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2014년 적자 이후 체질 개선에 총력지상유전 고도화설비 및 PX 등 화학사업 공격 투자도


국내 정유업계가 다시 뛰고 있다. 지난 2014년 최악의 적자를 기록하며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불과 2년여 만에 가장 큰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는 혹한을 경험하며 외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체질 개선에 나선 효과라는 평가다.

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유업계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설비 효율화를 구축하고 있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고도화설비 및 석유화학 사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

정유업계는 원유보다 배럴당 6~8달러 싸게 거래되는 벙커C유를 '지상유전'으로 불리는 고도화설비를 통해 정제마진을 극대화한다. 

고도화설비는 원유 정제과정에서 생산된 고유황 벙커C유를 휘발유나 경유, LPG 등의 제품으로 다시 만드는 공정이다.

원유를 정제하면 60% 정도가 휘발유, LPG, 경유 등의 제품으로 생산되고 40% 정도의 벙커C유가 나오는데 이를 고도화설비에 투입해 휘발유나 경유 등의 제품을 다시 생산하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정유업계가 고도화설비 구축에 투입한 비용만 10조원에 달한다.

국내 정유사들의 고도화설비 비율은 현재 23% 수준으로 미국 56.4%, 일본 28%, 독일 29.5%, 캐나다39.1% 등 보다 낮다.

현재 정유 4사 중 고도화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현대오일뱅크로 지난해 말 기준 39.1%다. 이어 GS칼텍스는 34.9%, SK이노베이션은 23.4%와 에쓰오일은 22.1% 수준이다.

현대오일뱅크의 경우 2018년까지 약 5000억원을 투자해 기존 고도화 설비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고도화율은 7%포인트 높일 수 있을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정유업계는 또 기존 설비 효율화를 높이는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설비 개선으로 생산량 확대 및 원가 절감에 따른 수익 증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주력 생산 기지인 울산컴플렉스(울산CLX)와 SK인천석유화학의 정기보수를 완료했다. 특히 울산CLX는 통상 매년 8~9개 공정의 정기보수를 실시했지만 올해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13개 공정이 대상이 됐다. 

이번 정기보수 마무리로 SK이노베이션은 석유·화학설비 가동률을 100%로 전환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생산량도 일부 설비들의 공정개선(설비 생산량 증대를 위한 일부 개조)을 통해 확대됐다. 

SK이노베이션은 일일 원유 정제 111만5000 배럴, 연간 PX 생산 280만톤 규모의 생산 능력을 확보했다.

에쓰-오일(S-OIL)은 설비 가동률을 극대화하는 '슈퍼프로젝트(SUPER project)'를 진행 중이다. 

슈퍼프로젝트는 'S-OIL Upgrading Program of Existing Refinery'의 첫 글자를 모아 지은 이름처럼 증설이 아닌 기존 설비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정기보수를 통해 시작된 슈퍼프로젝트는 중질유(벙커C유) 분해 설비의 운영 개선을 통해 경유 생산량 증대와 벤젠(benzene)-파라자일렌(para-xylene) 등의 석유화학제품, 윤활기유 등의 고부가 제품의 생산량 증대에 집중하고 있다. 

슈퍼프로젝트가 종료되는 시점에 에쓰오일의 경유 생산량은 현재 보다 10%, 벤젠은 8%, 파라자일렌은 5% 더 늘어난다. 

◇화학 사업 투자로 안정적 수익 기반 마련

이와 함께 정유업계는 수송 연료 생산을 주력으로 했던 과거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 석유화학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에 비정유부문이 정유사의 매출과 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지는 양상이다. 지난해 3분기까지 정유사의 영업이익(EBIT)은 전년동기 대비 1조5000억원 증가한 5조6000억원을 나타냈다. 사업 부문별로 정유부문의 영업이익은 3조1000억원을, 비 정유부문에서 2조5000억원을 거둬들였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롯데케미칼과 손잡고 추진한 MX(혼합자일렌)공장을 준공하고 본격적인 제품 생산에 들어갔다.

현대케미칼은 지난 2014년 설립된 국내 정유회사와 석유화학회사 간 첫 합작법인으로 MX공장 건립에 총 1조2000억원이 투입됐다.
   
이 공장은 하루 13만배럴의 콘덴세이트를 정제해 MX와 경질납사를 각각 연간 120만t, 100만t을 생산하게 된다. 경유·항공유 등 석유제품 생산량은 하루 약 5만배럴이다.

현대케미칼은 MX와 경질납사의 국내 생산을 통해 연간 1조원의 수입대체 효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경유와 항공유 등 석유제품은 전량 수출될 예정으로 연간 1조5000억원 가량의 수출증대 효과도 기대된다.

에쓰오일은 석유화학 분야로 진출을 선언하며 5조원을 투자해 2018년부터 로필렌(propylene)으로 폴리프로필렌(Polypropylene)과 산화프로필렌(Propylene OxidePO)을 생산한다는 목표다.

지난 2015년부터는 정제 과정에서 생산되는 벙커C유를 휘발유와 프로필렌(Propylene)으로 업그레드하는 고도화 설비(Residual Fluid Catalytic Cracker. 일일 7만6000배럴)를 건설하기 시작한 상태며, RFCC에서 생산되는 프로필렌을 원료로 PP와 PO를 만드는 석유화학 공장도 건설 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2018년부터 연산 40만 5000t의 PP와 30만t의 PO를 생산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PP, PO 생산은 석유제품 뿐만 아니라 석유화학제품까지 만들어내는 회사로 성장한다는 장기적인 목표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