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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덥긴 하지만 연애하기 참 좋은 날씨입니다. 저도 연애 이야기 하나 할까요? 아, 그렇다고 달콤하고 행복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무리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라도,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당사자들 사이에 의견 충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의견 충돌로 인한 갈등이 항상 원활하게 해결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언제나 그럴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지요.

    갈등 구도가 계속되면, 당사자들은 지치게 됩니다. 서로를 지치게 하는 말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저는 이 말을 꼽아볼까 합니다.

    "자기는 내가 왜 화 났는지 정말 몰라서 그래? 아 됐어! 그만 둬!"

    얼러도 보고 달래도 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같이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왜 화가 났는지, 어떻게 하면 화가 풀릴지 속 시원하게 말해줬으면 좋으련만, 상대방이 아무 말도 않은 채 꽁해 있으니 미칠 지경입니다. 대화를 통해 어떻게든 관계를 진척시키고 싶어도, 이 상태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비슷하지만 다른 얘기도 한 번 해볼까요. 회사와 노동조합 얘깁니다. 함께해야 할 파트너이면서도 정말 애증의 관계지요.

    은행권에선 요즘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을 추진하는 하나금융지주와 이에 반발하는 외환은행 노조 사이의 갈등이 가장 뜨거운 감자인 듯 합니다.

    그 동안 외환은행 노조 측은 외환은행의 독립 경영 보장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2.17 합의서'를 근거로 두 은행의 통합을 반대해 왔습니다. 법원에 통합정지 가처분까지 신청해 승인 결정까지 받아냈고요.

    하나금융 측은 법원의 가처분 승인이 부당하다고 이의 신청을 내는 한편, "우리 대화 좀 하자"며 계속 노조 측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노조는 "좋아. 대화하자. 당신들이 요구하는 것은 두 은행의 통합 아닌가. 대화에 응하는 것은 우리의 주장을 굽히며 양보하는 것인데, 대신 사측도 뭔가 내놓는 게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물었고요.

    이에 사측은 △통합은행명에 '외환' 또는 'KEB' 포함 △인위적 인원 감축 없음 △전산시스템 통합 전까지 교차발령 금지 등의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노조 측은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자 사측은 "좋다. 그렇다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노조 측에서 제시해 보라"고 역으로 제안했습니다. 이 때로부터 보름 가까이 지났지만, 노조 측은 아직 특별한 요구안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보름이 지나도록 답을 내놓지 않는 외환은행 노조를 탓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심사숙고해야만 하는 노조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무응답이 길어질수록 노조와 사측 모두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게 된다는 점이 우려스럽습니다. 연인의 갈등이 길어지고, 상호간의 의사소통이 잘 안되면 서로가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최악의 경우 "쟤가 지금 나랑 헤어지자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사측 역시 "대화하겠다고 나설 땐 언제고, 정말로 대화할 의지가 있긴 한 건가", "뭔가 공개할 수 없는 다른 속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생깁니다. 대화로 풀리기는 커녕 갈등만 커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노조 역시 지칠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15일 열린 이의신청 2차 심리에서 재판장은 "아직까지 노사간의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의아스럽다"는 발언을 한 바 있습니다. 재판장이 직접 나서 노사간의 대화를 신속히 진행하라고 주문한 상황입니다. 게다가 노측과 사측 변호인 모두에게 오는 6월 3일까지 각자의 입장을 정리해 제출할 것을 지시한 바 있습니다.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노조의 임무인데, 오히려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진 않을지 걱정되는 부분입니다.

    상대방에게 화난 연인과 노조에게, 감히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속시원하게 말씀을 하세요. 그래야 대화가 됩니다.

    대화가 돼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내가 왜 화났는지, 뭘 원하는지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느냐"고 원망만 하지 마시고, "이 나쁜 놈아! 넌 이래서 문제야!"라고 속시원하게 쏘아 붙이시란 얘깁니다.


    힘들어 하는 모든 연인들, 그리고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 사이의 갈등이 모두 속시원하게 풀리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