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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한 물음에도 소이부답(笑而不答, 웃음을 띨 뿐 답하지 않는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얼마전 먼저 타계한 아내의 묘비문에 직접 썼다는 글이다.
조부영 전 의원과 심대평 지방자치발전위원장 등 오랜 측근들은 JP의 최근 입장이 '소이부답'이라고 했다. 이완구 총리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간의 이전투구에 대해 JP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총리와 성 전 회장은 모두 JP의 사람들이다. 비록 시기가 달라 한솥밥을 먹진 않았지만 둘 다 JP를 정치적 스승이자 멘토로 여겼다. 그런 그들은 모두 JP에게는 아픈 손가락인 셈이다. 경남기업 사정바람이 불자 성 전 회장은 JP에게 여러차례 구원을 요청했고 JP는 이 총리에게 선처 가능성을 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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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리는 일찌감치 포스트 JP로 주목받았다. 95년 충남경찰청장을 끝으로 제복을 벗은 그는 이듬해인 96년 15대 총선에서 첫 배지를 달았다. 부여·청양은 JP의 텃밭이었기에 그가 충청 맹주 JP의 지역구를 물려받았는 것은 여러모로 화제가 됐다.97년 자민련으로 당적을 옮긴 그는 JP를 총재로 모시며 원내총무로서 맹활약했다. 그런 그를 JP는 "번개가 치면 먹구름이 낄지, 천둥이 칠지를 아는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다만 최근에는 이 총리의 급한 성정을 염려하기도 했다. 이 총리가 대통령에게 직언하겠다고 하자 "밖에서 자랑마라"라고 했고 대정부 질문을 앞둔 무렵에는 "이완구 죽었다(아주 호되게 당할 것이라는 의미)"며 "성질이 급해서 아픈 데를 찌르면 당황할 것이다. 우리같이 능글거리지 못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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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리는 지난 2월 설을 맞아 국가원로들을 찾는 자리에서 유일하게 JP에게 큰 절을 올렸다. 2013년 말 운정회 창립총회 참석차 5년만에 국회를 찾은 JP의 휠체어를 민 사람은 이 총리였다. JP의 고향 부여 방문 당시 이 총리가 서울 청구동 자택에서부터 JP를 모시고 내려오기도 했다.두 사람은 지난해 나란히 '부여 100년을 빛낸 인물'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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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전 회장은 지난 2003년 기업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JP의 특보단장을 맡았다. "97년 DJP 연합 때 성 전 회장을 JP의 측근으로 만났다"는 김한길 의원의 말을 감안하면 JP와의 인연은 훨씬 이전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2004년 17대 총선엔 JP에 이어 자민련 비례대표 2번을 꿰찼다. 국회 입성이 눈앞에 보였지만 자민련이 득표율 2.8%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는데 그쳐 좌절됐다. JP는 정계은퇴를 선언했고 성 전 회장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불거진다. 2002년 지방선거 때 자민련에 16억원의 정치자금을 건넨 일이다.
JP는 이런 성 전 회장에게 무척 마음을 썼다. 지난해 성 전회장이 의원직을 잃자 거동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충남까지 내려가 위로의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2012년 성 전 회장이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당시 권영세 사무총장을 만나 성 전 회장의 실명을 거론하며 서운함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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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JP는 "성 이사장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자민련 당시 우리를 도와 준 것이 오명을 쓰게 된 계기가 됐다. 해명을 해주고 싶다"고 애정을 나타냈다. 12년 총선 때는 딸 예리씨를 보내 성 전 회장을 지원했다.
그런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자 "그렇다고 목숨을 끊다니…"라고 애도하며 황망해 했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지난 11일 부인인 고 박영옥 여사 49재 참석차 부여를 찾았던 JP는 성 전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산의료원을 조문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그냥 상경했다는 후문이다.
오랫동안 정계의 중심에 있던 JP의 용인술는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였다. 명분 보다 실리를 쫓는 후배 정치인들을 개탄하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측근들간에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이전투구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 지 무척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