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이란 종전에도 휘발유·경유 2000원 안팎 유지물가 자극 우려에 최고가격제 당분간 연장 방침시장 왜곡·재정 부담 커지자 단계적 인하 검토
  • ▲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가격 알림판이 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가격 알림판이 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합의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대까지 급락하며 하향 안정세에 접어들었지만 정부가 지난 3월 도입한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당분간 유지하기로 하면서 시장 왜곡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오히려 정부가 가격 통제의 끈을 더 조이면서 반시장적 가격 억제책이 가져올 부작용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다.

    25일 산업통상부와 재정경제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당분간 휘발유·경유·등유에 대한 최고가격제를 유지할 방침이다. 현재 최고가격은 지난 3월 27일 고시된 리터당 휘발유 1934원, 경유 1923원으로 석 달째 동결된 상태다.

    당초 시장에서는 전쟁 종료와 호르무즈 해협 개방, 국제유가 배럴당 90달러 이하 진입 등 정부가 제시한 해제 조건이 충족되면서 최고가격제가 폐지 수순을 밟을 것으로 기대했다. 고강도 통제책이 장기화할 경우 정유·유통업계의 손실이 커지고 정부의 재정 부담도 가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3일 국무회의에서 "최고가격제를 과감히 유지하고 최고가격도 낮춰가야 한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기류가 급변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이에 동조해 최고가격 하향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처럼 '가격 누르기'를 지속하는 표면적 이유는 물가다. 최고가격제를 해제할 경우 그동안 억제해 온 인상분이 한꺼번에 반영되면서 겨우 잡아가던 소비자물가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문제는 국제유가 하락 지표만 보고 최고가격을 강제로 더 낮추겠다는 정부의 발상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는 배럴당 67달러 선으로 내려왔지만 싱가포르 국제 석유제품 가격은 휘발유 배럴당 98.81달러, 경유 112.25달러로 전쟁 이전보다 여전히 높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평상시 0.5달러 수준이던 위험 가중치(리스크 프리미엄)가 여전히 20달러가 넘어간다"며 실제 도입 가격은 여전히 높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최고가격을 리터당 1600~1700원 선까지 강제로 인하하겠다는 계산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다.

    이러한 정부의 개입은 정유 업계와 유통망의 비명으로 이어진다. 정유사들은 수입 시점과 판매 시점 간 2~3주의 시차 때문에 고가에 사 온 원유를 정부 지침에 맞춰 손해를 보고 팔아야 하는 구조에 직면해 있다. 

    김 장관은 "정유사들의 손실보전을 차질 없이 하겠다"며 '착하디 착한 주유소' 등 미담 사례를 홍보하고 나섰지만, 이는 결국 세금이나 금융 인센티브라는 우회적 비용으로 국민에게 전가된다.
  • ▲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부처 보고를 마친 구윤철 경제부총리에게 질문하고 있는 장면. ⓒ연합뉴스
    ▲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부처 보고를 마친 구윤철 경제부총리에게 질문하고 있는 장면. ⓒ연합뉴스
    소비자들의 불만도 극에 달하고 있다. 현재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당 2006.79원으로 유가가 폭등하던 지난 4월 이후 석 달째 고공행진 중이다. 국제유가가 떨어져도 국내 주유소 가격은 요지부동인 '하방 경직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시장 고유의 가격 조절 메커니즘이 망가진 결과라고 지적한다. 정유사와 주유소들이 미래의 불확실성과 인위적인 가격 상한선에 대비해 방어적인 가격 책정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에너지 분야 민간 연구소의 한 전문가는 "최고가격제와 같은 인위적인 가격 통제는 단기적 처방에 그쳐야 한다. 유가가 안정세에 접어든 지금도 규제를 과감히 풀지 못하고 가격을 더 누르겠다는 것은 시장의 자율적인 수급 조절 기능을 마비시키고 추후 규제 해제 시 더 큰 부작용을 낳을 뿐"이라고 짚었다. 

    정부는 조만간 7차 최고가격을 고시할 예정이다. 국제시세를 반영할 경우 휘발유는 1700원 후반대, 경유는 1600원 중반대 수준까지 상한선 조정이 가능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정부 안팎에서는 최고가격제 출구전략을 둘러싼 고민도 적지 않다. 국제유가가 안정됐다고는 하지만 중동 정세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닌 데다가 이스라엘과 친이란 무장세력 간 충돌 가능성 등 지정학적 위험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고가격제가 장기화될 경우 시장 가격 기능이 왜곡되고 정유업계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손실 보전까지 약속한 상황에서 재정 부담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