 사업조정 대상으로 결정했다.

    중기청의 결정에 대해 이마트는 사업을 확장하거나 새로 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원에 소송을 냈다.

    이날 재판부는 원고인 이마트의 손을 들어줬다.

    “변경된 창고형 매장은 기존 매장과 판매면적이 같아 판매규모가 확장됐다고 보기 어렵다. 변경된 매장의 매출액 증가는 시설 개선이나 상품 차별화로 인한 것”

    “기존 매장을 창고형으로 바꿔 영업을 재개한 것을 새로운 사업의 개시나 확장으로 볼 수 없다. (이로 인해) 중소상인이 새로운 침해를 받는 것도 아니다”
     - 재판부

    이번 판결은 같은 법(‘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중소상인의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와 SSM을 규제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움직임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지자체들은 대형마트와 SSM을 상생협력법이 정하고 있는 ‘사업조정제도’로 규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형마트 및 SSM 규제를 위해 도입된 유통산업발전법이 곳곳에서 허점을 노출하면서 사업조정제도를 제외하고는 이들의 영업을 제한할 마땅한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경우만 봐도 최근 문을 연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천왕점에 대해 사업조정 제도를 근거로 영업개시 일시 정지를 권고했다.

    이마저 해당 점포는 가맹본부의 투자비율이 51% 미만으로, 사업조정대상이 아니라며 시의 권고를 무시하고 예정대로 영업을 개시했다.

    시는 홈플러스가 계속해서 권고를 무시할 경우, 중기청 사업조정심의회에 조정심의를 회부할 계획이다.

    그러나 중기청이 시의 신청을 받아들여 사업조정을 결정해도 대형마트가 이번 판결을 근거로 불복할 가능성이 높아져, 지자체의 규제 효과가 더욱 약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자체들이 대형마트에 맞설 유일한 무기마저 제 힘을 못 쓰면서 대기업의 골목상권 옥죄기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사업조정’
    대기업 등의 사업진출로 당해 업종의 중소기업 상당수가 경영에 현저한 영향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사업 인수, 개시, 확장을 연기하거나 축소를 권고하는 제도.

    ‘일시정지 권고’
    중소상인 등의 사업조정 신청이 있는 경우 해당 대기업에 조정의 결과를 통지할 때까지 문제된 사업의 인수, 개시 또는 확장을 일시 정지하도록 권고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