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과 성공경영-뉴데일리경제 박정규] 진시황(B.C.259-210)이 천하를 통일한지 9년 뒤 사망하자 중국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황제 자리를 이어받은 아들 호해가 진압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지만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반란을 막을 수 없었다. 진나라는 결국 15년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진나라가 망한 뒤 두명의 영웅호걸, 즉 초(楚)의 왕 항우와 한(漢)의 왕 유방이 천하를 두고 다투게 된다. 처음 1년은 항우의 군사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유방은 고전을 면치 못했고 항우와 전면전을 할 때마다 패했기 때문에 전선을 지키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2년째에 접어들면서 두 영웅 진영의 형세가 바뀌기 시작했다. 항우는 전술적으로 우세했지만 공격할 때마다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형세는 점차 역전돼 유방이 전술, 전략적으로 우위에 서게 되고 항우는 열세를 뒤집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항우의 군사는 해하에서 유방과 그를 지지하는 제후들의 군사에 포위되고 말았다. 밤이 되자 자신의 진영에서 초나라 노래가 흘러나왔다. 바로 사면초가(四面楚歌)의 형국였다. 안팎으로 적군에 포위된 것을 안 항우는 수백명의 기마병을 이끌고 포위망을 뚫고 나와 도망치다 결국 자결하기에 이른다.

     

    항우의 패망 원인은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장기전략이다. 유방이 열세에 빠졌을 때부터 항우에 대한 포위망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연구해 1년 이상 서서히 목을 죄는 전술을 펼쳤고 결국 ‘독 안에 든 쥐’ 형세를 만들었다.

     

     

  •   뉴데일리경제 박정규 대표

    둘째는 탄탄한 지원시스템이었다. 유방은 병참체계, 즉 후방의 지원체제를 견고하게 구축했다. 신속한 지원체계를 갖춰 아무리 패전하더라도 전력을 다시 정비해 마지막 고지를 지키는 작전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항우는 후방 보급로가 부실했기 때문에 대격전 이후 소모된 전력을 회복할 수 없었고 조금씩 열세로 내몰리게 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 활용의 차이였다. 유방은 부하들의 의견에 귀를 잘 기울였다. 무언가 문제가 발생하거나 벽에 부딪히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부하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의견을 구한 후 결단을 내리는 방식을 활용했다. 또 전쟁에서 이겨 전리품이 들어오면 부하들에게 적절히 나눠줬다. 대전투 이후에도 적절한 인센티브로 인해 부하들의 사기는 유지될 수 있었다.

     

    반면 항우는 자신의 재능만을 믿고 부하들의 진언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고 항상 독단으로 일을 처리했다. 전리품도 부하들에게 나눠주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항우에게는 범증이라는 유능한 장수가 있었지만, 그나마 잘 활용하지 못했다. 결국 항우 밑의 유능한 부하들은 하나 둘 떠나고 혼자 고군분투하는 형세가 되고 말았다.

    집단의 힘을 잘 이끌어내 조직의 시너지를 낸 항우와, 독단으로 군사를 이끌었던 유방의 결말은 오늘날 기업 경영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유능한 경영자일수록 참모들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반면 스스로 탁월하다고 생각하는 경영자는 참모들을 ‘돈 벌어오는 기계’ ‘언제든 바꿔버릴 수 있는 자’ 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런 기업의 항로가 어떻게 펼쳐질까? 항우와 유방의 엇갈린 운명의 두 기업의 미래를 시사해주고 있다.

     

    /박정규 뉴데일리경제 대표 skyjk@new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