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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가 KTX 호남고속철도 운행계획을 서대전역을 거치지 않는 것으로 결론 내렸지만, 갈등을 빚었던 대전·호남권 어느 쪽도 속 시원히 갈증을 풀지 못해 어정쩡한 절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익구조를 최우선시하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뒷북 의견수렴 비난을 샀던 국토교통부만 실리와 명분을 나눠 가졌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윈윈(?)…대전 '실망'·호남 '운행횟수 감축' 등 모두 불만족
6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4월 개통 예정인 호남고속철이 '저속철' 논란을 불러왔던 서대전역을 거치지 않고 서울 용산역을 출발해 광주·목포·여수·순천으로 직행한다. 오송역~광주송정역 구간 신선이 개통하면 현재 일반철도 호남선 구간을 이용하는 KTX는 모두 호남고속철도 신선을 이용하게 된다.
운행횟수는 용산∼광주송정·목포가 현재 하루 44회에서 48회, 용산∼여수는 18회에서 20회로 총 6회 증편된다. 기존 대전·충남권 승객을 위해서는 서울~서대전~계룡~논산~익산 구간을 오가는 KTX를 하루 18회쯤 따로 운행한다. 이는 대전·충남지역 반발을 달래려는 조치다.
갈등을 빚었던 대전·충남, 호남권 지방자치단체는 일단 국토교통부 확정안을 수용하는 분위기다. 한 달여간 계속된 논란과 갈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역마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또 다른 논란의 불씨는 여전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확정안에 대해 고속철이란 취지와 수요를 모두 충족해 대전·충남권과 호남권이 서로 유리한 대안이라고 자평한다. 하지만 어정쩡한 중재로 대전·호남권 어느 쪽도 속 시원히 갈증을 풀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가 발표한 호남고속철 운행계획을 대승적으로 수용한다"고 말했다.
송하진 전북도지사도 기자회견에서 "지역의 여망대로 서대전을 거치지 않고 빠르고 편리한 노선으로 호남 KTX 운행이 이뤄진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수용 입장을 피력했다.
이낙연 전남도지사는 논평을 통해 "국토부가 코레일의 애초 제안을 일정 부분 수정한 것으로 본다"며 사실상 수용 의사를 밝혔다.
충청권임에도 반대 뜻을 밝혀왔던 충북도도 환영의 뜻을 전했다. 설문식 정무부지사는 브리핑에서 "호남선 운행횟수 증가로 오송역은 분기역의 기능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대전시는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권선택 시장은 기자들과 만나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코레일의 대안이 채택되지 않아 아쉽다"며 "현재로선 서대전역을 일부 지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앞으로 호남선 KTX 운영계획에 재조정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고 토로했다.
호남권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증편계획이 애초 계획보다 대폭 줄면서 수도권과 호남권의 접근성 강화로 낙후된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한다는 고속철도의 취지가 반감됐기 때문이다.
광주와, 전남·전북 단체장 모두 추후 재조정을 요구했다. 이낙연 전남도지사는 논평에서 '환영' '수용' 등의 단어를 삼간 채 서울용산~광주 간 증편, 서대전~광주 간 이용자 불편 등의 과제 해결을 국토부에 촉구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광주 김동철(광산갑) 의원은 입장발표문을 통해 "20편 증편을 약속했지만, 6편에 그쳤고 나머지 14편을 포함해 18편을 서대전~익산 구간에 운행하겠다는 것은 코레일이 발표했던 것과 다를 게 없다"며 "꼼수를 부려 수도권과 호남권을 우롱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광주시당도 논평을 내소 "완행을 없애고 직행을 늘리라는 지역민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완행만 없앤 조삼모사식 졸속대책"이라고 비난했다.
전북도의회도 호남고속철이 서대전역을 거치지 않는 것에는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증편횟수가 애초 계획안보다 줄어든 데 대해서는 유감을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뒷북 의견수렴이라는 지적을 샀던 국토교통부가 오는 1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업무보고를 앞두고 수정안을 내놓은 것을 두고 의원들의 뭇매를 피하려고 서둘러 봉합에 나선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어느 시점에 발표하더라도 한 지역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어차피 맞을 매라면 먼저 맞자'라는 심리가 작용했을 거라는 견해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숙한 대응으로 정책 혼선만 부추긴 채 발표를 번복하는 과정을 지켜본 것도 학습효과가 있었을 거라는 관측이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 고위 관계자는 "애초 지역 의견을 좀 더 수렴하고 9~10일께 브리핑할 계획이었지만, 최종안을 국회에 설명하는 과정에서 내용이 일부 알려져 고민 끝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며 "우선 부인하고 시간을 벌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혼란을 키울 수 있어 운영계획을 발표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
◇국토부, 속도·수요 두 마리 토끼 잡아 '명분'…코레일, 수익성 확보로 '실리' 챙겨
결과적으로 이번 호남고속철 운행계획 발표로 호남권은 '고속철'을 얻었지만, 지역발전에 필수적인 운행횟수 증편에선 손해를 봤다. 대전~호남 간 KTX 단절로 대전과는 반대로 호남권에서 대전권으로 진입하려면 이용객도 불편을 보게 됐다.
충북도 고속철 유일의 분기역이라는 위상은 공고히 하게 됐지만, 가까운 대전·충남과의 충청권 공조에 틈이 벌어지게 됐다는 자조 섞인 분석도 없지 않다.
때문에 이번 결정으로 정작 실리와 명분을 챙긴 것은 코레일과 국토교통부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토교통부로선 고속철도 취지를 살리면서 기존 서대전권 수요도 배려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정치권을 중심으로 반발이 확산한 뒤에야 '뒷북' 의견 수렴에 나섰다는 비난을 상쇄할 수 있어 명분을 얻었다는 시각이 많다.
국토교통부 고위 관계자는 6일 기자들과 만나 "이번 결정이 대전·충남권과 호남권이 윈윈하는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실리는 수익구조를 최우선시하는 코레일이 챙겼다. 코레일은 수정안에서도 수익구조를 위해 애초 제안했던 18편의 서대전~계룡~논산~익산 구간 운행을 보장받았다. 국토교통부가 이 구간 이용객을 위해 따로 운행하기로 한 KTX 노선에서는 이용률이 낮은 익산 이하 호남선은 운행하지 않아도 되는 덤까지 얻었다.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지난달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호남고속철의 '저속철' 논란 질문을 받고 "(코레일이) 호남 운행 편수의 몇 퍼센트를 운행계획에 (반영)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정권도 없다"면서 "호남선 개통하면 손님이 느는 것만 생각하는데 광명역도 하루 1만명 넘어가는 데 몇 년이 걸렸다. 열차 차량을 구매해 투입하는 비용이 상당한 만큼 공실률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었다. 고속철도의 속도 논란보다는 운행에 따른 수익구조를 최우선시하는 발언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