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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도공사(코레일) 노조인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이 무기한 총파업 닷새 만에 파업을 철회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대정부 투쟁의 수단으로 파업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정부가 완강한 모습을 보이자 꼬리를 내린 셈이다. 애초 철도업계에선 철도노조 요구사항이 노사 협상으로 풀 수 있는 성격의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파업에 들어가도 오래가지는 않을 거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올해 파업도 국민 불편을 볼모로 진행된 가운데 코레일과 국토교통부는 4조2교대 전환을 위한 증원 문제를 두고 진실게임을 벌이는 모습마저 연출해 눈총을 샀다. 불편을 감수하는 국민은 안중에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토부는 정책적 판단을 미룬채 코레일이 '알아서 기라'는 식이고, 코레일은 국민부담은 차치하고 민감한 사안을 '어물쩍 넘기려 했다'는 지적을 사고 있다.
25일 정부와 철도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철도노조는 이번 파업에서 △총인건비 정상화 △4조2교대 인력 충원 △생명안전업무 정규직화 △코레일·㈜에스알(SR) 통합 등을 요구했다.
핵심 쟁점은 4조2교대 전환을 위한 인력 충원이었다. 노조는 현행 3조2교대를 4조2교대로 전환하려면 4600명(41.4%)을 증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레일이 노조와 공동으로 삼일회계법인에 맡긴 직무진단 결과는 1865명이었다.
국토부는 코레일이 요구한 1865명의 구체적인 산정근거와 재원대책이 미흡해 자료 보완을 요구했으나 아직 코레일에서 자료가 넘어오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김경욱 국토부 제2차관은 지난 20일 철도파업 대비 비상수송대책본부를 찾은 자리에서 "(코레일에서 숫자만 요구했을 뿐) 구체적인 산정근거 등을 제시하지 않았다. (검토 자료도 받지 못했는데) 논의도 없이 파업부터 하고 드니까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코레일의 설명은 달랐다. 익명을 요구한 코레일의 한 관계자는 "외부용역까지 끝낸 자료를 한달 가까이 (관리·감독 기관인) 국토부에 보내지 않는다는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느냐"면서 "용역업체 관계자까지 불러 (국토부에) 설명한 것으로 안다. 더 무엇을 설명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
철도전문가들은 국토부와 코레일이 일종의 수싸움을 벌인다고 분석했다. 코레일은 파업 국면에 편승해 민감한 사안을 어물쩍 넘기려 하고, 국토부는 코레일의 요구안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알아서 납작 엎드리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한 철도전문가는 "회계법인에서 용역결과를 냈으니 객관적일것 같지만, 회계법인에서 철도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면서 "(경험에 비춰볼때) 용역을 준 코레일에 물어봐서 사측의 의견을 상당부분 들어주는 경향이 강하다. 국토부가 용역결과가 미흡하다고 판단하고 자료 보완을 요구한 배경이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용역에는 (발주기관과) 반대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을 포함해야 (결과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면서 "십중팔구 (코레일은) 효율화를 극대화하지는 말라고 주문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철도전문가는 "외국 철도 선진국은 유지보수 작업을 나갈때 전차선·통신 등이 함께 움직이고 그렇게 권고한다"면서 "우리는 오늘은 전차선, 내일은 통신 등 주먹구구로 일하니 효율성이 떨어진다. 현재의 코레일 인력도 적정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증원 규모와 관련해 추가로 논란이 된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선 "(우리가) 고속철을 갖고 있지만 디지털화, 시설보강 등이 더뎌 시스템은 후진적"이라며 "뒤처지는 시스템을 사람으로 막고 있으니 철도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이 국제 평균보다 244시간 긴 것이다. 그게 우리 현실인데 어쩌나"라고 설명했다. 첨단장비나 시스템을 인력으로 대신하는 현실을 도외시한채 국제 평균보다 노동시간이 길다는 점만 부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다. -
일각에선 국토부의 권위주의적 행정도 문제라는 견해다. 코레일이 보내온 자료를 토대로 내·외부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정책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데도 국토부 입맛에 맞게 자료를 수정해 올리라고 산하기관을 윽박지른다는 것이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국토부로선) 2가지 방법이 있다"면서 "하나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지적한후 다시 가져오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토부가) 전권을 가지고 알아서 칼질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는 "1865명은 (삼일회계법인에서) 발주청(코레일) 생각을 반영해 어느 정도 조종한 숫자로 본다"면서 "정부 시각은 다를 수 있다. 증원 규모가 현실적이지 않고 기준 자체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코레일이 한 달 넘게 국토부에 보완자료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사실상 직무진단을 국토부 입맛대로 다시 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인 셈이다. 국토부는 현재도 코레일 인력 규모가 작지 않다는 인식이다. 인력 운용이 경직돼 있다고 판단한다. 김 차관이 노동생산성을 언급하며 "노조 요구를 바탕으로 단순계산하면 주당 근무시간이 31시간쯤으로 전체 근로자의 최저 수준"이라며 "선진국 수준이고 좋기는 한데 국민이 동의하겠느냐"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국토부와 코레일의 수싸움에 애꿎은 국민만 불편을 감수했다는 점이다. 파업 닷새째인 24일 오후 4시 기준으로 코레일 열차운행은 평소의 77.3% 수준으로 떨어졌다. KTX 68.0%, 수도권 전철 84.4%, 일반열차(무궁화·새마을) 63.9%, 화물열차 45.0% 등이다. 파업 참가율은 첫날 27.4%에서 31.0%로 올랐다.
철도전문가는 해법에 대해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우선 1단계로 얼마를 늘릴지 합의하는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철도노조는 애초 4600명 증원을 요구했다가 국토부가 완강하게 나오자 코레일 요구안이라도 확정해야 한다며 한발 물러섰다. 지난 21일 '국토부가 코레일 요청안이라도 확정해줘야 (노조) 내부 조정이 가능할 것"이라는 입장이 담긴 자료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구전략을 제때 찾지 못하면 실익없이 파업만 장기화했던 2016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작동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3일 본교섭 재개도 철도노조가 요청했다.
철도노조는 25일 오전부터 파업을 철회하고 현장에 복귀한다. 다만 열차 운행이 완전 정상화되기까지는 1∼2일이 걸릴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노조가 국민을 볼모로 묻지마식 파업부터 벌어고 나서 증원 규모를 두고 흥정을 벌였다는 비판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