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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은 금융업계에서도 소문난 맷집을 자랑한다. 늘 '고금리'를 달고 사는지라 어지간한 비판에는 꿈쩍도 않는다.
언론과 시민단체의 여론이 몰아쳐도, 정치권이 윽박을 가해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감독의 칼을 휘두르는 금융당국이 나서서야 겨우 시늉만 낸다. 사촌 격인 대부업계도 마찬가지다.
이런 저축은행과 대부업계가 최근 불안에 떨고 있다. 그나마 온정적이던 금융당국이 캐비닛 속에 잠자던 이자제한과 최고금리 인하 움직임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저축은행의 추운 겨울이 시작됐다. -
◇ 무늬만 은행...저축은행 평균금리 28.6%
금융당국은 그동안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의 고금리를 어느정도 용인해 왔다. 은행권에 비해 높은 조달금리와 더 많은 대손발생 상황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현행 이자제한법은 최고 이자율을 25%로 제한하고 있지만, 이들 업권은 저신용 고위험 대출이라는 측면을 고려해 별도로 최고금리 34.5%를 정해 왔다.
저축은행 등은 이같은 맹점을 잘 이용했다. 9월 현재 저축은행의 평균 금리는 28.6%, 대부업체는 법정 최고금리를 넘어서는 35.3%에 달한다. 대부업계 저축은행인 OK 저축은행은 29%, 웰컴 저축은행 29.5%였다.
신용 1등급 조차 17.7%의 이자를 받고 있다. 이들에겐 최고금리가 곧 평균금리인 셈이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PF 부실 이후 수익성 개선을 위해 개인 소액 대출을 강화하다 보니 평균 금리가 오르게 됐다"고 인정했다.
대표적인게 대학생 대출이다. 지난해 기준 전국 27개 저축은행이 7만여명의 대학생에게 2500억원을 신용대출하고 30% 안팎의 고리를 챙기고 있다.
담보성 가계대출도 마찬가지다. 기업대출 평균금리는 8.2%, 가계는 18.7%로 두 배 이상 편차가 났다. 10년전인 2005년 기업과 가계 대출의 평균금리는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1%대의 초저금리시대, 저축은행의 조달금리는 4~5%로 종전 보다 배 이상 낮아졌다. 2010년 2조원대에 불과했던 상위 20개 저축은행의 가계대출은 4배가 넘는 8조2000억원으로 불었다.
조달금리는 낮아지고 운용수익이 늘다보니 저축은행들은 오랜부진을 털고 7년만에 흑자로 돌아서기도 했다. 응당 '은행'이라는 타이틀 달고 있는 저축은행의 공공성에 대한 시비가 일 수 밖에 없다. -
◇ 내년부터 최고금리 29.9%로..."25%로 낮춰라" 요구 빗발
금융소비자와 정치권의 금리인하 압박이 빗발치자 금융당국은 최고금리를 5% 가량 인하해 내년부터 29.9%대를 적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저축은행의 금리 상한을 25% 이하로 낮춰 대부업체와 차별화할 것을 주장한다. 10~20%대의 중금리로 비교적 모범적인 운영을 해 온 저축은행의 영업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다.
상위 10개의 저축은행 중 10%대의 평균금리를 유지하는 곳은 단 한 곳에 불과하다. 2013년 호주계 페퍼그룹이 인수한 페퍼 저축은행은 평균 금리 18.8%의 중금리 신용대출로 견실한 영업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소비자의 27%인 1180만명은 은행권의 외면을 받다보니 연 20~30% 고금리를 주는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이중 0.3%만이 10%대의 중금리 대출을 이용한다.
쏟아지는 비판 여론에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10%대 중금리 대출을 늘리겠다"고 밝히고 금융당국은 곧바로 개선책 마련에 착수했다. 진웅섭 금감원장은 "제2금융권 대출금리를 합리화하겠다"고 말했다. 1차 타깃은 저축은행이 될 전망이다.
애초 저축은행이 금리를 낮출 경우 외려 대출문턱이 높아져 서민들의 제도권 금융 이용이 더욱 어려워 진다며 난색을 표했던 금융당국도 어쩔수없이 저축은행 최고금리 인하에 시동을 건 모양이다. -
◇ "미리 대비하자"...전화 한통 대출 3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저축은행들도 이같은 기류를 잘알고 있다. 금융당국이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가계대출과 서민금융 문제는 우리나라 경제 전반을 뒤덮고 있는 문제인 만큼 어떤식으로든 칼질이 불가피하다.
은산법 개정, 서민금융진흥원·신용정보집중기관 설치, 보험규제 개혁 등 각종 현안이 산더미 처럼 쌓여있는 금융위는 10~11월 국회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에게 저축은행과 대부업계 고금리 인하는 매력적인 대상이다. 누이좋고 매부좋은 저축은행 고금리 인하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발빠른 저축은행들은 신용대출 한도를 슬그머니 올리고 있다. 언제부턴가 전화 한통으로 즉시 300만원 대출이 500만원으로 바뀌었다. 금리가 다소 낮아지더라도 대출잔액을 늘려 손해를 벌충하겠다는 의도다.
생색내기용 10%대의 중금리 대출상품도 기획하고 있다. 모럴헤저드 시비를 낳았던 임직원 신용대출 금리도 조정할 모양이다. 대다수 고객들에게 20~30%의 고금리를 받는 국내 저축은행 중 67개사는 임직원 1200여명에게 160억원이 넘는 돈을 4% 이하의 저리로 대출해 줬다. 이 중 40명은 1%대의 초저금리였다.
눈치 빠르고 맷집 좋은 저축은행들이 몰아치는 고금리 인하 압박을 어떻게 헤쳐나갈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