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1998년 IMF 재현 우려 '좌불안석'전문가 "러 채무지불능력 관련 지표, 과거보다 안정적"


  • 유가 하락, 루블화 가치 폭락에 따른 물가 급등,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 선언 등으로 러시아발(發) 금융불안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최근의 상황과 닮은 면이 많은 1998년 외환위기(IMF) 당시 신흥국 금융시장 불안정세가 국내 경제에도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투자자들의 우려도 증폭됐다.

    그러나 시장전문가들은 국내에 끼칠 영향은 미미하다는 분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26일 김지운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유가 하락과 화폐가치 절하로 신흥국들이 위태로워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1998년의 모라토리엄이나 외환위기와 같이 (한국을 포함한) 전면적인 신흥국 위기가 올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에 따르면 과거보다 환율은 안정됐고, 러시아의 대외 채무도 적고 외환 보유고도 넉넉해 러시아를 비롯한 신흥국들에 대한 추가적인 우려는 '기우'라는 판단이다.

    러시아 금융 불안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의 경제 제재와 최근 국제유가 급락, 그에 따른 러시아 루블화 가치 하락에 기인한다. 경제 제재로 대외 자본 유출이 지속되며 루블화 가치는 급락하고 환율 방어로 러시아 중앙은행의 준비자산은 빠르게 감소했다.

    그러나 김 연구원은 우선 신흥국들의 환율이 절하되고 있는 점은 비슷하지만, 위기 때보다 안정적인 절하폭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면서 신흥국 전체 위기로 확산되진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 연구원은 "미국과 교역하는 주요 신흥국들의 환율을 나타내는 OITP 달러 지수가 과거 위기와 달리 안정적"이라며 "현재 일부 산유국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가들은 변동 환율제도를 채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대외채무도 1999년에는 신흥국가 GDP의 40% 정도였지만, 작년 기준으로는 26% 정도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1998년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던 러시아의 최근 단기외채는 210억달러로, 11월 말 기준 외환보유고의 5% 수준이다.

    김 연구원은 "신흥국들의 외환보유고는 1998년 6420억달러에서 2013년 기준 8조달러에 달한다"며 "특히 러시아는 이 가운데 11월 말 현재 기준 4200달러 수준의 외환을 보유, 세계에서 6번째로 외환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라고 밝혔다.

    이하연 대신증권 연구원도 신흥국 전반에서 외자유출이 발생한다기 보다는 대외 취약도가 높은 국가들에 외자유출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 연구원은 "2013년 5월 대규모 외자유출을 경험한 신흥국은 전반적으로 대외취약도가 개선돼 외자유출 위험은 낮은 편"이라며 "경상수지와 외환보유액 개선으로 단기 지불능력이 향상된 것이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또 국내 경제에도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이 연구원은 예상했다. 이 연구원은 "한국의 대(對)러 수출 비중은 2%도 되지 않으며 한국 금융기관의 대러 노출 비중은 1.3%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번 러시아 이슈에 대해 지정학적 리스크를 특히 주목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 연구원은 "러시아 이슈를 경계하는 것은 지정학적 긴장감이 다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이 가시화되며 러시아와 NATO간 충돌 가능성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발 금융불안은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에는 동의하는 눈치다.

    이하연 연구원은 "신용평가사인 S&P가 러시아 신용등급을 부정적 관찰대상으로 편입해 정크등급으로의 강등 가능성이 커졌다"며 "풍부한 외화보유액으로 외채상환에 따른 어려움은 없어 당장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러시아 금융불안이 단기간에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최근 연례 기자담화를 통해 "현 경기침체가 2년 정도는 이어질 것"이라며 장관들에게 극심한 경제 침체를 관리하기 위해 연말까지 휴가를 반납하고 일하라고 지시하는 등 어려운 경제 상황임을 인정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