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부터 시행될 김영란법 때문에 클래식계와 오페라계에 초비상이 걸렸다.
5만원 이상 티켓을 공무원에게 주면 처벌받기 때문이다.
오늘날 각종 공연에서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급 VIP 티켓은 1장당 20만원을 훌쩍 넘어버린 지 오래다. 외국 유명연주단체나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성악가 연주자가 초청되는 음악회는 50만원을 넘기도 한다.
일반 유료 관객이 적다보니 대기업, 금융기관의 억대 협찬을 받아야 하고 또 상응하는 티켓을 금액으로 제공하다 보니 액면가를 높게 써서 발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달 28일부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5만원 이상 티켓은 선물로 간주돼 신고될 경우 처벌이 불가피하다. 대상은 공무원, 교수, 교사, 언론인과 가족등 수백만명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화를 아끼는 몇몇 기업들 덕택에 이어져 오던 지원금도 대폭 줄어들 처지다.
결국 클래식계는 특단의 제도적 보완책이 나오지 않는 한, 앞으로 관객들이 더욱 즐겁게, 그리고 기꺼이 표를 구입해 참여하는 음악회를 만들어야 생존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대중가요 스타들의 콘서트장이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것처럼.
하지만 클래식과 대중가요, 팝음악을 접목하는 콘서트 스타일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있는게 사실이다.
고품격 클래식음악에다 대중가요, 팝음악을 뒤섞어 ‘비빔밥’을 만든다는 비판이다. 정통클래식의 품위를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그러나 이같은 문제에 대해 이제는 침착하게 점검하면서 우리 클래식계의 진로를 점검해야 할 시기를 맞고 있다.
클래식계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답답하기 이를데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각 오페라단이 사명감을 갖고 오페라를 개막하고 있지만 제 값 내고 오는 관객들이 해마다 줄어들어 매번 오페라단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김자경 단장이 한번 찾아가면 재벌총수들이 흔쾌히 수억씩 쾌척하던 시절은 전설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기업 총수들 사이에 문화를 사랑하는 낭만이 있었으나, 오늘날 재벌 3~4세들은 문화적 소양 자체가 바닥이다. 그나마 김영란법 시행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태풍으로 지붕이 날아갔는데, 또 다른 태풍이 몰려와 기둥까지 무너지는 것처럼, 클래식계가 초토화의 위기에 서 있는 상황이다.
진취적인 성향의 음악평론가들은 김동규씨의 콘서트에서 새로운 진로를 참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바하부터 비틀즈, 오늘날 힙합음악까지 융합해 새로운 창조적 콘서트를 펼치고 있는 김동규 스타일의 콘서트가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콘서트는 각 음악별 특성에 따라 직접 편곡을 하고 오케스트라 편성, 무대, 조명, 음향까지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 물론 이같은 활약은 천재적인 감각과 실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느 음악단체든, 또는 음악인이든 각자 열정적으로 노력해나간다면 각자의 개성을 십분 발휘하면서도 관객들을 들썩이게 만들 수 있는 콘서트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부터 10여년간 논쟁을 일으켜온 콘서트가 KBS열린음악회였다.
결국은 방송사의 파워로 논란은 사그러들었지만, 오늘날까지 매주 이어지고 있는 열린음악회는 누가 봐도 대중가요 중심의 콘서트에 클래식을 구색맞추기 식으로 끼워 넣은 것이다.
그러나 김동규 콘서트는 ‘클래식 중심의 콘서트’에 대중가요와 팝을 자연스럽게 끼워넣고 있다는데 의미가 크다.
이달 19일 예술의전당 '김동규 가을콘서트'를 찾은 한 외국계기업 임원은 “나는 한국말을 잘 모르지만 오늘 콘서트는 글로벌 음악이 주류였기 때문에 온 몸으로 공연에 몰입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며 “김동규씨의 콘서트 수준과 재미야말로 전세계의 어떤 콘서트장에 내놓아도 최고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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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부터 앙드레류,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 요나스 카우프만ⓒ
최근 전세계적으로 클래식계의 스타로 평가받는 연주자들로는 유럽의 지휘자 앙드레 류(Andre Rieu),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가 있다.
지휘자는 앙드레류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으로, 다른 오케스트라와 다른 점이라고는 자신이 지휘하면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중세풍의 옷을 입힌게 고작이다. 이 정도도 큰 파격이다 보니 일년 내내 유럽과 미주의 연주 스케줄이 꽉 차 있다.
지난 6월 내한공연을 하기도 했던 드라마틱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은 ‘쓰리테너’ 이후 허전한 전세계인들의 빈자리를 채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발성이 워낙 무거워 테너 최고음 하이C를 낼 때마다 불안불안하지만 현재로서는 손꼽히는 수준이어서 그의 연주장은 그나마 자리가 찬다.
‘최고의 레제로 테너’로 불리는 플로레즈 역시 독특한 감성과 표현력으로 클래식 관객들을 당기고 있다. 성악가들의 연주라는게 워낙 단순하다 보니 폴로레즈가 가끔 기타 들고 나와 베사메무초를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을 열광시킨다.
하지만 이들 몇 명의 스타들만으로는 유럽에서, 미국에서, 아시아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클래식 관객들을 다시 불러들이기 불가능한 상황이다. 대중가요 스타들처럼 수십명의 스타들이 쏟아져나와야 한다.
대중음악에 지나치게 편협된 청소년과 국민들의 정서는 절름발이가 될 수 밖에 없다.
이제 클래식 활성화는 한국과 세계의 공통 과제가 되고 있다.
물론 정부의 새로운 제도 시행으로 엉망이 되는 클래식 시장을 음악인들이 알아서 살리라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다. 클래식계의 노력과 함께 정부의 제도적 대책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정부와 오페라계, 클래식계가 앞으로의 방향성을 놓고 중지를 모을 시점이다.
<박정규 뉴데일리경제 대표 /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