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경고에도 매주 수십종 유사상품 찍던 증권사에 화살실적 악화 주범 지목으로 '미운 오리새끼' 전락
  • '중위험·중수익'의 대표 투자상품이었던 ELS(주가연계증권)가 녹인(Knock-In·원금 손실)공포에 휩싸였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H지수(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 HSCEI) 급락 등으로 인해 현재 원금 손실 위험에 처한 ELS만 2조원어치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투자자들과 금융당국의 화살이 증권사들로 향하는 모양새다.


    그동안 증권사들은 새로운 수익원으로 떠오른 ELS를 앞다퉈 찍어내며 유사한 상품들을 매주 수십종씩 쏟아냈고, 이 과정에서 H지수 등 일부 지수에 대한 쏠림현상이 빚어졌다.


    이같은 상황에서 H지수가 지난 21일 8000선이 붕괴됐다. 지난해 6월만 해도 1만4000선을 유지해오던 H지수는 이후 급락세를 연출하며 지난해 12월 3일자로 위태롭게 지켜오던 1만선 마저 내줬다.


    특히 지난해 부터 금융당국이 ELS 발행을 두고 증권사들의 발행 자제를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증권사들은 변동성이 높은 H지수를 계속해서 판매해왔다는 점에서 논란이 커질 모양새다.


    당국의 발행자제 요구가 안팎으로 나올 당시 증권가는 H지수가 최근 사태에서 나타났듯이 변동성이 큰 편이지만, 대신 이를 기초자산으로 편입할 경우 경쟁사보다 높은 기대 수익률을 제시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발행을 지속해왔다.


    이 결과 지난해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발행된 ELS 규모는 총 46조3364억원으로, 지난해 전체 ELS 발행 규모(76조9499억원)의 60%를 차지했다.


    결국 기초자산이 H지수 위주로 짜여져 ELS 시장 전체로 리스크가 번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고, 증권사들에 대한 신뢰추락 우려가 번지고 있다.


    수수료 이익을 추구하느라 상품의 잠재 위험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여기에 2015년 실적결산과 발표를 앞두고 ELS 등 파생상품 판매 비중이 높은 증권사들은 3분기에 이어 4분기 실적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고 ELS 판매 비중이 낮은 증권사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낼 것이 확실시되며 오히려 ELS가 미운오리새끼 취급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부터 H지수에 대한 발행자제를 당부하긴 했지만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았던 당국에 대한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21일 금융위원회는 "녹인구간에 진입한 ELS 상품들의 손실이 확정된 것은 아니고, 현재 발행된 ELS의 96.7%(발행액 기준)는 2018년 이후 만기가 도래한다"라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2년 내로 H지수가 상당 수준 회복되면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지 않고 애초 약속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


    반면 작년 6∼8월 H지수의 폭락 때 정부가 실효성 있는 조치를 적기에 내놨더라면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당시 금융위는 H지수 ELS의 쏠림 현상을 공개적으로 경고하면서 필요할 때 자본시장법상의 조치 명령권을 발동하거나 행정 지도 형식으로 H지수 ELS의 발행을 중단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증권업계의 자율적인 H지수 ELS 감축을 유도한다면서 수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다만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어차피 금융당국이 발행자제를 강제적으로 취할 경우 증권사와 투자자들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원성이 높아졌을 것"이라며 "이제와서 당국의 책임론을 꺼내는 것도 상황에 맞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문제는 H지수에 대한 쏠림현상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기초자산 가격이 녹인 배리어 이하로 떨어진 경우가 있으면 기초자산 가격이 가입 때의 80∼90% 선까지 회복되지 않으면 손실을 보는 구조의 상품이 적지 않다. 일단 한번 녹인 구간을 터치하면 손실을 피하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H지수가 1만4000선일 때 ELS에 가입한 투자자의 경우 지수가 1만1000선 수준까지는 회복돼야 애초 약정받은 수익을 돌려받을 수 있다"며 "최근의 국제 금융시장 불안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8000선에 턱걸이 중인 H지수가 단기간에 1만1000선 이상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중호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ELS 상품 자체는 주식과 채권 시장 중간의 투자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음에도, 쏠림 현상으로 전체 시장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오인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