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배나무 분양과 소셜농업으로 억대 농부의 꿈을 이룬 이상열 대표ⓒ뉴데일리 DB
    ▲ 배나무 분양과 소셜농업으로 억대 농부의 꿈을 이룬 이상열 대표ⓒ뉴데일리 DB

     

    천안의 북쪽 끝자락 성환은 예부터 배 주산지로 이름이 높았다. 하지만 여느 농촌과 마찬가지로 가장 젊은 농군이 70대일 정도로 고령화되다 보니 어느새 사람 구경 조차 쉽지않은 정적의 농촌이 되어 버렸다.

     

    이 곳에 새삼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이는 햇병아리 농군 이상열 대표. 공대를 나와 20여년간 건설회사에 다니던 그는 농업창업 2년만에 배나무 사전 분양과 소셜마케팅으로 억대농부의 꿈을 이뤘다.

     

    배꽃 피는 4월부터 수확기인 10월까지 매주 100여명이 넘는 작은 농장주들이 찾는다는 그의 시골 과수원을 찾았다.

     

  • ▲ ⓒ제공=어룡농원
    ▲ ⓒ제공=어룡농원

  • ▲ 분양용 팻말ⓒ제공=어룡농원
    ▲ 분양용 팻말ⓒ제공=어룡농원

     

     

    ◇ '귀농 아닌 농업 창업'

     

    그가 귀농을 결심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혹자는 귀농은 사업에 실패하거나 은퇴자들이 하는 일이 아니냐고 했다. 다른 이들은 물려받을 땅이라도 있으니 귀농 운운하는 것이라며 애써 폄훼했다.

     

    사실 그의 농장은 벌써 3대 50여년이 훌쩍 넘었다. 의사였던 조부가 땅을 일구고 약대를 나온 부친이 과수농사를 지었다. 그가 과수원을 물려받은 것을 빗댄 말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절박함이 있었다. 20여년간 다니던 건설회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때마침 와병중이던 선친이 돌아가셨다. 노모를 모시고 처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절대 의무감에 숨이 막혔다. 아내에게 퇴직금을 1년치 생활비로 건네고 그는 밤낮으로 농업창업을 준비했다.

     

    여러 귀농 아카데미를 이수하며 철저히 미래를 그렸다. 하지만 뭔가 허전했다. 대부분의 귀농 관련 교육이나 세미나는 농사짓는 법이나 시골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적응 훈련이 대부분으로 농작물을 생산해 수익을 내는 방법에 대한 강의를 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부푼 꿈에 젖어 귀농한다 하더라도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다보니 실패의 주요인으로 꼽혔다.

     

    그는 이런 수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배나무 분양을 구상했다. 수억원대의 아파트도 선분양을 하는데 배나무도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건설회사에서 20여년간 마케팅과 분양, 브랜드 업무를 맡았던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친구들을 모아놓고 사전 테스트를 거친 후 귀농을 준비하며 곧바로 분양에 들어갔다. 아파트 분양 경험을 살려 분양 계약서를 만들고 수확 보증과 사이버 영농일지 등도 꼼꼼히 준비했다.

     

    첫 해 목표는 150주. 100개 내외의 배, 7.5kg 8박스를 1년 수확량으로 제시했다. 천재지변 등의 낙과시에도 5박스 이상은 보장하겠다고 했다. 마케팅은 그의 주특기, 사이버와 오프라인을 오가며 열심히 홍보한 덕에 목표치를 모두 채웠다. 그루당 30만원씩 4500만원의 수입이 들어왔다.

     

    올 목표치 175주도 무난히 달성했다. 내년 목표는 250주, 그의 과수원 전체 배나무 1000주의 25%가 되는 분량이다.

     

  • ▲ ⓒ제공=어룡농원
    ▲ ⓒ제공=어룡농원


    배나무 분양은 그에게 일석이조의 효과를 안겼다. 사전 수익과 판로를 마련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가 기획한 팜스테이와 팜파티는 일손절감에 큰 효과를 발휘했다.

     

    배꽃이 피는 4월, 농장주들은 배꽃이 흐드러진 농장을 찾아 자연을 즐기고 배나무의 수분양도 직접 자기손으로 했다. 틈틈이 농장에 들러 일손을 거들고 수확철이면 300-400여명이 배를 따고 포장·운송까지 도맡아 했다.

     

    명절때면 어김없이 선물용으로 배버리힐즈의 배를 구입하고 주변 지인들을 또다른 작은 농장주로 소개했다. 이렇게 추가로 확보된 판로만도 수천만원대에 달한다는게 그의 귀띔이다.

     

  • ▲ ⓒ제공=어룡농원
    ▲ ⓒ제공=어룡농원

     

    ◇ 소셜농업과 농업경영

     

    분양과 마케팅의 일등공신은 인터넷과 블로그, 소셜네트워크서비스였다. 카카오스토리나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등의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고객들과 소통하고 직거래를 성사시켰다. 배나무 선분양도 그렇게 구상했다. 특히 오프라인 지인들과 함께 SNS를 접목해 마케팅 영역도 크게 넓혔다.

     

    그는 매일 수원에서 성환까지 하루 세시간씩 전철로 출퇴근을 한다. 이 시간이 그가 사이버 농사를 짓는 시간이다. 농사짓는 과정과 농작물 출하 사진 등을 올리고 소소한 일상까지 담아 농장주들과 소통한다.

     

    출근전 새벽시간 휘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하고 퇴근후에도 각종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주말이나 휴일도 운동과 취미를 함께하는 이들과 늘 같이한다. 인터네으로 농사를 짓고 오프라인으로 마케팅을 병행하는 소셜농업이 그의 성공열쇠가 됐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자 농장을 맡아오던 관리인이 그만두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각자 잘할 수 있는 분야에 힘을 쏟아 시너지효과를 내자고 했다. 식당 주인이 주방에 있기 보다 홀과 손님들의 반응을 살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우리나라 대학에 농업경제학은 있는데 농업경영학은 눈을 씼고 찾아봐도 없더라. 농업에도 경영마인드가 필요하다. 분업화와 특화를 통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이다.

     

  • ▲ ⓒ제공=어룡농원
    ▲ ⓒ제공=어룡농원

  • ▲ ⓒ제공=어룡농원
    ▲ ⓒ제공=어룡농원

     

    ◇ 스토리가 있는 '배버리힐즈'


    그의 농장의 이름은 지명을 딴 어룡농원이지만 인터넷에서는 '배버리힐즈'로 통한다. 쥔장은 배짱, 1만5천여평의 과수원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은 배마르뜨다. 굿모닝 대신 배모닝을 외치며 반갑게 농장주를 맞는 강아지의 이름은 배컴.

     

    과수원 배나무 마다 가족의 건강, 합격, 소원을 비는 이색 문패가 걸려있고 농장 한켠엔 게스트하우스와 오토캠핑장까지 차려졌다. 차고지는 배 갤러리, 옛 쥔장이 생활하던 집은 배 펜션이 됐다.


    어른 주먹 두배만한 크기의 달고 시원한 감천과 신고 배를 주로 생산하는 이 곳의 배는 별칭도 남다르다. 비거리를 배로 늘려준다는 골프배, '갑'에게 꼭 선물하고 싶은 '수주 배', 사돈끼리 주고 맞는 명품 '짝' 배, 배나온 임산부와 중년의 배불뚝이 아줌마 아저씨들을 위한 배둘레헴 배, 합격과 건강을 기원하는 소원배.

     

    마음을 나누는 선물용 어룡 으리 배도 있고 도시의 아이들에게 시골 외갓집 맛을 보여주겠다는 외할머니 배도 있다. 똑같은 배지만 저마다 사연 담긴 이름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톡톡튀는 작명과 아이디어는 모두 이상열 대표의 작품이다. 그는 수십년 경력의 다른 농장과의 차별화를 위해 스토리텔링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 ▲ 비거리를 두배로 늘려준다는 골프장용 배ⓒ제공=어룡농원
    ▲ 비거리를 두배로 늘려준다는 골프장용 배ⓒ제공=어룡농원

     

    ◇ 콜라보레이션과 클라인카르텐


    수확이 끝난 과수원은 한가하다. 하지만 그는 분주하다. 그의 농업창업 성공사례에 대한 각종 요구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연요청도 많고 자문위원 위촉도 받고 무엇보다 농장을 직접찾는 동료 농업인들이 크게 늘어났다. 얼마전에는 농림식품부 장관이 직접 농장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난감한게 한둘이 아니다. 대부분 그에게 재배법과 판로, 수익성만 물으니 답이 궁하다.


    그래서 그는 우선 주변 농가들에게 소셜농업을 전파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인터넷과 SNS 등 검증된 플랫폼을 각인시키는 일이다. 마땅치않게 바라보던 고향 어르신들도 요즘 부쩍 관심을 보이고 있다.

     

  • ▲ 이동필 농림부장관이 작은 농장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제공=어룡농원
    ▲ 이동필 농림부장관이 작은 농장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제공=어룡농원

     

    또 하나 골몰하는 것은 aT 농업대학에 다니며 교류를 맺은 전국 각지의 다른 분야의 농업인들과 콜라보레이션을 꾀하는 일이다. 제주 감귤이나 참다래, 곶감, 사과, 수박 농가와의  다양한 결연방식을 구상하고 있다.

     

    할 수 있다면 농장 전체를 협동조합식으로 바꿔 한국형 클라인 카르텐도 만들고 싶다고 한다. 단순 주말농장이 아닌 세컨드 하우스로 만들어 일주일에 3일 이상 과수원에 머물며 농사도 짓고 자연도 즐기는 도시민들을 위한 체재형 농장이다.

     

    "의사였던 조부나 약사였던 부친 모두 돌아가실 때 빈손으로 갔다. 소유만 내 이름일뿐 땅은 가져갈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모두의 땅으로 돌려주고 싶다."

     

    금귀월래(금요일에 갔다가 월요일에 돌아온다) 농장을 꿈꾸는 배짱의 하루가 농한기에도 유난히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