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칙,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 저버리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2월 현대로템 1심서 적용, 현대重·한국지엠·아시아나항공 2심서 승소
  • ▲ 자료 사진.ⓒ기아차
    ▲ 자료 사진.ⓒ기아차

     

    '신의칙'이 통상임금 소송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기아차 역시 적용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패소 시 최대 3조원의 부담을 떠안게 돼 향후 기업경영에 심각한 차질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노사간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 원칙이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을 충족하는 기아차의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다소 우세하다는 게 법조계의 판단이다. 하지만 신의칙이 적용되면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쫓아 성실히 해야 한다는 민법 제2조 1항을 지칭한다. 즉, 법률관계 당사자는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법률상 대원칙이다.


    지난 수십년간 임금협상 등을 통해 이어져 온 노사간의 신의도 여기에 해당되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지금까지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라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 산정에서 제외한 것은 기아차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부분 기업의 임금협상에서 일반적 관행이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자고 하는 것은 이런 상호신뢰에 어긋난다는 것이 기아차(사측)의 주장이다. 


    기아차 박한우 사장도 이런 관점에서 판결이 억울하게 내려질 수 있음을 우려했다. 박한우 사장은 지난 5월 23일 스팅어 출시 행사에 앞서 기자와 만나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할 경우 너무 억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패소 시 손실액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산출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사측이 패소할 경우 증권가에서는 기아차가 부담해야 할 금액이 최대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의칙 적용이 승패를 좌우할 전망이고, 판례도 그만큼 중요한 상황이다.


    대법원은 2013년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사건에서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통상임금 산입시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음을 근거로 신의칙 판단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전원합의체의 판결은 당장의 ‘중대한 경영상의 위험’이나 ‘기업의 존립위태’라는 결과보다는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로 인해 회사가 예측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을 겪게 되는 것에 무게를 뒀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되더라도 과거분에 대해서는 노사간 신의에 반해서 지급하라는 의미가 아닌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일부 하급심에서는 전원합의체 판결 기조와 다른 판결이 내려지기도 했으나, 상급심에서는 다시 뒤집힌 사례가 많다. 1심 소송에서 패소했던 현대중공업, 한국지엠, 아시아나항공, 타타대우 등은 2심에서 원심을 뒤집고 승소하기도 했다.


    최근 판결 흐름은 신의칙 판단 시 기존 노사합의 정신이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되고 있는 추세이다. 실제로 지난 2월 9일에 있었던 현대로템 통상임금 1심 판결에서는 ‘지금까지 상여금이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지급됐음’ 등을 근거로 재판부가 신의칙을 인정했다.


    때문에 기아차도 오는 8월 17일 열리는 1심 선고에서 재판부가 신의칙을 적용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 20일 열린 최후변론에서도 신의칙 적용을 검토해달라고 사측 변호인이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기아차가 이토록 통상임금 소송에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은 현재 경영상황이 녹록치 않은 것도 큰 이유를 차지한다.

    기아차는 올해 상반기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의 실적이 12만8670대로 전년대비 55%나 감소해 반토막이 났다. 사드 보복의 여파로 큰 타격을 입은 탓이다. 미국시장도 32만8327대로 전년보다 판매가 10% 감소했다. 업체간 출혈경쟁, 수익성 제고를 위한 플릿(Fleet) 판매 축소 전략 등과 맞물려 판매가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통상임금 소송으로 과도한 비용 발생시 주가 하락 및 주주가치 훼손, 영업이익 하락, 투자여력 감소, 미래경쟁력 하락, 판매 감소의 악순환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 특히 투자여력 부족으로 자율주행, 친환경차, 커넥티드 등 미래 차산업을 선도할 기술력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까지 팽배하다.


    기아차가 통상임금 소송에 올인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앞서 기아차 생산직 근로자 2만7458명은 2011년 연 700%에 이르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연장 근로 등 각종 수당을 다시 계산해 지급하라며 사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6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소송 참여 노조원은 1만4800여명으로 줄었지만 노조 측의 소송가액은 6600여억원에 이른다. 기아차 노조는 또 2014년 노조원 13명을 대표한 소송을 추가로 진행했고, 해당 소송액은 5억원이다.


    소송 청구액만 약 1조원에 달하고, 선고 이후 다른 산업에 미칠 영향이 만만치 않아 업계에서는 기아차 통상임금 선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소송의 결과는 전 직원에게 확대 적용되기 때문에 증권가에서는 노조 측이 이길 경우 회사 측 부담 금액은 약 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