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제한 규정 강화로 사외이사 대란 우려선지국 흐름에 역행… 기업 과잉규제 지적 제기"직업 선택의 자유 위헌 소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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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주주총회 준비에 여념이 없는 국내 기업들에 '사외이사 모시기'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정부가 올 들어 사외이사 임기 제한 규정을 강화하면서 사외이사 구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업들의 경영 투명성 및 독립성 제고를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잡음도 만만찮다. 경영계는 정부 취지에 대해 이해하면서도 사외이사 임기까지 정부가 통제하는 것은 과도한 경영 간섭이라는 불만을 토로한다. 

    특히 헌법상 보장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상법 시행령에서 제한하는 것은 위헌 소지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인력 운용과 이사회의 전문성을 떨어뜨리는 부작용만 양산시킬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런 상황에서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는 '사외이사 연임 제한이 시장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정책토론회가 마련됐다. 시장경제신문 주최로 열린 이번 자리는 회사법, 경제법, 자본시장법을 전공한 학자와 법조경력 10년 이상인 중견 변호사들이 참석해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앞서 지난 1월 법무부·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보건복지부는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상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주요 내용은 크게 ▲전자투표 편의성 제고 ▲임원 후보자 관련 사항 공시 강화 ▲주주총회 소집통지시 사업보고서 등 제공 의무화 ▲사외이사 연임제한 등 4가지로 요약된다. 

    이 가운데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는 부분이 '사외이사 연임제한'이다. 사외이사 제도는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20여년이 흐르면서 제도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사외이사들이 이사회에 출석하지 않거나 반대의견을 내지 않으면서 사실상 '거수기' 역할에 불과하다는 오명이 따라 다녔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공시 대상 대기업집단 250개 상장사들의 2018년 5월부터 1년간 이사회 안건 6722개 중 사외이사 반대 등으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24건(0.4%)에 불과했다.

    정부가 사외 이사 문제를 상법 개정을 통해 수술대에 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사외이사 임기를 본사 기준 6년, 계열사 포함 9년으로 제한을 뒀다. 개정 시행령에는 사외이사의 자격을 강화하는 내용도 새로 담겼다. 올해 1월 말 공포된 개정 상법 시행령은 이달 주주총회부터 적용된다.

    정부는 당초 개정 상법 시행을 1년 유예하는 것을 검토했지만 당정청 협의 과정에서 바로 시행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718명 사외이사 교체 불가피… 사외이사 모시기 전쟁

    그러다 보니 기업 현장의 마찰음이 적지않다. 당장 재계는 사외이사 교체 수요가 증가하며 '사외이사 구인난'이 심각하다고 호소한다. 올해 566개 상장사는 718명의 사외이사를 교체해야 한다. 이는 전체 사외이사 1432명 중 절반에 해당된다. 

    현행 상법상 사외이사는 상장사와 비상장사 구분 없이 최대 두 곳까지만 겸임이 가능한 만큼 사외이사 모시기 전쟁이 붙었을 정도다. 인력풀이 넓은 대기업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중소기업은 기업 인지도나 보수 등에서 대기업과 비교가 불가해 사외이사 찾기가 더 어렵다. 국내 기업의 현실을 외면한 규제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천재민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정부가 사외이사 연임에 제한을 둔 것은 실증적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제를 한참 잘못 짚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기존 사외이사의 연임을 제한하고 신규 사외이사를 선임하게 한들, 그 사외이사 역시 최대주주 등이 추천한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사외이사 선임방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사람을 교체하는 것만으로는 정부의 상법 개정 취지인 사외이사 독립성 확보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성이 높고 경영권 견제에 용이한 사외이사를 장기재직이라는 이유로 무턱대고 갈아치운다면 부작용만 양산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특히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받는 것조차 여의치 않은 중소 상장기업들은 혼란에 빠지기 쉽고 급하게 사외이사 후보를 구하느라 시간과 노력, 비용이 소모될 수 없다는 비판이다. 때문에 독립성 제고의 효과 보다는 기업을 괴롭히는 결과만 초래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천재민 변호사는 "개정 전 상법 시행령은 당해 기업과 고용, 자문, 대리, 거래관계 등에 있는 자에 대하여만 사외이사 자격이 없음을 규정하고 있었다"며 "사외이사 결격사유에 관한 기존의 상법 및 시행령은 모두 '사외이사로서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기 곤란하거나 상장회사의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의 실질적인 측면을 고려해 이를 구체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천 변호사는 또 "재임기간이라는 매우 형식적 요건만을 기준으로 '경영에 대한 영향력 행사'라는 실질을 추단하는 우(愚)를 범했다"며 "이러한 시행령은 모법이 부여한 예측가능성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대법원 판례에 의할 때 무효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했다. 

    이어 "금융회사 사외이사의 연임제한이 시행령이 아닌 '볍률'에 근거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다"며 "개정 상법 시행령은 사외이사라는 신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독립성 제고라는 효과를 얻기는 어려워 보이고, 오히려 중소 상장기업에 상당한 부담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독립성-공헌력 평가 통해 연임기준 마련 

    이와 함께 다른 선진국에서는 이 같은 입법 사례를 찾기 힘든 과잉규제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오히려 선진국과 정반대 흐름을 띄고 있다고 꼬집었다. 

    가까운 이웃나라인 일본만 봐도 그렇다. 일본은 지난 지난해부터 사외이사를 두는 것을 법제화 했는데, 연임 기간은 제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사외 이사의 취임기간이 장기간에 이를 경우 사외이사의 연임 선임 판단에 있어 취임기간의 길이와 폐단의 유무 등을 고려토록 하고 있다.

    이는 사외이사의 취임기간이 길다고 해서 일률적으로 문제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일정 기간이 담보돼야 회사에 대한 지식 및 실효적인 역할을 수행 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사외이사 선임과 연임절차도 명확히 하고 있다. 일본은 상장 기업들에 지명위원회를 통해 사외이사의 연임·해임에 관한 일정한 기준을 두게 했다. 사외이사의 질 담보와 독립성·감독의 실효성을 모두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이 밖에도 영국은 지난 2018년 7월에 공표된 개정판 기업지배구조코드에서 9년 이상 연임하는 것은 비업무집행 이사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는 사정으로 꼽았다. 미국에서는 사외이사 취임 기간의 상한을 정하고 있는 기업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중 5.4%에 머무르는 한편, 이사의 정년을 정하고 있는 기업이 많다는 설명이다. 독일 역시 사외이사 임기를 5년으로 두고 있지만 5년 연장이 가능해 최장 10년까지 사외이사 활동을  보장한다.

    이효경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일본 기업들은 사외이사를 연임함에 있어서 판단의 투명화, 공정화를 위해서 '독립성 기준', '공헌력기준'을 연임기준으로 정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와 같이 사외이사 연임을 제외하는 국가는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직업행사 자유 제한… "합리적 근거 찾기 어려워"

    아울러 이번 상법 개정이 위헌적인 제도라는 주장도 나왔다. 상장사 사외이사 임기제한이 직업행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라는 것이다. 헌법 제15조에 따르면 직업의 자유를 논할 때, 크게 직업행사의 자유, 직업 결정의 자유, 직업이탈의 자유, 영업의 자유가 포함하고 있다. 

    상장사 사외이사 임기제한을 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단계를 볼 때 '직업행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수단의 적합성만 인정이 된다면 합헌적인 제도로 판단될 수 있다. 

    그러나 사외이사가 거수기 역할에 그치는 관행을 막고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제고한다는 목적을 표방하고 있으나 실제 상장회사에서 사외이사가 거수기 역할만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목적의 정당성'도 인정할 수 없다. 설사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해도 수단의 적합성과 침해의 최소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IBS 법률사무소 강래형 변호사는 "사외이사의 거수기 역할을 막고 독립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무턱대고 합리적 근거 없이 사외이사의 임기를 제한하는 것보다 사외이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이 더 적합한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상장사 사외이사 임기제한은 직업행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라고 꼬집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자본시장법보다 하위법규인 상법시행령을 통해 자본시장법상 제도를 수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법률위반의 소지가 농후하다"며 "유통시장 공시제도인 사업보고서와 주주총회 주주의결권 행사 사이 연관성이 미흡하다"고 말했다.   

    이어 "주주 권리에 대한 측면에서도 임기 제한하는 것은 합리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며 "반드시 제고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덧붙였다.