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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A대기업 한 임원은 지난달 아끼던 계약직 직원을 내보내게 됐다며 안타까운 사연을 털어놨다.
그는 "이 직원을 2년 계약직으로 뽑아 썼는데 싹싹하고 예의 바른 데다 일도 곧잘 해냈다"며 "그래서 2년 정도 계약을 더 연장하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정규직으로 전환을 시켜줘야 해 회사 사정상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고용 간주 규정'이 이 같은 비극을 초래했다. 2년을 넘긴 기간제 근로자는 반드시 정규직으로 신분을 바꿔줘야 한다는 제도가 오히려 일하고 싶은 근로자의 일자리를 뺏은 꼴이 됐다.
당시 직원 역시 "다른 직장으로 옮기더라도 2년 경력과 3년 이상은 천차만별"이라며 경력을 1년이라도 더 쌓게 해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전해져 애처로움을 더 했다.
고용 간주 규정은 정부와 경영계가 노동계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지난 2007년 탄생했다.
이와 같은 연장선에서 노동계는 최근 또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1차를 넘어 2, 3, 4차로 계속 이어지는 협력업체에서 발생한 사고 책임을 원청에 모두 물릴 수 있도록 법을 손질하겠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수많은 근로자와 영세업체만 거리로 내몰릴 전망이다.
현행 파견법에 따르면 2, 3차 하청업체가 법을 지키지 않아 일어난 사고를 두고 원청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인 근거는 전혀 없다. 반대로 원청은 하청업체에게 작업 지시를 내릴 수 없다. 감독 권한이 아예 없다는 얘기다.
더욱이 1차 하청업체 외에는 대부분 별도의 계약을 맺지 않고 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법적인 잣대를 들이밀 수도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원청이 2, 3차 하청업체에서 일어난 사고 책임까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면 원청 대부분은 앞으로 하청을 맡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영세한 2, 3차 하청업체만 일감을 잃는 셈이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원청이 대기업이라면 1, 2, 3차로 내려가는 하청업체가 수천여 곳에 달한다"면서 "그런데 이들과의 계약 내용과 근무 현황을 전부 챙기라는 것은 법을 떠나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노동계의 탁상행정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취업 전선에 뛰어든 구직자와 영세한 하청업체들의 진정으로 위한다면 그들의 일자리와 일감을 어떻게 늘려줄지부터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