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발찌 찬 기분이다"...메르스 전사들 낙담 메르스 부적까지 등장
  • ▲ 아파트 단지에선 응급환자를 후송하기 위해 출동한 구급차들에게 빨리 빼줄 것을 요구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 아파트 단지에선 응급환자를 후송하기 위해 출동한 구급차들에게 빨리 빼줄 것을 요구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 구급차를 낙타로 생각하더군요. 아파트 입주민이 아프다고 신고가 들어와서 갔더니 경비원은 빨리 구급차 빼라고 하고...참 할 말을 잃었습니다.

    # 전자발찌를 찬 기분입니다. 모두들 슬금슬금 피하기만 하고...동네북 신세였다가 이제는 불가촉천민이 된 느낌입니다.

    소방관과 의사들이 커뮤니티에 올린 글들의 일부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만 아니면 우리 가족만 무사하면 내 주변만 무탈하면 된다는 도긴개긴 시민의식의 현주소다. 앞에선 메르스 히어로, 메르스 전사라며 입싼 소리를 해대고 있지만 뒷켠에선 대부분 이런 꼴이다.

    한 소방관은 "어제 퇴근하는데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어떤 분이 내가 입은 소방공무원 옷을 보고 흠칫 놀라 물러서더라"며 쓴웃음이 절로 난다고 했다.

    다른 소방대원은 "관리사무소에서 '우리 아파트에 소방관이 살고 있으니 주민들은 조심하라'는 방송을 하는데 서글펐다"고 했다.

    또다른 구급대원은 "진짜 가슴이 무너지는 순간은 일을 마치고 늦은 밤 가족과 통화하는데 학교에서 아들의 별명이 '바이러스'가 됐단 말을 들었을 때였다"고 했다.

  • ▲ 메르스 환자를 이송시키는 119 전담 요원들ⓒ
    ▲ 메르스 환자를 이송시키는 119 전담 요원들ⓒ

     


    30도를 오르내리는 불볕 날씨에 세겹 네겹의 보호복을 입고 고글·마스크·장갑·덧신까지 착용하면 입자마자 땀은 비 오듯 흐르고 얼굴은 빨갛게 부어오른다. 바람이 통하질 않으니 어지럽기도 하다. 검은색 바지는 금새 땀에서 나온 염분이 굳어 희뿌옇게 변한다. 어쩌다 세 겹씩 낀 장갑을 벗으면 땀에 절은 손가락이 퉁퉁불었다.

    출동에서 돌아와 씻고 또 씻고 소독까지 철저히 하지만 정작 집에는 가지 못한다. 주변의 싸늘한 눈총과 혹여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까 십여일씩 소방서에 머물러 있다.

    사정은 의료진과 보건당국 근무자들도 매일반이다.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하루 12시간씩 2교대로 24시간 환자들을 진료했지만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주변사람들에게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는 하소연을 하는 의료인들이 늘고 있다.

  • ▲ 지쳐가는 의료진들에 대한 따뜻한 격려와 성원이 절실하다ⓒ
    ▲ 지쳐가는 의료진들에 대한 따뜻한 격려와 성원이 절실하다ⓒ


    메르스가 발병한 대전지역 한 병원의 의사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부모가 병원에 근무하는지 물어본 뒤 위험하니 집으로 돌아가라는 얘기했다"며 허탈해 했다. 이후 아이의 별명은 '메르스'가 됐다고 한다.

    한 간호사는 "유치원에서 아이 받는 것을 꺼려하며 꼭 보내야 하겠느냐고 되묻더라"며 "출근을 해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메르스사태로 불가촉천민이 되어 자녀들까지 병균 취급받는다. 노예나 다름없다"며 격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다.

    병원에서 쪽잠을 자고 끼니도 거르며 환자와 더불어 사투를 벌이는 그들의 모습에선 그럼에도 버텨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가득하다. 입고 벗는 데만 1시간이 걸리는 방호복을 입고 음압병실에 들어가면 5분만 지나도 온몸에 비 오듯 땀이 쏟아진다. 물 한모금 쉽게 마실 수 없다.

  • ▲ 개원 한달만에 메르스 직격탄을 맞은 대전지역의 한 병원은 병원이 입을 피해 보다 메르스 조기 퇴치가 우선이라며 전력을 쏟고 있다 ⓒ
    ▲ 개원 한달만에 메르스 직격탄을 맞은 대전지역의 한 병원은 병원이 입을 피해 보다 메르스 조기 퇴치가 우선이라며 전력을 쏟고 있다 ⓒ

     


    감염될지 모른다는 심리적 공포 또한 만만치 않다. 이미 적잖은 의료인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기도 했다. 

    한 간호사는 "솔직히 무섭고 두렵다. 하지만 제가 무서워하면 제 환자는 얼마나 더 무섭겠어요. 열심히 치료하고 간호해서 건강하게 퇴원시켜드릴 거니까 걱정 마시라고 한 번 더 웃어드립니다"라는 글을 남겨 네티즌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최근 SNS에는 한 화백이 만들었다는 메르스 퇴치 부적까지 등장했다. 오죽 불안하면 그럴까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괜스레 씁쓸하다.

    부적 보다는 오늘도 메르스 일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전사들에게 응원과 격려, 성원을 보내고 그들과 메르스 퇴치에 대한 믿음을 나누는 일이 더 좋지 않을까. 우울하다.

     

  • ▲ SNS에 등장한 메르스 퇴치 부적ⓒ
    ▲ SNS에 등장한 메르스 퇴치 부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