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행복이 주렁주렁...산울림곶감조합 일가족 ⓒ뉴데일리
    ▲ 행복이 주렁주렁...산울림곶감조합 일가족 ⓒ뉴데일리

     

    "곶감익는 마을은 어디나 고향같다"
    어느 시인의 얘기 처럼 요즘 흑곶감 주산지로 떠오르고 있는 전북 완주군 경천면은 푸근한 고향 내음과 수확의 기쁨이 가득하다.

     

    감빛 덕장 아래 꾸덕꾸덕 곶감이 익어가고 마을 곳곳에선 감깎기와 감말랭이 작업에 나선 아낙들의 시끌한 웃음소리가 왁자하다. 오가는 거리마다 감나무가 지천이고 대붕과 곶감, 건시와 반건시, 말랭이가 넘쳐난다. 까치밥으로 남겨놓은 감나무엔 철새들이 잔치를 벌이고 일찌감치 감맛을 들인 토종닭도 과원을 휘저으며 덩달아 신이났다.


    호남의 금강으로 불리는 대둔산 자락 아래 경천. 바로 이곳에 경천 흑곶감을 탄생시킨 '산울림곶감영농조합'이 있다. 주렁주렁 행복을 일구는 조합의 구성원은 모두 한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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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장의 주인은 사람좋은 인상의 정택 대표(57). 정대표는 30년 농군경력을 바탕으로 감 생산과 재배, 수확을 도맡고 있다. 품질을 좌우하는 곶감 말리기와 손재주를 이용한 곶감 따는 기계 만들기가 주특기다.농장 안살림을 챙기는 아내 김영자씨(56)는 곶감과 감말랭이 가공, 유통을 담당한다. 지금의 경천 흑곶감을 탄생시킨 산파역으로 자부심이 넘쳐난다.

     

    이제 막 30살이 된 맏아들 정철씨는 귀농 1년차로 마케팅과 시장개쳑이 미션이다.공대를 나온 후 1년여 직장생활을 하다 '도약'을 꿈꾸며 고향 감나무 곁으로 돌아왔다. '도약'은 그가 체게바라 자서전을 읽은 뒤 새롭게 설정한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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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 빛 '흑곶감'의 탄생

    경천사람들은 대대로 겨울철 간식용으로 곶감을 만들어 왔지만 대부분 자가 소비에 그쳤다. 100% 자연건조를 통해 50~60일 정도 말린 경천곶감은 건시와 반건시의 중간쯤으로 유난히 달고 맛이 있었지만 거무튀튀한 외양 탓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검은 색은 바람과 햋빛으로만 말리는 전통방식에 따른 것이지만 인공으로 유황훈증을 쐬어 주황색으로 치장한 다른 곶감에 비해 비주얼에서 밀렸다.

     

    오래도록 쫀득한 식감과 단맛을 유지하고 무엇보다 자연그대로 건조돼 친환경적인 흑곶감을 제대로 알릴 수 없을까? 고민을 거듭하던 김영자씨는 10여년전 무작정 경천 흑곶감을 들고 백화점을 찾았다. 시큰둥한 MD를 설득해 가까스로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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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격도 포장도 유통도 생각할 겨를없이 그저 맛을 보여주고 제대로 평가받고 싶었다.다행히 반응은 좋았고 이내 주문이 밀려들었지만 이번엔 물량이 태부족이었다. 마을 곳곳을 오가며 곶감을 모아 납품하기를 3-4년. 김씨는 반신반의하던 남편을 설득해 과감히 감 전업농으로 방향을 바꿨다. 인삼재배로 쏠쏠한 수입을 올리던 터였지만 곶감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실한 감(?)이 있었다.

     

    6000여평의 밭에 인삼 대신 2000여 그루의 감나무를 직접 심고 정성으로 돌봤다. 그렇게 한해 40여톤의 감을 수확해 억대의 조수익을 올리고 곶감으로 만들지 못하는 중과와 소과는 말랭이로 만들어 수천만원대의 과외 수익도 거뒀다.

     

    흑곶감에 대한 입소문과 쏠쏠한 수익이 알려지면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감농사에 합류했다. 10여년새 경천과 인근 운주 지역은 곶감 주산지로 변모했고 어느새 완주의 명품이 됐다. 경천에서만 120여 농가가96ha 면적에서 연간 285톤의 흑곶감을 생산하며 27억원 정도의 소득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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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곶감의 도약

    곶감은 버려지는게 절반이다. 산울림조합이 생산하는 감은 연간 40톤 가량이지만 고르고 골라 만들어지는 곶감량은 20동으로 전채의 절반이 채 되질 못한다. 곶감 100개가 한 접, 100접이 모여야 한 동이니 농가로서 안타깝기가 짝이 없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소과와 중과로 감말랭이를 만들고 있다. 반건조된 말랭이는 쫀득한 식감에 달콤함이 더해져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중국에서 감을 들여와 국산 곶감으로 둔갑시키는 경우는 적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말랭이는 그러기도 쉽지않아 새로운 틈새 수익원이 되고 있다. 지난해 3톤 가량의 말랭이로 수천만원의 수익을 올린 김영자씨는 1-2년새 남편의 수익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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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롯이 곶감에 주력하는 정 대표도 비책을 준비중이다. 대부분 명절 선물용으로만 출시되는 곶감 유통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 냉장고에 처박혀있는 곶감을 상점으로 끄집어 내는게 목표다. 2개나 4개짜리 소포장을 만들어 일반 소매점에서도 손쉽게 곶감을 살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시골에 오면 장가가기 힘들다"는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직 대신 귀농을 택한 아들 정철씨도 어엿한 자신의 노릇 만들기에 분주하다. 농협에 위탁 출하해오던 유통을 본인이 직접 맡아서 하기로 했다. 1년에 20만개, 1톤 트럭 20대분이 넘는 적잖은 물량이지만 모두 직판으로 소화할 생각이다. 수시로 앞선 마케팅 대가들의 노하우를 익히고 다양한 SNS 판로개척에 열성이다. 어머니의 권유로 벌써 수개월째 수원의 aT 대학까지 오가며 다양한 작목으로 부농반열에 오른 선배들의 모습 배우기도 열심이다.


    그가 꿈꾸는 도약은 '감 체험 농장'이다. FTA에 따른 농산물 개방 바람에 앞으로 곶감 시장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물론 관혼상제에 주로 쓰이는 곶감의 특성상 기본 수요는 유지하겠지만 이왕 귀농을 결심한 지라 신세대형 감농장을 만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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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러브 커피'를 흉내낸 사이버 곶감 만들기도 준비중이고 대둔산과 연계한 관광형 농장 구상도 서두르고 있다. 서리가 내리는 상강부터 불과 두세달만 사용하는 감 건조장을 활용한 숙박시설. 하늘 빛 보다 더푸른 경천 저수지를 닮은 산울림 연못.

     

    감잎차를 만들고, 버려지는 감씨를 활용해 기름도 짜고, 감식초와 감잎 추출물을 활용한 비누와 폼 세정제도 만들고, 감잎 염색체험도 하고, 장수보양용으로 활용했다는 감꼭지를 활용한 이른바 '시체탕'에도 도전해 볼 생각이다. 과원에서 뛰노는 닭들과 함께 감나무를 키우고 수확하고 말리는 작업까지도 직접 체험하게 할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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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다 좋을 순 없다"

     

    따로 또 같이 저마다 도약을 꿈꾸는 가족들이 한데 뭉치니 절로 신바람이 난다. 너른 마당 한켠에 높이 매달린 토실토실한 보물을 올려다보는 가족의 얼굴엔 그래서 늘 넉넉한 웃음꽃이 피어난다. 올해도 감농사는 대풍이고 가족이 함께 모여사니 더이상 부러울 게 없다.

     

    흑곶감으로 한 데 뭉친 경천 산울림곶감영농조합.
    무렴한 감은 혼자서 익어가지만 달콤한 흑곶감 가족의 미래는 더불어 익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