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신뢰 얻어야" 이동걸 최후 통첩에 박삼구 사퇴더이상 사재출연-자산매각 기대 어려워… 추가 자금지원 여부 촉각
  •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경영권을 내려놓으면서 채권단인 산업은행과 질긴 인연이 주목받고 있다. ⓒ 뉴데일리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경영권을 내려놓으면서 채권단인 산업은행과 질긴 인연이 주목받고 있다. ⓒ 뉴데일리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경영권을 내려놓으면서 채권단인 산업은행과 질긴 인연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박 회장은 최근 아시아나항공의 부실 회계처리가 문제가 되자 그룹 정상화를 위해 자진사퇴를 발표했다. 하지만 안팎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박 회장의 퇴장은 주채권자인 산업은행의 '신뢰회복' 압박에 따른 것이란 풀이가 나온다.

    ◇ 채권단에 떠밀린 '퇴장' 

    박 회장은 사퇴를 발표하기 하루 전인 27일 저녁 이동걸 산은 회장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대주주와 회사의 시장 신뢰 회복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같은날 이 회장은 국회 정무위에 출석해 "아시아나와 긴밀히 협의해 자구계획을 더 철저히 하도록 하고 시장의 신뢰 회복 수준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도록 노력할 것"이라 밝혔다. 

    앞서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25일 "회사와 대주주가 시장이 신뢰할 수 있도록 성의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채권단과 정부가 나란히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아시아나항공의 자금 위기가 그룹 전체가 흔들리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자리에서 물러나는 방법 밖에 남지 않았던 셈이다. 

    산업은행은 내달 6일 아시아나항공과 재무구조 개선 MOU 연장을 앞두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금호그룹에 강도 높은 자구책을 요구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자산을 매각해 자본을 늘리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다만 채권단 내에서는 경영악화의 원인이 박 회장의 무리한 확장과 경영 실패가 자리하고 있는 만큼 경영권에서 물러나는 것 외에 추가로 '희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 회장의 보유 주식분을 추가 담보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산업은행이 내달 MOU 연장을 거부할 경우, 아시아나항공의 시장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해 금호그룹 전체의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아시아나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올해 갚아야할 부채는 1조7천억원 규모로 불어나게 된다. 

    ◇ 사재 700억원 쏟았는데...

    박 회장은 사재 700억원을 담보로 제공하는 등 아시아나항공 살리기에 나름 많은 노력을 했지만, 감사보고서 '한정' 의견 여파로 물거품이 됐다. 결국 퇴진 하는 것 이외에 선택지가 없었던 것.

    추가적인 자산 매각이나 사재출연이 어려운 상황에서 채권단인 산업은행이 센 압박에 나서자 용퇴외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2012년 워크아웃 이후 어려움을 겪던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정상화를 위해 박 회장은 보유 중이던 금호석유화학 지분 265만5792주 전량을 매도했다. 매각 대금으로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유상증자에 각각 2200억원, 1130억원어치 참여하기도 했다.

    박삼구 회장은 작년 12월에도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보유 주식 전부를 담보로 제공하면서 채권단으로부터 아시아나항공 차입금 연장을 요청했다.

    당시 박 회장은 금호고속 보통주 14만8012주, 금호산업 보통주 1만주, 아시아나항공 보통주 1만주 등을 산업은행에 담보로 제공, 담보금액은 696억9200만원에 이른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삼구 회장을 최정점으로 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의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그룹 지주사인 금호산업 33.47%, 금호석유화학 11.98% 등이 지분을 나눠서 보유하고 있다.

    금호산업의 지분구조는 금호고속 45.30%, 박삼구 회장 0.03%,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0.02%, 윤병철 금호산업 최고재무책임자(CFO) 상무 0.05%, 서재환 금호산업 사장 0.01%, CJ대한통운 3.38% 등이다.

    금호고속은 박삼구 회장 31.1%, 아들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 21.0%, 딸인 박세진 금호리조트 상무 1.7% 등 오너 일가가 53.8%를 보유하고 있다.

    ◇ 10년 질긴 인연…

    박삼구 회장과 산업은행 간의 인연은 2009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금호그룹은 당시 대우건설, 대한통운 등을 인수하는데 10조원 이상을 쏟는 등 무리한 그룹 확장으로 어려움을 겪던 때였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극심한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 

    금호그룹은 2009년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하고 계열사는 뿔뿔이 흩어졌다.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에 들어가고 아시아나항공과도 자율협약을 체결했다. 
    잠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박 회장은 이듬해 다시 그룹 전면에 나섰고 그룹 재건을 위해 공격경영을 재개했다. 

    2015년 금호산업을 인수한데 이어 2017년 초에는 금호타이어 인수를 선언했다. 박 회장의 금호타이어 인수 선언은 산업은행에게 핵폭탄급 선언이나 다름 없었다. 당시 산은은 중국 더블스타를 금호타이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 매각 작업을 진행중이었다. 

    그러나 자금력을 갖추지 못한 박 회장이 '금호' 상표권을 무기삼아 컨소시엄을 구성,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매각전은 꼬여갔다. 산업은행은 "매각 무산 때 금호그룹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2014년 자율협약을 졸업했으나 계속된 유동성 위기로 2018년 4월 산은과 재무구조개선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이후, CJ대한통운 지분 및 광화문의 그룹 사옥을 각각 매각했다. 아시아나의 2018년 기준 차입금 3조1632억원으로 부채비율이 814.9%나 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이 스스로 힘으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 "채권단에 제시할 자구안에 따라 MOU 연장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